고난의 길 다짐은 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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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길 다짐은 하면서도…
  • 승인 2003.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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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 무력해결에 들어선 이라크 전쟁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경제에 미칠 파장은 얼마나 클지 불안하다. 북핵위협은 어느정도이며 북한의 무모한 외교가 어떤 결과를 초래 할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지역갈등이 ‘망국병’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이념이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 불안감은 국가차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주변에도 바짝 다가와 있다.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를 겪고 보니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 없다.

경제불안과 줄지않는 양심불량, 생명경시, 한탕주의 등 불안 요소는 곳곳에서 사회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어쩌다가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세계인의 찬사를 받으며 선진국 문턱에 이르렀던 대한민국을 누가, 어느집단이 이처럼 불안하게 만들었나. 그것은 지역갈등으로 누가 혜택을 보았는지, 누가 외화를 낭비하고 있는지, 누가 가치관을 전도시키고 있는지 보면 알 것이다.

그들은 바로 권력을 사유화 하고 남용한 권력 엘리트 집단일 것이다. 지금 많은 사람이 느끼는 불안감의 상당부분은 미래에 대한 목표와 희망이 안보이는데서 연유하는 것이다. 위기를 관리하면서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리더십이 절실히 요청되는 때이다.

이런 불안의 시대에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은 사회에 안정감과 소망을 주고 있는가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겠느라고 고백은 하면서도 동참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나약한 신앙 때문에 희망을 주지 못하고 사회는 날이 갈수록 혼란스러워 지고 있지 않은가 반성해 보자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잘 아는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은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이다.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고 대속하심으로써 인류로 하여금 불의와 부정을 멀리하고 의롭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단순히 눈먼자, 억눌린자, 버림받은자 가난한자들과 일체화 시키는 것으로만 착각할 경우가 많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개인을 포함한 사회적인 죄, 민족의 죄,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하나님 사랑을 깨달아 정의를 세우는데 노력하길 소원한다. 무엇보다 용서와 화해를 통해 분열을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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