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한국교회 원로들에게 듣는 새해 덕담과 꼭 간직할 성경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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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한국교회 원로들에게 듣는 새해 덕담과 꼭 간직할 성경말씀
  • 특별취재팀
  • 승인 2014.01.07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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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죄, 주님의 피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그러나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저는 오늘의 부끄러운 한국 교회와 사회를 바라보면서 새해의 덕담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내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면서 울고 싶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제사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나의 영적인 퇴보를 고백하면서 울고 싶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대신 나 자신과 나의 지식과 나의 신학과 나의 경험과 나의 명예와 나의 쥐꼬리만한 의를 믿고 의지하는 나의 불신앙을 고백하면서 울고 싶습니다. 주님과 이웃과 먼데 있는 불우한 사람들을 사랑하지도 못하는 나의 무정함을 고백하면서 울고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지도 화해하지도 평화를 이루지도 못하는 나의 오만과 독선과 위선의 죄를 고백하면서 울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이 몸에 지녔던 약함과 어리석음과 궁핍과 멸시 받음과 능욕과 핍박과 고난을 설교로는 예찬하면서도 실제로는 싫어하며 거부하는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죄악을 고백하면서 울고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절망하지는 않으면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붙잡고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간구할 뿐입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시103:3).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5:20). 하나님께서 저주를 받아 마땅한 나 같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고 나의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죄가 더한 곳에 은혜를 더욱 넘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하는 다윗과 사도 바울의 고백들을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 막측하심이라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시139:14,17,18).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9:15).

결국 저는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받는 고난도 핍박도 죽음도 개의치 않고 자기의 모든 것을 드리고 싶어하는 사도 바울의 소원과 고백의 말씀들을 귀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고후12:10,15).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끝으로 부족한 죄인인 제가 최근에 쓴 글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부족한 죄인으로 하여금 주님과 누군가를 위해서 제물 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제물 되는 죽음을 죽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순교자들의 기도소리와 흘린 피를 기억하시고 나의 수 많은 죄악을 주님의 피로 용서하여 주시고 씻어주시옵소서.”

한 말씀 더 드립니다. 어두움이 깊어갈수록 밝은 아침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고 생각합니다. 사사시대나 교회역사를 돌아보면 타락과 어두움의 시대 그리고 회복과 밝음의 시대가 반복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이 주어지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들이 준비되었을 때 회복과 밝음의 시대가 도래하곤 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어두움의 시대가 그치고 밝음의 시대가 속히 도래하기를 소원하며 기다립니다.

길선주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장기려 박사님들과 같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제물들이 여섯 분들만이라도 준비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일 아침 동녘에는 다시 태양이 떠오른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원로)

“너희가 오른 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사 30:21

조지 오웰의 ‘1984’라는 소설에 나오는 예언적 이야기는 137개 중에 100개 정도는 맞았다고 합니다.
탄도탄, 핵무기 소형화, 우주 군사위성 등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놀라운 상상력을 과시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 전체가 가지고 있는 사상은 비관주의적 역사관입니다. 그는 세계의 모든 나라가 전체주의 사회가 될 것이고, 자기 조국 영국도 공산화될 것이며 60년대에는 3차 대전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는 1947년에 이미 핵전쟁을 두려워하여 스코틀랜드의 작은 섬으로 이주했으며, 이 소설도 거기에서 집필했다고 합니다.

오웰이 예견했던 것 중에서 맞춘 것이 많았는데 그런 것은 대체로 사람들이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들은 잘 맞추지 못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실패한 경험이 많거나 육신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진 사람들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나 역경 속에서도 낙관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신앙의 힘 덕택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비관론자들이 있어 극단적인 종말론을 부르짖으며, 현실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제가 학생 때 농촌계몽 활동을 많이 했는데, ‘무엇이든지 안 된다’고만 생각하는 것이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그러다가 한 가지, 두 가지 가능한 일부터 시작해서 성공하는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이제는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비관적인 생각보다는 낙관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역사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봅니다.

하나님 없는 역사는 비관적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낙관적인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밤은 벌써 지나가고, 아침이 가까이 온다. 그대여 함께 노래하자. 저 샛별을 보자”라는 독일 교회 찬송가를 기억합니다.

처칠 경의 유명한 연설 중에 어느 고등학교에서 한 졸업 연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Never give up)!” 약 1분 후 다시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다시 1분을 기다리다가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한 뒤 연설을 끝냈다고 합니다. 이 정신은 처칠경 자신의 생활신조였습니다. 지금은 캄캄한 밤일지라도 어둠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일 아침 동녘에는 다시 태양이 떠오른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를 태양이 뜨면 광명한 아침에 세워줄 것입니다.

