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과 고통의 산 '아라랏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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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과 고통의 산 '아라랏산'
  • 승인 2003.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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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 안내자에게 쥐어준 웃돈이 겨울입산허가를 재촉하는 효과를 냈고, 고박사는 맹수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고통의 산’(=아라랏산)에 오르게 된다. /편집자주
등산 가이드 파라슈트씨와는 또 다시 이야기를 원점에서 시작하면서 끈질기게 아라랏 산 등반의 가능성을 찾아보았다. 오랜 경험을 통해 중동 지방의 “박씨씨" 관행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최종적으로 돈의 힘을 이용하기로 했다.

당신이 원하는 만큼 대가를 지불하겠노라는 뜻을 비췄더니 이야기는 급진전되었다. 그가 최종적으로 제시한 금액은 이번의 전체 여행 경비와도 맞먹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아라랏 산에 대한 뜨거운 열망은 그 금액의 가치를 최소화 시켰고 조금 깎아 내리는 선에서 타협을 보았다.

계약서에는 허가가 나오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효가 된다는 것과 또 산에서 어떤 사고가 생겨도 서로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는 조건을 첨가시킨 후 싸인을 주고 받았다. 사고라는 말이 마음에 좀 걸리기는 했지만 일단은 마음 먹은대로 계속 밀고 나가기로 했다.

입산 수속 서류와 계약금을 주고난 후 파라슈트씨가 소개해 준 호텔에 가서 간단히 여장을 풀었다. 호텔이라고 해야 한국의 싸구려 여인숙 정도의 수준이었고 히터도 들어오지 않아 방안은 몹시 추웠다.

입산 허가가 나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머리도 식힐 겸 택시를 불러 도시 변두리로 나갔다. 높은 언덕 위에는 흰 눈이 덮인 옛 고성이 우람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동행한 운전사와 함께 허둥대며 위로 올라갔다.

B.C. 3천년부터 조성되었다는 이 낡은 성은 적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창처럼 뾰쪽한 쇠붙이를 성벽에 붙여 놓았고 성 안쪽에 있는 바위를 수십 길이나 뚫어 우물을 팠던 흔적이 뚜렷이 남겨져 있었다. 실로 그 곳에는 인간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던 역사의 상처가 빛바랜 옛 화석처럼 허물어진 돌무더기 속에 차갑게 묻혀져 있었다.

성곽 위로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니 저 멀리 터어키의 최대 호수인 반(Van)호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산뜻하게 펼쳐져 있었다. 호수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맞은 편 이락 땅에는 좀 더 넓은 호수 우르미아(Urmia)가 있는데, 에덴 동산은 두 호수 중간 어느 지점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쫓겨난 후 이 호수의 어느 한쪽 언저리에서 물고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면서 새로운 인류의 삶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눈 덮인 옛 성을 미끄러지듯 내려와 호텔에 도착해보니 파라슈트씨는 누군가와 계속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한쪽 손으로 동그라미를 지어 보이면서 잘 진행되어간다는 무언의 표식을 해 보였다.

군부대 허가는 힘들게 나왔는데, 관할 관공서에서는 살인적인 강추위와 등반 시의 위험 때문에 계속적으로 난색을 표한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겨울 등반이 정식으로 허가 나기는 필자가 처음이었다.

입산 불가임을 안 사람들은 모두 허가신청은 고사하고 아라랏 근처에도 오지 않았는데 아무런 정보도 없었던 내가 이 산 주변에 와서야 불가능의 벽을 무턱대고 두드리고 있는 것은 무식에서 나온 용감성 때문일까, 아니면 집념에서 비롯된 모험심 때문일까? 파라슈트씨는 저녁이면 확실한 것을 알 수 있을 테니 푹 자고 내일 아침 다시 보자고 말한 후 친구인 듯한 쿠르드인과 훌쩍 나가 버렸다.

잠자리에 들기는 했지만 통 잠이 오지를 않았다. 방이 추운 탓도 있었겠지만 아라랏 산에 대한 설레이는 기대와 위험스런 고통 등이 어우러져 왠지 마음이 뒤숭숭하고 어지럽기만 했다. 시차에 혼선이 있었던지 눈을 떠보니 4시도 채 되지 않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도제목들과 머리에 떠오르는 이름들을 종이에 적어 가면서 기도 드리고 난 후 태극기와 천안대학교 마크를 정성스럽게 그렸다.

아라랏 정상에 오르게 되면 그것들을 만년설의 빙하 속에 묻어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전화벨이 울리더니 파라슈트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공서 허가가 밤늦게 나왔으니 빨리 여장을 꾸리고 프론트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묘한 이중 심리가 잠재되어 있는 것인지 그토록 기다리던 입산 허가가 나왔는데도 기쁨의 감격은 고사하고 갑자기 묵직한 눈덩이가 가슴 위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섬듯한 충격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간신히 비집고 탄 중고 시외 버스는 눈길을 미끄러지듯 달려가다 두 차례의 군 검문소를 거친 후 두 시간 여 만에 아라랏 산의 산간 고지 마을 도베야짓(Dogubayazit) 터미널에 멈춰섰다.

시내 한 복판에 있는 파라슈트씨의 등산 사무실에는 이미 연락을 받았는지 여러 명의 셀파와 포터들이 분주하게 등산 장비들을 점검하고 산에서 쓸 물건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록 등산 분야에 왕초보이기는 하지만 산에 오를 때 필수적으로 휴대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하켄이나 피켈, 자일 등은 보이지 않고 고작해야 텐트와 슬리핑 백, 버너 등이 전부였다.

좀 불안하기도 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아라랏 산은 만년설과 지질이 약한 화산암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등산 장비에 의존했다가는 목숨을 잃게 되기가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안전한 등산 방법은 손과 발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귀뜸해 주었는데, 몇 천년에 걸쳐 경험적으로 전수된 쿠르드인들의 원시 방법은 아라랏을 올라갈 때 비로소 최선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파라슈트씨는 케비넷에서 독일제 산탄 엽총을 꺼내 주면서 맹수가 접근하면 30m 전방에서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기라고 총 쏘는 법을 일러 주었다. 자기는 이 총으로 곰과 이리 등 여러 마리를 죽였노라고 자랑삼아 말하였다.

현지인들은 아라랏 산을 아그리 다기(Agri Dagi)라고 부른다. 오르기가 무척 힘들고 매우 위험한 “고통의 산"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위험한 고통의 산을 힘들게 올라가라고 재촉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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