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결산] “울고 웃고 한숨짓고” … 교회사는 이들을 기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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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결산] “울고 웃고 한숨짓고” … 교회사는 이들을 기억할 것
  • 특별취재팀
  • 승인 2013.12.2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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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보는 2013 한국교회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에게 빛이 되어주고 부패한 사회가 썩지 않도록 짠 맛을 내야 한다. 그러나 교회가 먼저 부패하고 있다. 한마디로 위기다. 희망을 주던 이들도 사그라져 갔다. 인권과 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만델라. 에큐메니칼운동의 기틀을 마련한 오재식, 결국 NGO의 목적도 선교여야 한다는 가르침을 남긴 정정섭 등 많은 이들을 잃었다. 감사한 것은 혼란 속에서도 자신의 것을 내려놓은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편집자 주>


김삼환
비난도 감내하며 WCC 총회 이끈 김삼환 목사
보수적 신앙과 복음주의적 목회에 평생을 바쳐온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의 이력은 WCC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앞에서 ‘에큐메니칼’이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얻었다. 문제는 반 에큐메니칼 정서와 반 WCC 공격이 거세지면서 그의 신학이나 신앙과는 상관없이 용공, 다원주의로 몰려갔다는 점이다.

진보와 보수가 함께 하는 축제로 WCC 총회를 치르고자 했던 그의 마음은 ‘호기’였을까. 범 복음주의연합을 기치로 내건 WCC 총회의 후유증은 컸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아니고서는 재정을 감당할 수 없다며 교단 중심이 아닌 개교회 중심의 상임위원회를 구성하고 복음주의권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교회협 등 진보그룹과 선긋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교단들의 외면과 상임위원들의 무책임에 상처를 받아야 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WCC 반대운동은 그를 더욱 거세게 몰아붙이며 명성교회 앞에서 피켓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측근들조차 그에게 WCC의 정확한 성향을 말하지 못했나보다. 총회 마지막날 발표된 한반도 평화선언은 김 목사의 정치적 입장과 상당히 배치되는 내용을 담으면서 급기야 마이크를 붙잡고 “우리 한국 교회는 박근혜 정부와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지지한다”는 해명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가 만일 WCC 총회 최대 피해자라면 분명히 누군가는 김삼환 목사를 이용해 ‘최대 이득’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김 목사는 비난의 화살을 홀로 감당하고 끝까지 WCC총회 성공개최를 마무리하며 세계 교회 앞에 약속을 지켜냈다.

넬슨 만델라
지구촌 ‘평화의 별’이 지다, 넬슨 만델라
지난 5일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95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지난 6월 지병이었던 폐 감염증이 재발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9월 퇴원해 요하네스버그의 자택에서 치료를 받던 중 별세했다.

한국 교회가 2013년을 마감하며 만델라를 기억하는 이유는 인종 분리 정책을 철폐하기 위해 그가 세계교회협의회와 협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1998년 짐바브웨에서 열렸던 제8차 WCC 총회에도 참석해 인종 분리 철폐를 위해 수고해 준 WCC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파국을 막기 위해 백인 정부, 줄루족 등과 협상을 벌여 민주적인 선거를 관철시켰고, 이런 공로로 1993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어 이듬해 남아공 최초의 흑인참여 자유총선거에 의해 구성된 다인종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대한민국에는 ‘아시아의 만델라’라고 불리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과의 인연으로 2001년 만나기도 했으며, 당시 두 사람은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세계 평화의 증진과 민주주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자며 ‘세계 평화 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WCC의 울라프 트베이트 총무는 빈소를 방문해 애도의 뜻을 전했고, 국가조찬기도회, 세계성시화운동본부 등은 지난 17일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추모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정주채
목사 신임 묻고 ‘5년 조기 은퇴’ 정주채 목사
보수 교단인 예장 고신총회가 배출한 ‘개혁’ 아이콘을 가진 인물. 이런 이미지로 인해 교단 내외부적으로 갈등하는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한국 교회는 행동이 동반된 정 목사의 주장들을 강하게 지지했다.

정주채 목사는 담임 목사에 대한 신임을 물은 목사로 유명하다. 본인이 시무하던 향상교회 정관에 ‘7년마다 담임 목사에 대한 신임 투표’ 조항을 삽입했고, 한국 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충격을 넘어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담임 목사들은 한번 위임을 받게 되면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은퇴 시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상황. 하지만 정 목사의 이런 결정은 위임을 받은 목사라 해도 성도들의 신임을 받지 못할 경우 언제든지 짐을 싸야 한다는 일종의 위기의식을 심기에 충분했다.

자신감이 있어서였을까. 2007년 12월 실시됐던 정주채 목사에 대한 신임 투표 결과 향상교회 교인 96.9%가 정 목사를 변함없이 신뢰하고 있다며 지지했다.

한국 교회가 정 목사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조기 은퇴’다. 정 목사가 소속된 교단인 예장 고신총회의 목회자 정년은 70세. 하지만 정 목사는 지난 11월, 은퇴를 5년이나 남겨두고 과감히 은퇴했다. 40대 후임 목사에게 교회를 맡겼다. 정 목사는 “딸만 셋이라 (교회를) 세습을 하지 못했다”고 익살을 떨었지만, 사람들은 “아들을 10명 두었다고 해도 세습을 하지 않을 목사가 정 목사”라는 신뢰를 여전히 보내고 있다.