한국 교회를 생각하면 암담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지 회의를 품게 됩니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오늘날 한국 교회보다 더 어두웠지만 하나님께서 마르틴 루터나 츠빙글리, 부쳐, 칼빈과 같은 개혁자들을 통해서 교회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언제나 새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한국 교회가 새로워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교회갱신운동과 연합일치운동에 매진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 30:18)”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사 30:21)”
한국 교회여! 새해에는 정의의 하나님을 모시고 희망을 노래하며 바른 길로 달려갑시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교훈 되새길 때
장차남 목사(부산 온천제일교회 원로)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 6:7


2014년 새해를 맞아 한국 교회에 희망과 기대를 가집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침륜과 퇴행의 수렁에 빠져 급기야 바닥을 쳤습니다. 밤이 깊으면 여명이 시작되고 바닥을 치면 상승하게 되듯이 한국교회도 회심과 자정을 통한 개혁과 회복의 시점이 되었다고 봅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란 말처럼 이제 한국 교회는 성도들 각자가 신앙생활에 충실하고 지교회 봉사에 힘쓰며 연하여 국가사회에 기여해야 온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는 이 교훈을 새겨야 합니다.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오지랖 넓게 온갖 일에 관여하기보다 침묵하는 다수가 그 사회의 터전으로 파수꾼인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나는 오늘의 시점에서 한국 교회가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모습을 상기하는 뜻에서 사도행전 6:7의 말씀을 함께 음미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여기 초대교회에선 교회의 성장을 말씀이 왕성하다고 했는데 한국 교회에선 오히려 외형의 모습으로 성장을 평가하여 물량주의에 매몰된 가치관 전도현상이 왔습니다. 그 결과 물질, 숫자, 성공 등 상업주의로 치닫는 세속화가 편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2014년 한국교회는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교세가 상승하고, 심지어 핍박하던 종교지도자들까지 복종할만큼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어야 합니다(행19:20).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이라며 말씀을 추구하고 말씀을 경청하며 말씀에 복종하던 종교개혁운동이 한국 교회에서 재흥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왕성한 교회일 때 신령한 교회, 진실한 교회, 성결한 교회, 선교적 교회, 생동적 교회로서 거듭나게 됩니다. 새해에는 성령이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진정한 부흥의 모멘트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한국 교회가 지교회 목회에 충실하므로 전국 각지에 산재한 수많은 교회들이 말씀으로 육성된 튼실한 교회들일 때 그들의 의식과 생활과 참여와 영향이 지역과 동포의 길잡이가 되고 지킴이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어떤 점에서 풀뿌리민주주의와 맥이 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지교회 목회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구제문제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였듯이 소수파가 소외되거나 불이익 당하지 않도록 직분의 역할을 나누어야 하고 목회자가 오직 기도와 말씀사역에 전무하여 선택과 집중을 잘 할 때에 교회가 영적으로 강화되고 범사가 형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와 더불어 한국 교회는 주님의 교회로서 공교회성을 유지하며 세속화를 극복해야 복된 미래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지교회와 노회와 총회란 교단적 차원이 아닌 지역교회, 전국교회의 교계 연합사업일 때 이는 어디까지나 공동적 관심사에 대한 공동대처라는 협의적 차원일 뿐 그 한계를 벗어나서 일탈이 있어서 안됩니다.

최근 한국 교회의 연합기구가 만신창이가 된 것은 교단을 대표한 협의기구라는 제한성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협의기구가 권력화되어 헌법적 기구인 교단총회의 상위기구인냥 행세함이 금기의 선을 넘는 경우였습니다.

예컨대 이단을 매고 푸는 것은 헌법기관인 교단총회가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일개 협의기구인 연합단체가 임의로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은 연합운동을 해칠 뿐 아니라 교계혼란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그러므로 2014년, 한국 교회는 연합운동을 하더라도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교단 간의 협의를 위해 기존의 연합기관을 배제한 채 백지 위에서 새로 모색을 해야한다고 보며 당분간은 사안에 따라 주요 교단들간에 직접적 협의를 통해 타개함이 옳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정세와 동북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작금의 사태를 지켜보며 한국 교회가 시대와 징조를 분별하는 안목을 가지고 더욱 통일의 시대를 준비하며 통일의 의지를 가지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에는 교단의 벽을 넘어 한국 교회 총량의 연합과 협력이 요청됩니다.

2014년, 한국교회의 365일이 참으로 신뢰의 디딤돌이요 희망의 징검다리이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라는 단어 기억하는 새해
김성수 주교(전 성공회대 총장)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주기도문)

제가 여러분들에게 제안하는 새해 성구는 ‘주기도문’입니다.

사실 그때 그때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바뀌는 것이 사실인데, 요 근래 주기도문이 부쩍 좋아집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주기도문 안에 ‘우리’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인데요, 짧은 기도문 안에 총 여섯 번 ‘우리’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우리’라는 단어만 있다면 서로 싸울 이유조차 없어집니다.

오랫동안 몸이 아파 소록도에 머물다 건강을 되찾은 한 사람이 말하길 “인생에는 두 의사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몸을 치료하는 의사이고 두 번째는 ‘이웃’”이라고 했답니다.

이웃과 함께 문제없이 지낼 때 건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혹여 이웃 누군가를 소외시킨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고로 우리 자체가 하나님이 보내신 의사들이며, 우리 이웃들이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부딛히다 보면 서로 못났다는 생각도 간혹 들겠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생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다들 내가 이웃에게 건강을 전해주는 제 2의 의사라는 생각을 가지고 올 한해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만 바라보고 삽시다”
정주채 목사(향상교회 은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 골 3:1~2

새해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저는 골로새서 3장 1, 2절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

얼마 전 은퇴를 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는 시점에서 너무 땅의 것만 바라보고 살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나날들이 아쉬웠습니다.

이 때문인지 최근 성도들 앞에 서면 “하늘을 보고 살자”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인데, 그곳의 영광과 축복을 바라보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의 것을 끊었으면 합니다.

‘세상적’으로 일원화 되어버린 한국 교회를 바라보며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소망과 목표를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 삼고, 소망을 붙잡는 2014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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