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하나님의 미술관,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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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온통 하나님의 미술관, 보이시나요?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02.2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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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서울대 교수의 천국과 생명 이야기
▲ 어둠 속에서 빛이 더욱 빛나듯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김병종 교수.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체험한 하나님, 어머니의 천국 신앙에서 배운 영원한 생명을 화폭에 담으며 그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한다.

최근 작품 활동 30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가진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 김병종. 사실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글과 그림으로 많은 상을 받았으니, 따지고 보면 30년이 넘는다. 나이 서른 즈음에 최연소 교수가 되었고 이어 최연소 학장이 되었다. 인기가 많은 그의 그림 어떤 건 수 천만 원을 호가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명예나 재물이라면 별로 아쉬울 게 없으니, ‘이 세상’ 사는 재미에 푹 젖어있을 법도 한데, 그는 ‘저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아 보인다. 예상 밖이다.

요즘 지옥에 대한 설교가 없다고 안타까워하고, 천국은 과연 어떤 곳일까, 어린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하다. 그는 화폭에 ‘생명’을 담는 작가로 유명한데, 그 ‘생명’은 사실 이 세상이란 모판에 갇혀있지 않는다. 그건 영생이다. 여기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들었던 아버지의 죽음과, 이를 낙낙하게 극복했던 어머니의 신앙적 유산이 있었다.

높다란 어머니의 낡은 성경책들

김병종 교수가 열두 살 때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집에 친척들이 다 모였다. 무슨 잔칫날인줄 알고 잔뜩 들떴다. 친척 아이와 놀러나가려던 참에 오랜 병치레로 앙상한 아버지가 벽에 기대어 힘없이 물었다. “오늘 밤에도 또 나갈래? 그렇게 해라.” 핏기 없는 아버지 얼굴에 눈물이 죽, 흘렀다. 그날 밤, 낭랑한 곡소리에 설핏 잠에서 깼다. 생각해보니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이었다.

“그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심각하게 생각되지 않았죠. 그러나 살면서 아버지의 부재가 점점 깊이 느껴졌어요. 친구들과 놀다가 저녁이 되잖아요. 다른 아이들은 ‘아버지 오셨다, 들어와라’하면 다 떠나요. 어둠 속에 저만 남는 거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제겐 정말 아버지의 자리에 계셨던 것 같아요.”

이때의 체험이 나중에 ‘황색 예수’라는 그림으로 체현된다. 미끈한 백인 남자 모습의 예수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 같고 이웃집 아저씨 같은 황색의 예수.

아버지의 부재는 가장 먼저 가난으로 다가왔다. 다섯 자녀를 홀몸으로 키워야 했던 어머니(고 유봉운 권사)는 이때부터 신앙적 카리스마로 가정을 이끌었다. 어머니는 항상 툇마루에 앉아 성경을 읽고 계시던지, 아니면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나중에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앞장 날아간 낡은 성경책들이 어린아이 키만큼 높았다.

“늘 새 것 같은 제 성경책이 부끄러울 뿐이죠. 아직도 고향 남원에 어머니 사시던 집을 그대로 놔뒀습니다. 가끔 가서 대문 문틈 사이로 보면 마치 지금도 어머니가 구부정한 모습으로 앉아 마루에서 성경을 보시는 것 같아요.”

어릴 때에는 누가 도와주나 싶었다. 그렇게 궁핍했지만 수심에 잠긴 어머니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추운 겨울, 그날그날 달랑 연탄 한 장 새끼줄에 꿰어오는 형편에서도, 어머니는 항상 기뻐하셨다. 쉬지 않고 기도하셨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우스개 농담으로 눙쳐버리셨다. 어쩌다 새어나올 수 있을 탄식 한번 못 듣고 자랐다.

저마다 똑똑해서 소란한 세상
“어느 좋은 봄날에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아, 이런 날에 가면 좋겠는데... 저는 무슨 나들이를 가시나 했어요. 그게 아니라 천국을 말씀하신 거였어요. 어머니는 이 지상의 삶에 대한 비중을 한 2, 30프로 두셨을까요? 항상 천국을 사모하셨어요. 그래서 고난을 담담히 받아들이셨고, 우리 자녀들을 당신 혼자 다 길러내신 힘도 거기서 나왔던 거죠.”

이 세상을 간이역에 비유했던 어머니. 여기서 옷 좀 잘 입고 큰 집에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종종 자녀들 앞에서 읊조렸다. 그런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2남 3녀 자녀 중 예술한다는 막내 아들을 늘 못 미더워했다.

