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태화의 문화칼럼] 기독교 인간학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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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문화칼럼] 기독교 인간학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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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07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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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종횡무진 문화읽기 (15)

2014년도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힘차게 출발했다. 믿음 소망 사랑의 기치를 높이 들고 열국이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사랑의 힘으로 멋진 항해를 시작했다. 우리 인생 범선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에서 끊이지 않고 불어오는 순풍에 돛을 달고 순항에 순항을 거듭 할 수 있다. 때론 비바람을 몰고오는 폭풍도 만나리라. 거친 파도에 배가 흔들거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저 먹구름 뒤엔 언제나 맑고 밝은 태양이 빛나며, 모든 항해에는 분명 끝이 있고 아름다운 미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인생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순례이다. 어려움이 있고, 고해(苦海)를 건너는 것같이 보여서 때로는 황망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생은 방황이요 방랑이 아니라, 순례라는 것이다. 약속의 땅을 향해 한 발걸음 씩 걸어나가는 믿음의 행진이다.

베드로 사도는 그런 순례자를 이렇게 부른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이보다 어찌 더 구원받은 인간을 높여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여기서 잠깐. 2014년이 십이지간으로 말띠 해라고 한다. 그것도 청마의 해라 길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어댄다. 심지어 이런 얘기는 목회자들의 입에서도 흘러나온다. 적이 삼가야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말(馬)에 비할 바 아니다. 매해마다 십이지간의 동물에 비하여 장점을 찾아보려는 인간의 허무맹랑한 습관은 정녕 자기비하가 아닐 수 없다. 기독교인들마저 십이지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운운한다면, 결국에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모독하고, 성령을 훼방하는 무지한 행동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전통의 애교라고 보기엔 너무 지나쳐 보인다. 소나 돼지, 원숭이 같은 짐승에게서 인간의 인격과 운명을 비유하려는 모습은 거룩한 반열에 오른 자들이 행할 농담이 아니다. (이는 동물과 인간의 절대적 비교와는 또 다른 관점의 문제다.)

주후 2014년도, 올해는 성경을 통해 고귀한 인간의 본래 모습을 찾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느끼며, 믿음의 백성답게 허황된 신화 이야기에서 사람의 본질을 찾으려 하지 말자. 성경의 인간학, 기독교 인간학을 더욱 확립하여 인간의 참된 모습을 이뤄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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