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기쁜 소식이 들려올 새해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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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기쁜 소식이 들려올 새해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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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07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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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2013년 12월 25일은 마지막 수요일이었다. 물론, 크리스마스였다. 세계의 교회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아기예수가 이 땅에 갖고 온 평화의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며 지날 무렵,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한겨울의 추위를 무릅쓰고 도심 한복판에 섰다.

할머니들 옆으로 수많은 청춘들이 둘러섰고, 단에는 네 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영정사진과 그 분들의 삶을 기리는 촛불이 켜졌다. 올 한 해 소망하던 문제 해결을 맞이하지 못한 채 눈을 감으신 네 분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며, 그 분들의 희생을 추모하는 집회로 진행된 제1106차 수요시위가 그렇게 성탄절, 우리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에게 그 날은 그 모습 자체로 ‘죽기를 각오하고’ 이 땅에 오신 예수의 몸이었다.

1990년대 후반, 침묵하고 있던 세상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교회여성연합회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동안 한국의 교회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웃의 아픔으로 싸안지 않았다. 피해자들을 간음한 여성으로 취급하여 교회와 구별하려 했다. 그 여성들이 겪었을 전쟁에서의 공포와 참혹함에 대해서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 여성들을 그렇게 내몰았던 식민지 조선의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책임에 대해서, 그 여성들을 그렇게 몰아갔던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에 대해서도 입 닫고, 귀 막고, 눈 감고 있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그 할머니들의 삶을 애달파 하며, 할머니들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손을 내밀고, 차가운 길거리에 함께 서기 시작하고, 한국의 권력자, 정치지도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할머니들에게 교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할머니들과 함께 거리에 서기도 하고, 할머니들의 문제를 교회 안으로 가지고가 함께 기도하기도 하고, 할머니들의 떠돌이 보금자리를 걱정하며 안정적인 쉼터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할머니들의 삶에 보탬이 되라고 헌금을 전달해 주기도 했다.

그런 마음들이 거리에 서는 할머니들의 마음에 전달되어서였을까? 불과 5년 전의 수요일들과 지금 수요일들에 찾아오는 할머니들의 마음은 참 많이 다르다고 말한다. 죽을 때까지 하겠다는 다짐으로 그 거리에 서 있지만, 그 무게감은 훨씬 가벼워졌고, 느껴지는 추위도 훨씬 포근해졌다고 하신다. “이제 눈을 감아도 불안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죽어도 나를 대신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할머니의 이 말씀에서 그분들이 무엇을 우리에게 갈망하는지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 분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눈감을 수 있게 해드리는 것은 그저 옆에서 눈물 흘리고, 불쌍하다고 타인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과 함께 거리에 서고, 그 분들의 목소리를 내 목소리에 담아내고, 그 분들의 역사를, 삶 내 몸 속에 담아내는 것, 그것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불의한 억울함을 살아낸 것은 그 여성들이었지만, 그 불의를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우리의 책임으로 감당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2014년 1월 1일, 새해 첫 날, 할머니들은 다시 그 거리 위에 섰다. 평화로 시작하여 평화로 마무리하는 2014년 한 해 동안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그분들의 삶을 자신의 몸으로 담아낼 수 있는 교회들이 ‘일부’가 아닌 많은 교회들이 할 수 있다면, 2014년에 해방의 기쁜 소식이 할머니들에게 하루라도 더 빨리 전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 해방의 기쁜 소식이 우리의 후세대들에게는 평화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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