다들 장로, 권사인데, 김 교수만 20년째 안수집사(할렐루야교회). 게다가 다른 형제들은 일년간 새벽기도 한두 번 빠질 정도인데, 그는 한두 번 나갈 정도다. 어머니 눈에는 이런 막내가 늘 마뜩찮을 수밖에. 서울대에서 최연소 교수가 되고 최연소 학장이 된 것도 어머니 눈에는 별로였나 보다.

그러나 평가기준을 교회 직분이나 새벽기도 출석에서 다른 각도로 바꿔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김 교수의 어머니는 아마 막내아들에게 점수를 가장 후하게 줘도 무방하다. 그는 빛과 색의 조화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세상에 가장 아름답게 드러내는 일을 탁월하게 해내고 있다.

▲ 김 교수의 작품 ‘바보예수’.
80년대 ‘바보 예수’ 시리즈, 90년대 ‘생명의 노래’ 연작, 그리고 최근 ‘길 위에서’의 테마까지, 그는 미술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다채롭게 드러내는 일의 선봉에 서 있다.

‘바보 예수’는 사랑과 존경의 역설적인 의미였다. 바보처럼 남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주는 예수. 80년대, 한참 서울대 캠퍼스에 시위가 끊이지 않았을 때에 그도 거기 있었다. 괴로운 시절이었다. 전경과 학생 사이 최루탄이 자욱한 그 곳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떤 해결책을 가져오셨을까? 결국 자기희생과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십자가의 길을 가실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 고민의 답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바보 예수’. 오늘날 우리 사회가 여기저기서 삐걱대는 건 어쩌면 너무 똑똑한 사람들만 많아서인지 모른다.

연탄가스중독 통해 ‘생명’ 발견
90년대 들어 화폭에 생명을 추구하게 된 사건이 있다. 지난 89년 12월 말, 그는 서울대 앞 작업실에서 심각한 연탄가스에 중독된다. 가스가 혈관을 막아 온 몸 여기저기가 터질듯이 부풀어 올랐다. 전신마취가 불가능해 부분 마취로 칼을 댔다.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다.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이, 천만분의 일이겠지만, 피부로 느껴졌다.

참 길었던 그 겨울이 끝날 무렵, 2월 말쯤 병원을 나서자 어느 새 성큼 다가온 봄이 거기 있었다. 동토를 밀고 올라오는 봄의 새순. 지금까지 수십 번 봐왔을 새순이었지만, 그전과는 달랐다. 작은 꽃 하나하나에서 생명의 교향곡이 웅장하게 들려왔다. 그때 깨달았다. 아, 죽음 같은 고통 속에 생명이 있구나. 그렇게 보니, 온 세상이 거대한, 하나님의 생명과 창조의 미술관이었다. 아름다운 장면 장면마다 하나님의 낙관이 찍혀있었다.

“한 세기 전만 해도 미술은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과 만나야 걸작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 전 영역이 신앙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 쉽지 않은 때입니다. 현대 예술은 악마와 손잡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죠. 이런 때에 기독교 미술이란 참 어렵지만 그래서 더욱 중요합니다. 믿음만 앞세워서는 예술가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작가로서 훌륭한 개성과 뛰어난 조형성, 그리고 여기 영성을 겸비해야 하죠.”

신앙적 카리스마로 지배하던 어머니 곁을 떠난 청년 시절엔 방황도 했다. 성경에서 벗어나 인문학에 빠져서 글을 쓰며, 많은 고뇌와 논쟁의 자리를 오가며, 그림의 틀과 지평을 넓힌다고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따며 바쁘게 돌아다니던 그때, 이제 ‘교회쯤이야’, 하면서 신앙에서 멀어질 길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어머니가 그 길목에 서계셨다.

“어쩌다가 주일날 교회에 못나가는 일이 생기잖아요. 그러면 예외 없이 어머니에게 전화가 와요. 다른 말도 하지 않으세요. ‘오늘 예배는 잘 드렸냐?’ 제가 좀 주저하다가 ‘아, 엄마 사실은…’하면, 딸까닥 하고 전화를 끊으세요. 그러면 굉장히 맘이 무거워지죠. 어떤 질책보다 무섭고 부담이 됐어요.”

이젠 어머니의 심정이 절절히 이해가 될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죽음 너머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생명이 요즘 그의 삶의 테마다. 교회 다니는 이들마저 스스로 자기생명을 포기하는 요즘 세태가 마음 아프다. 왜 오늘날 강단에서 천국과 지옥에 관한 설교가 사라졌는지, 그는 안타깝다.

이 세상의 짧은 생명도 소중히 여길 줄 모른다면 저 세상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자격이 있을까. 취재가 끝나고 녹음기가 꺼졌다. 그러나, 그 후에도 한동안 김 교수의 천국과 생명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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