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 칼빈 시어벨트(Calvin Seerv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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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 칼빈 시어벨트(Calvin Seerv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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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3.1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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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의 예술을 향하여 - 시어벨트의 개혁주의 미학 (1)
▲ 안용준 목사

필자가 칼빈 시어벨트 박사를 처음 뵈었던 것은 2009년 6월이었다. 그때 시어벨트는 토론토대학교 빅토리아 홀에서 진행된 ‘칼빈주의 문화관 국제 컨포런스’에 오프닝 프리젠테이션 강사로 초대되었다. 시어벨트는 말씀을 추상적으로 붙들고 산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기위해 치열하게 현실과 맞서는 인물이었다. 당시 시어벨트는 80세의 문턱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다음을 주장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 예술 선교운동이 일어날 것이고 성경에서 말하는 공의가 지구를 휩쓸 것입니다.” 좌정해 있던 옥스포드의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교수를 비롯한 세계 각처에서 모인 칼빈주의 학자들은 기립하여 박수를 보냈다.

시어벨트는 누구인가? 그는 현대 개혁주의 미학과 예술이론의 선두주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30년 롱 아일랜드에서 출생하여 칼빈대학교(Calvin College)에서 철학을(1952년), 미시간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에서 영문학과 고전학 공부를 마친 후(1953년) 네덜란드 자유대학교(Vrije Universiteit)에서 볼렌호벤(D. H. Th. Vollenhoven)의 지도아래 이탈리아 철학자 크로체(Croce)의 미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1958년). 그 후 미국 일리노이에 있는 트리니티 크리스천대학교(Trinity Christian College)에서 첫 교수단의 일원으로 학문적 형성에 공헌 했을 뿐 아니라 캐나다의 토론토에 위치한 ‘기독교학문연구소’(Institute for Christian Studies)에서 현대 개혁주의 미학의 전통을 수립하였다.

기독교학문연구소에서 시어벨트의 활약은 조용했으나 열매는 풍성한 것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4반세기를 ‘미학’과 ‘예술비평’ 강의에 몰두하였다. 그는 세속적 욕망을 초연하여 샬롬의 예술론을 전개해 나갔다. 예술 활동에 종사하나 신앙적 회의를 겪는 사람들에게는 “인류를 향한 예수님의 큰 비전을 위하여 이웃에게 구원의 복음을 제시하며 생명을 불어넣는데 우리의 모든 에너지와 사랑을 쏟아 부을 것”을 제안하며 과감하게 실험해 보라고 용기를 불어 넣었다.

이 당시 세계 각국의 시인, 화가, 극작가, 사진예술가, 음악가, 영화제작자, 철학 학도, 예술사가, 문화비평가 등 수많은 사람들이 시어벨트가 주창하는 기독교(개혁주의) 미학의 열린 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토론토로 모여들었다. 그가 지도했던 대학원생들은 서로 다른 종교적 민족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양한 미학적 주제들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하지만 시어벨트는 제자들의 미학적 주제들을 개혁주의 전통 안에서 유연성 있게 조합하였다.

시어벨트는 평생을 개혁주의 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이며 기독교 공동체를 격려하는 지칠 줄 모르는 건설자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는 개혁주의 미학이 추상적이거나 사변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구속 역사의 내용을 전개시키면서 드러내고 있다. 현대 예술이 인간의 삶 속에서 해석되고 사용되는 복잡한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고 생각할 때 매우 절실하고 의미 있는 성경적 통찰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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