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선소설] “히말라야건 피라미드건, 나는 올라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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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특선소설] “히말라야건 피라미드건, 나는 올라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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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03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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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닮은 그 사내

새벽 한 시가 넘어서 겨우 잠이 들었는데 결국은 두 시간도 못 돼서 일어났다. 요즘 생긴 버릇이다. 회사를 그만 둔 지 한 달인데 앞으로는 어찌될지 슬슬 걱정이 되기는 하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내가 십대 아이들처럼 게임을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려는 건 아니다. 미국에 있는 마누라와 딸 때문이다 어쩌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전화를 받지 못하면 마누라의 잔소리는 경고와 악담으로 이어진다.

‘돈도 쥐꼬리만하게 보내면서 맘대로 해! 나랑 미미는 죽어도 한국에 안 들어 가! 홀애비로 살든 재혼을 하든 맘대로 해 봐!’

다행이다. 전화가 온 흔적은 없었다.

아침이지만 이제 나는 갈 곳이 없다. 그래도 오늘은 직장 동료들과 함께 강남에 있는 케이유 파이낸스라는 회사를 찾아가기로 했다. 석 달만 미친 듯이 여기를 들락거리면 연봉 일억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들었다. 한 동료는 케이유가 악명 높은 다단계니, 피라미드니 하며 뒷걸음질쳤지만 지금 나는 피라미드이건, 히말라야이건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야 한다.

나는 지난달에 결혼한 서른 여섯의 박진국과 나와 동갑내기인 인사팀의 강 부장과 함께 대륙빌딩 지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정 부장님, 아무래도 수상해요.”
“뭐가? 아줌마, 여기 담배 돼요?”

나는 휴지로 입가를 닦으며 물었다.

“이 건물 전체가 금연이에요.”

박진국의 대답은 아줌마의 말보다 한 발 늦었다.

“피라미드 회사 아닐까요?”
“지금 그게 문제야? 우리 모두 집에는 아직 말 못했는데 아침마다 나와서 갈 곳은 있어야 하잖아. 그런 의미에서라도 일단 가보자구.”

강 부장의 말에 박진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겨우 신혼 일 개월이잖은가.

“그런데 자네 혼인신고는 했어?”

내 물음에 박진국은 얼굴을 흔들었다.

“요즘 여자들은 적어도 일 년은 살아보고서 애도 낳고, 혼인신고도 한대요.”
“뭐, 일 년? 이거 미치겠군. 막 가는 세상이야. 이봐, 진국씨. 여하튼 혼인신고 하기 전까지는 회사 문 닫은 거 비밀로 하고, 어디서 딸라 빚이라도 얻어서 달마다 꼬박꼬박 마누라한테 월급을 갖다 줘야 해. 아무리 죽자살자 연애해서 하는 결혼이라고 해도 남편이 실업자가 되면 가차없이 떠나는 게 요즘 여자들이니까. 사 십이 다 된 우리 마누라도 모를 일이야. 나도 무서워서 말하지 못하는데, 자넨 겨우 신혼 한 달이니….”
나는 지갑에서 천 원 짜리 다섯 장을 꺼내며 박진국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이미 이혼을 선고받은 사람처럼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어허, 정 부장. 그만 해. 방금 밥 먹었는데 체하겠어. 일단 나가서 커피나 한 잔 마시고 올라가자고. 강연 시작하려면 이 십분 정도는 여유 있으니까.”

우리 셋은 식당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을 피해 빌딩 로비 창가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정 부장네 딸은 미국에서 언제까지 공부해야 해?”

심하지는 않지만 자폐아 판정을 받은 막내아들 때문에 아예 두 아이를 모두 대안학교에 입학시키고, 집까지 경기도로 옮긴 강 부장이 물었다. 대안학교라 해서 학비가 저렴하지도 않아 강 부장 역시 늘 돈으로 시달리는 사람이다.

“이제 겨우 일 년 했는데 뭘…. 언제나 끝날지….”
“부장님. 우리 와이프도 애 낳으면 조기 유학시킨다고 하는데 걱정이네요.”

박진국은 마치 쓴 한약을 억지로 마시는 사람처럼 커피를 마셨다. 얼굴은 이미 커피물처럼 어두워졌다. 나는 그의 입술 모양이나 거기서 흘러나오는 말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억지로 웃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려주었다.

“이봐, 진국씨. 지금 조기유학이 문제야? 잘못하면 조기 이혼 당하게 생겼는데. 자, 올라가자구.”

나는 앞장서며 생각했다.

‘박진국은 그래도 젊다. 하지만 나와 강 부장은 마흔에 실직했고, 받을 유산도 없고, 저축은커녕 사 놓은 주식도 없다. 자동차는 그럭저럭 할부를 끝냈지만 아파트는 아직도 융자상태이다. 결정적으로 우리는 마흔이다.’

