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재앙 통해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들어야
상태바
자연 재앙 통해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들어야
  • 운영자
  • 승인 2014.02.19 16: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한 교수 (기독교학술원장)

최근 자연재해를 비롯한 온갖 재해와 재난들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창세기 때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재난. 이 재난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최근 발표회를 갖고 재난이 주는 의미와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언급했다. 성경과 환경, 그리고 재난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편집자 주>

개혁주의 유신론적 세계관은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선과 복과 생명과 번영만이 하나님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악과 재앙과 죽음과 질병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귀속된다는 것이다.

재난은 역사와 자연을 그의 주권적 섭리에 따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다. 역사적 재난과 자연적 재난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아래서 일어나고 그 분의 뜻을 이룬다. 재난에는 뜻이 있다. 20세기 한국에 일어난 1910년 ‘한일합방’, 1945년 ‘해방과 분단’, 1953년 ‘6.25 전쟁’, 2001년 미국의 ‘9.11테러’는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숨은 뜻이 있다. 역사적인 재난은 민족들이 행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인식은 세상적으로 영광스러운 모습의 가시적인 현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의 명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십자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진정한 구속의 경륜을 드러내셨다. 참된 하나님의 임재는 눈에 보이는 번영과 성공을 통해서가 아니라 재난과 고통과 절망 속에 있다. 우리는 믿음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게 될 때 아들을 진노의 처형 속에 내버려두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진정한 눈에 띄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 인식이 바로 십자가 신앙을 통한 하나님 인식이다.

자연과 역사의 재난과 재앙, 이로 인한 고통 속에서 그의 피조물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낯선 모습을 그의 십자가 속에서 우리 인간의 죄와 연대하신 그리스도의 고난에 유비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인식과 경외에 도달하게 된다. 재난과 그것이 수반하는 무자비함과 냉혹성과 그것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오로지 십자가 상에서 우리와 연대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만 우리는 재난과 재앙 가운데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숨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할 수 있다. 이것이 십자가 신학의 착상이다. 이는 기복적 신앙이 아니라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체험한 신앙인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이 하나님의 음성을 믿지 아니한 고통당하는 동료에게 증거하는 신 인식을 말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자연 자체가 가진 맹목적 의지에 의하여 우리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다가오는 재난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기체인 지구 자체는 의식을 지닌 것이 아니라 유기체적 메카니즘에 의해 운영되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의 간섭이 있다.

2004년 인도네시아에 임한 지진 해일,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 임한 지진 해일 2013년 필리핀 타클로반(Tacloban)에 임한 수퍼 태풍 타이엔 등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다. 2014년 1월 전북 고창. 부안 오리농가에서 발생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중국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고병원성 AI(조류 인플루엔자)도 맹목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 재앙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버림받고 절망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 54:8). 신약 베드로 서신에서도 하나님의 인내와 긍휼을 말하고 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따라서 역사적 재앙과 자연적 재앙이 우리에게 다가 올 때 왜?(why) 이런 고통이 왔느냐고 질문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인의 태도가 아니다. 진정한 신앙인의 태도는 무엇을 위하여(for what), 무슨 목적으로(for what purpose) 이러한 재앙이 우리에게 주어지는가를 기도하면서 스스로 물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