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병 걸려 시들던 내 인생 꽃과 함께 ‘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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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병 걸려 시들던 내 인생 꽃과 함께 ‘활짝’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09.0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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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을 아는 사람은 눈이 돌아가고 모르는 사람은 풀밭처럼 보는 야생화들이 1천가지가 넘는다.

야생화로 유명한 영광식물원 대표 김혜순 집사
“식물 좀 아는 사람들은 눈이 돌아가고 모르는 사람들에겐 풀밭이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김혜순 집사의 ‘영광식물원’에 들어가서 “제 눈엔 다 그게 그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한 답으로 돌아온 말이다. ‘풀밭’처럼 보이는 이곳에 1천 가지가 넘는 야생화들이 쌕쌕거리며 상쾌한 산소를 내뿜고 있다. 국립수목원에 납품할 정도로 희귀한 것들도 숱하다.
그냥 된 건 아니다. 그 동안 원예 전문가인 김혜순 집사의 남편이 “일 년에 소나타 두 대 값을 계속 버리면서” 외국까지 다니며 새로운 식물들을 연구해낸 결과다. 그러나 김혜순 집사에게도 이 식물원의 꽃들이 그저 ‘풀밭’에 불과할 때가 있었다. 한남동 서울 토박이로 살면서 식물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녀였지만 죽을병에 걸렸다가 회복되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이 식물들을 통해 체험했다. 그녀가 몸이 쇠약하게 된 시초는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어쩌면 미국에서부터였을지 모른다.

자동차 영업 잘 한 비결은
원예학을 공부하러 미국으로 유학 가는 남편을 따라갔다. 가자마자 식생활 때문에 어려움이 시작됐다. 미국의 기름진 음식이 맞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를 낳은 후엔 산후우울증까지 겹쳤다. 밤낮으로 공부와 아르바이트로 정신없던 남편은 아내의 산후 몸조리를 도와줄 형편이 못됐다. 둘째까지 낳고 5년을 버티다가 귀국했다.

“그때가 93년 10월말인데 쌀쌀했죠. 우리 형편도 그랬고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이 귀국했으니까요. 겨우 전세라도 얻어 사는데 선배의 농원에서 일을 시작한 남편이 3개월이 지나도록 십 원 한 장 안 가져오는 거예요. 왜 월급 안줘, 하고 물으면 남편은, 주시겠지, 하고 끝이에요. 남편 성품이 원래 그렇거든요. 6개월이 되자 안되겠더라고요. 식물이 돈이 될 것 같지는 않고, 나라도 일을 해야겠다고 정신을 차렸죠.”

그러나 사회복지를 전공한 그녀로서는 돈벌이가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그때 우연히 신문에서 현대자동차에서 주부영업사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미국에서의 추억이 퍼뜩 떠올랐다. 향수병에 시달리던 어느 날 하이웨이를 타고 가다가 현대자동차의 광고판을 보고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그 지점에서 봤던 여자 직원이 생각나 도전했다.

“서류에서 합격하고 면접을 봤는데 면접관들께서 몸이 약해 보인다, 영업을 해본 적이 없다고 염려하더군요. 그래서 몸이 약한 건 갑자기 강하게 할 수 없으니 할 수 없고, 영업은 태어나서부터 영업한 사람이 있냐고 대답했죠. 그런데 합격했어요. 거기서 과천영업소를 추천하길래 저는 가까운 인덕원영업소를 간다고 했죠. 면접 때에 과천 소장님이 계셨는데 저를 데려가고 싶다고 했나봐요. 남편의 조언을 듣고 생각을 바꿔 과천으로 하겠다고 했어요.”

나중에서야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들어가서 보니 과천영업소는 경기도에서 1등, 인덕원영업소는 꼴찌였다. 과천 소장이 좋은 데서 일하도록 배려해준 것. 그러나 며칠 다녀보니 너무 아니었다. 젊은 남자 직원을 따라 ‘빌딩타기’도 해봤지만 체질에 맞지 않았다. 3개월 동안 사표를 품고 다녔다.

▲ 김혜순 집사가 들고 있는 동백꽃은 잎에 무늬가 있는 희귀종이다.


약 끊으면서 오히려 치유돼
“어느 날 차를 팔러 간 게 아니라 그냥 심심해서 구경하러 쇼핑센터에 갔다가 어떤 사무실에 팸플릿과 명함을 주고 나왔는데, 그게 덜컥 연락이 온 거예요. 3일 안에 트럭을 빼줄 수 있으면 산다는 거예요. 그래서 소장님에게 물었더니 내일이라도 빼주겠다는 거예요. 그 고객이 ‘다른 데서는 열흘 안에는 못뺀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깜짝 놀라요. 알고 보니 우리 과천 소장님은 본사 부장급이고 다른 영업소장은 과장급이어서 차가 경합이 붙으면 당연히 부장이 우선인 거죠. 하나님이 인도하신 거예요. 그래서 첫차를 팔았어요.”

그 후로 5년 동안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주부사원으로 1년에 100대 이상을 팔았다. 당시 여자로선 유일하게 휴대폰을 들고 차를 끌고 다니며 수천만원을 계약했다. 한번 그녀에게 차를 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까지 연결시켜주었다. 연약해보이지만, 그녀에겐 신뢰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이것도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었다.