백 평이 넘는 듯한 강당 안의 모든 자리는 꽉 차 있고, 그 외의 공간은 서 있는 사람들로 빽빽 해서 마치 품질 좋은 인공잔디밭처럼 보였다. 우리는 자리에 서서 강연을 들어야 했다.

“정 부장님, 굉장한데요? 그런데 여기 온 사람들이 모두 실업자인가요?”
“그랬다가는 차라리 대한민국에 취직혁명이 일어나지. 내가 알기로는 반은 실업자고, 반은 직장은 있지만 명예퇴직 없는 안전빵 인생을 위해 새 길을 찾으려고 온 사람들이야. 그러고보면 국회의원들이 여길 한번씩 견학해야 하는데. 그래야 지들 직장인 국회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 거야. 하지만 그런 작자들은 직장 없어도 평생 골프치고 편하게 살겠지.”
“정 부장님은 정말 날카로우세요. 정 부장님 같으신 분이 서울대만 나왔어도 삼성 같은 데서 벌써 이사 자리 하나 맡으셨을 거예요. 힛힛힛….”

박진국의 말이 귀에 들어오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때, 귀가 먹먹할 정도로 박수가 터졌다. 강연자가 나왔다. 나보다는 대여섯 살은 어린 듯한 그 역시 깔끔한 차림이었다. 이미 확보한 정보이지만 강남역 김 부장으로 통하는 그는 케이유 안에서 가장 유능한 성공 사례자이다. 그래서 그는 강연만으로도 억대 연봉을 받으며, 경제전문 케이블 방송의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그는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없이 모여든 사람들에게, 날씨가 추운데 와줘서 고맙다, 새해 계획은 잘 세웠냐, 요즈음 경기가 안 좋아 살기 힘들지 않느냐, … 따위의 인사말은 없었다. 대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와인 이름들을 수십 가지 내뱉었다.

-자, 여러분. 대충만 해도 프랑스 와인이 대강 이 정도입니다. 즉, 프랑스 와인의 일부분 밖에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호주, 캐나다, 미국, 이태리, 스페인, 칠레, 독일, 아르헨티나, 남아공, 포르투갈 것까지 다 말하자면 끝이 없죠. 아하! 우리나라 것도 있죠. 그런데, 여러분 중에 내가 말한 와인 중 몇 개나 마셔 보았나요? 그저 죽으나 사나 쏘주, 쏘주 인생 아닙니까? 중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그 무식한 쏘주가 이제는 지겹지 않습니까?

여기저기서 가벼운 박수와 웃음소리가 흘렀다.

-즉, 여러분의 신분은 언제나 천민수준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하루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거나, 아무 대책 없이 중년을 지나고 노년을 맞는다는 겁니다. 믿는 거라곤 보험 몇 개 들어놓은 거겠죠. 하지만 그 보험, 여러분이 저승 갈 때나 나오는 겁니다.

김 부장의 말에 박수와 웃음소리는 단번에 사라졌다. 마치 수치심에 황급히 몸을 감추거나 아무 데고 얼굴을 파묻는 듯했다.

-여러분!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부터 부자가 되라! 아랫목이 따뜻해지면 윗목도 따뜻해지는 법이니까! 일부가 먼저 부자가 되는 것을 인정해서 가난한 사람이 따라 배우게 해야 한다. 이것은 덩샤오핑의 선부론입니다. 그는 사회주의자이면서도 모두가 가난해지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은 개혁과 개방 이후 서서히 이념보다는 지식과 기술을 강조했죠. 그렇다면 그 지식이니 기술이니 하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쉽게 말해 돈 버는 지식이자 기술입니다!

김 부장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대중들이 원하는 게 무어던가. 요순시대가 달리 태평성대였던가? 집집의 굴뚝에서 날마다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면 그게 요순시대 아니었던가. 이십 일세기라 하여 뭐가 다른가. 잘 먹고 잘 살게만 해준다면 그가 네눈박이 괴물이건, 양심을 악마에게 저당 잡힌 자이건, 이중, 팔중, 십중 국적 소유자이건 개의치 않는다. 대중은 이토록 순진하고, 아량이 넓으며, 처절하다.

-지금 중국 부의 칠십 프로를 십이억 인구 중 단 영점 삼 프로의 부자들이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 영점 삼 프로의 부자들은 그야말로 아무리 아무리 먹어도, 아니, 먹으면 먹을수록 허기가 심해지는 존재들입니다. 경제 공부 좀 하십쇼. 그러니 마누라는 물론 애들까지 무시하지 않습니까!

김 부장은 또 탁자를 내리쳤다.

-여러분, 이제 중국에서 농민 혁명이나, 노동자 혁명 같은 피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부자들이 앞서가고 나머지는 따라간다, 라는 말처럼 십이억 중국인의 혁명이란 돈을 향해 애걸의 하소연을 하며 울부짖으며 따라가는 무리입니다. 피리 부는 부자를 따라가는 것, 그것이 혁명이라면 혁명일 것입니다. 돈맛과 돈의 위력을 아는 현대의 농민과 노동자, 서민들은 혁명대신, 자포자기하거나 부자들에게 순종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는 기분이 나빴다. 연신 우리들을 싸잡아 비야냥 거리는 게 속이 울렁거렸다.

-하루에 일억을 벌어도 기쁘지 않다는 어느 중국 부자를 보았습니다. 이미 부자의 경지를 넘어선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루이뷔똥과 구찌와 샤넬 백을 사지 않습니다. 그 대신 루이뷔똥과 구찌와 샤넬 기업을, 심지어는 영국과 프랑스와 이태리를 통째로 사들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단 몇 백만 원의 카드 빛이나 사채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 하며 고통에 떨다가 이 자리에 온 것 아닙니까? 내 눈에 다 보입니다. 여러분 중에 십 프로는 오늘 나를 만나지 못했다면 한강 다리이건, 지하철이건, 냄새나는 여관방이건 혼자 외롭게 생을 마감했을 인생이 보입니다. 아, 참으로 암담한 현실입니다. 교회요? 울면서 교회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있어도, 여기 왔다가 비참하게 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식구들에게 미안하다, 먼저 간다, 라는 유서 한 장 외에는 남겨 줄 재산 없이 죽으려고 했던 가장들이 이곳을 통해 새 출발하는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니 바로 여기가 진정한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교회에서는 철야기도를 하며 부자 되게 해달라고 통곡기도를 한다지만, 희뿌연 새벽에 교회를 나서는 그들이 갈 곳은 없습니다. 현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공의 밤입니다. 돈을 내 하인으로 삼는 밤입니다. 단언하건데 돈은 죄가 없습니다. 죄인은 바로 무능한 여러분들입니다!

김 부장은 물 한 잔 마시지 않고도 막힘없이 꾸역꾸역 말을 토해냈다. 오직 돈 만 생각하기 위해 황금빛 넥타이를 매고 다닌다는 김 부장은 그것조차 느슨하게 여미지 않았다. 김 부장이 양복을 벗으면 땀구멍 대신 바늘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고 작은 비닐로 온 몸이 덮여 있을 것 같았다. 파충류?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김 부장에게 잘못을 빌었다.

‘말이 경영학 전공이지 어영부영 졸업했고, 회사 다니며, 결혼도 했습니다. 그런데 남들처럼은 살아야 한다는 꾐에 중형차도 사고, 아파트 평수도 늘리고, 여름에는 바다로,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다녔습니다. 양가 부모님들 해외여행도 보내드렸지요. 그런데다가 지금 마누라랑 딸은 미국에 가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회사가 문을 닫았다는 겁니다. 일 주일 전, 간부 회식 때 함께 술 마시고 질펀하게 놀았던 사장이 다음 날에 식구 모두 데리고 중국으로 간 겁니다! 나는 가족과 사장놈을 만나기 위해 미국이랑 중국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비행기표가 없습니다. 마누라한테 돈 붙여주고, 얼마 남은 것을 사장 찾으러 다닌다고 동료들이랑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변호사 세우고, 진정서 제출하고 다니며 홧술 마시다보니 다 써버린 겁니다. 모두 이 나라를 떠나는데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먼저 나오긴 했으나 강 부장과 박진석을 기다려야 한다. 딱히 그들을 만나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아쉬워서이다. 지금 상황에 같은 처지의 그들이라도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그렇다면 다시 저 빌딩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아니, 올라가야 하는가?’

나는 멍한 눈으로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찬바람 탓인지 온몸에 한기가 오르며 갑자기 열이 올랐다.

‘그래, 올라가자, 올라가자!’

그때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빌딩 경비원인 듯한 제복의 남자가 ‘거기 뭐하는 거요?’ 하며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나는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뛰었다. 그리고 얼핏 뒤돌아보는데, 쫓아오는 경비원 뒤로 한 사내가 빌딩을 맨 손으로 오르며 나를 보고 싱긋 웃고 있었다. 나 닮은 사내가….

◀ 노경실 작가 - 한국일보,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소설과 동화 당선됨. 현재,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국립중앙도서관 소리책나눔터 부위원장. 작품은 상계동아이들, 복실이네 가족사진, 열네 살이 어때서, 사춘기 맞짱뜨기, 우리 아빠는 내 친구, 철수는 철수다, 짝꿍 바꿔주세요, 등 많은 책을 펴내고, 활발한 번역작업을 하고 있음. 일산 벧엘교회 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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