“영업 초기에 차사고가 한번 있었는데 일하느라 참고 다녔거든요. 5년째 되던 어느 날 병원에 가니 의사가 병명도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서 이래요. ‘어디 공기 좋은데 가서 살라’고요. 그때부터 제 40대 초반 5년은 잃어버린 시간이 됐어요. ‘류머티스성 루프스’래요. 혈액 중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죠. 머리에 바윗덩어리가 올려져있는 것 같아 제대로 앉아있을 수조차 없었어요. 욕창이 나서 누워있기도 힘들었고요.”

하루에 26알의 약. 한달치 병원에서 지어온 약이 쇼핑백으로 하나. 평생 아스피린 하나 안먹고 살아왔던 그녀로선, 병보다도 약을 감당할 수 없었다. 매일 약에 취해서 병든 닭처럼 꾸벅거리던 어느 날, 결단을 내렸다. 약을 끊었다. 남아있던 약마저 쓰레기통에 던졌다. 저 밑에서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오를 때면 하나님께 기도했다. ‘지금 죽어야 한다면 죽겠지만 4살, 6살짜리 두 아이는 어떡해요? 주님, 살려주세요.’

시골 가서 요양하라고 했지만 남편이나 그녀에겐 갈 시골이 없었다. 그때 생각난 곳이 바로 지금의 영광식물원. 오래 전에 남편의 연구를 위해 사두었다. 식물원 안에 방을 하나 만들어 거기서 살았다. 어둠 속에 매어있던 그녀가 한 발짝 두 발짝 방밖으로 나왔다. 어느 날은 기어 나오고, 어느 날은 한 바퀴 돌고 들어갔다. 호수로 물도 주기 시작했다.

독백 같은 기도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하나님, 식물에서 산소가 나온다니 이걸 마시니 좋겠네요. 하나님, 감사해요. 잎사귀도 보이네요. 하나님, 얘는 꽃이 피었어요. 아, 하나님! 공기가 느껴져요. 저기 낙엽이 졌네요.’ 그렇게 좋아하던 한국의 가을 하늘, 고개를 쳐들 힘도 없어 4년을 못 봤던 하늘, 드디어 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게 2006년경의 일이었다.

▲ 김혜순 집사는 심각했던 질병이 하나님의 도우심, 목사님의 기도, 식물의 자연치유력으로 낫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는 식물들을 통해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50대에 한국농수산대학의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50대 늦깎이 대학생이 되다
“저는 지금도 제 병이 하나님의 도우심, 목사님의 기도, 식물의 자연치유력으로 나아졌다고 말해요. 이 좋은 식물들을 사람들에게 잘 알려주고 싶어 올해 한국농수산대학도 들어갔어요. 18년 학교 역사 중 50세 넘은 학생은 제가 처음이래요. 남편이 원예쪽으로는 최고 전문가이지만 언제까지나 남편만 의지할 수 있어요? 저도 공부를 해야죠.”

‘냉장고를 열었다가 왜 열었는지 기억이 안 나 문 닫고 그냥 돌아오는’ 김 집사지만 학기말 고사까지 전투를 잘 치르고 1학기를 마쳤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또 있다. 한때 지방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식물을 사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 식물 판매의 새로운 돌파구를 걱정했더니 하나님께서 뜻밖의 사람을 보내주셔서 인터넷 판매의 활로도 뚫었다. 다음카페 ‘영광식물원’(http://cafe.daum.net/eyk)에 가면 예쁜 야생화들을 맘껏 구경하고 주문도 할 수 있다. 식물 마니아들이 혹할 수 있는 것만 올리다 보니 인기가 높다.

한때 ‘여사님’ 소리를 들으며 수천만 원짜리 차를 팔던 사람이라 몇천 원짜리 식물을 팔려니 성에 안 찰 때도 있고, 종종 말이 짧은(?) 아줌마들 때문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지만 식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 마음이 잔잔해진다. 매의 발톱 모양을 닮은 매발톱꽃, 하늘을 바라보며 활짝 핀 천상초, 뿌리가 새우를 닮은 새우란, 짙은 보라색의 정렬적인 자란 등 많은 종류의 앙증맞은 들꽃들이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서울 촌놈’에서 이제 어엿한 농부가 된 그녀에겐 이 식물들이 더 이상 비슷비슷한 ‘풀밭’이 아니다. 한 놈 한 놈이 그녀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다. 그 많은 60억 인구 중에서도 그녀의 작은 신음 소리에 귀 기울여 주셨던 하나님처럼 말이다. 죽을병에서 건져주시고 인생 1모작, 2모작을 거쳐 3모작으로 인도하신 그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어떤 손님은 저희 영광식물원을 전라도 영광으로 착각하시고 ‘내가 고향이 법성포’라고 하시면 제가 그 영광이 아니라 ‘글로리’ 영광이라고 말씀드리거든요. 많은 고난이 있었던 제 인생이 꼭 야생화 같아요. 야생화처럼 아름답고 강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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