저스틴 웰비
한국 교회의 물음에 응답한 캔터베리 대주교
제10차 WCC부산총회 참석차 방한한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며칠간의 짧은 기간 동안 한국 교회에 많은 것들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의 방한 기간 중 가장 크게 주목받았던 일정은 지난 11월 3일. WCC부산총회의 주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의 예배에 참석했던 그는 성찬 시간에 아직 어려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이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세계성공회의 수장인 그는 아이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고 축복기도를 해주는 등 친근한 모습도 보였다.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던 것은 같은 날 오후. 오전예배 후 청년들과 마주한 그는 음주, 흡연, 동성애 등 기독교계에서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 담백한 해답을 내놨다.

그는 “술은 마실 수도 있지만, 남용할 경우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하는지 알 수 있다”며 “무엇보다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또한 흡연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동성애에 대해서는 “성적 지향이 차별과 소외, 제외의 근거는 될 수 없다”며 “이런 성적 지향 문제에 있어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복음을 전하는 입장에서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어떻게 하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거룩한 모습을 지키며 사랑과 포용을 반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최종천
교회 분쟁 극복한 분당중앙교회 최종천 목사
분당중앙교회 담임 최종천 목사는 최근 몇 년 동안 큰 어려움을 겪었으나, 잘 극복하고 현재는 한국 교회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종천 목사가 지난 1991년 10월 개척한 분당중앙교회는 매주 장년 출석이 8천명을 상회하고, 교회 가용예산의 50%를 대사회 봉사에 사용하며, 10년간 약 50억원의 장학금을 인재 양성에 사용하는 등 성장과 발전 일로를 달려왔다.

그런데 지난 2010년 10월 일부 교인들이 최 목사에 대해 윤리 및 재정 문제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최 목사와 분당중앙교회는 분쟁에 휩싸이게 됐다.

일부 반대파들은 이 과정에서 법원에 재정장부 열람을 신청했고, 목회자와 교회 및 노회에 대한 도를 넘은 비방을 일삼았다. 특히 최 목사의 강단 복귀를 막기 위해 폭력적 예배 방해까지 강행해 한국 교회 전체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노회와 법원 및 외부 회계법인 등 공신력 있는 기관들의 조사•감사 결과 제기된 의혹들이 모두 사실무근이었음이 밝혀졌다. 분당중앙교회와 최 목사는 오히려 결백을 밝혔을 뿐 아니라 윤리적•재정적 건전성을 입증한 것이다. 이로써 분당중앙교회는 분쟁 발생 약 1년 반 만에 사태를 원만히 종결하며, 유사한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여러 교회들에 대안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후 분당중앙교회는 빠르게 회복되어가고 있으며, 교회의 유일한 가용재산인 부지 약 6천여 평(매입가 150여억 원 상당)을 사회에 기부하고, ‘위기의 한국 교회,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안팎의 어려움을 극복한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한국 교회와 사회에 크게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정섭
‘떡과 복음’ 함께 전한 기아대책 정정섭 회장
‘떡과 복음’을 기치로 내걸고 활발한 구호활동과 선교사역을 벌여온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의 정정섭 회장이 향년 72세의 나이로 지난 11월 28일 소천했다. 정 회장은 올해 초 발견한 혈액암 수술을 위해 미국에서 머물며 치료를 받던 중 별세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말연시 NGO단체들의 활발한 모금활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평생을 돈이나 명예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닌, 가난한 자를 돕겠다는 뜨거운 소명의식으로 살아온 그의 별세 소식은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특히 그는 기독 NGO의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1980년대 ‘떡과 복음’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위로는 하나님사랑이요, 아래로는 이웃사랑의 실천을 통해 복음 전파와 인도주의 사역에 힘써온 기아대책의 창립 멤버로 함께 했다. 기아대책은 국내 최초 비영리 민간 해외원조단체로 전 세계 83개 국가를 지원하고 있으며 현재 후원 회원 43만 5천여 명과 자원봉사자 5만 7천여 명이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한편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정 회장은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 때 김준곤 CCC 전 총재를 만나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1989년 기아대책에 합류한 그는 1998년부터 회장직을 맡으며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는 또 2008년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장과 2009년 통일부 통일고문위원, 2010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모임 연우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사회 내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오재식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부였던 고 오재식 박사
올해에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큰 별이 떨어졌다. 교회 일치와 연합운동에 앞장서온 그는 지난 1월 3일 별세한 오재식 박사. 그는 3년 전부터 피부암, 췌장암, 대장암을 앓아왔지만 세상을 떠나기 2개월 전에도 회고록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을 출간하는 등 끊임없는 활동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오 박사는 일평생 기독교 청년들의 사회운동과 반독재민주화운동, 평화통일운동에 힘썼으며, 교파를 넘어 도시 빈민을 위해 헌신했다. 또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부, 조직의 귀재라고 불리며 세계교회협의회, 아시아기독교협의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두루 활동했다. 말뿐 아니라, 현장 일선에 나서 도시 빈민과 농민, 산업 노동자 등 소외된 이들을 위한 운동에 직접적으로 동참했다는 점에서 그는 진정한 행동가이자 운동가라는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의 삶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평화통일운동에 적극 참여했다는 점이다. 남북 교회 대표와 세계교회협의회(WCC) 관계자들이 최초로 만난 ‘글리온회의’를 성사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후 1988년에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 나오는 데에도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이는 그가 기독구호단체 월드비전의 북한국장과 회장을 맡아 대북인도지원사업을 이끈 것과도 연결된다. 또한 그는 지난 2002년 대북사업 활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홍재철
‘무소불위’ 한기총의 리더십 홍재철 목사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인가. 아니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도행역시(倒行逆施)를 선택한 것인가.
홍재철 목사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올해의 인물, 손가락 안에 당연히 꼽힌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홍재철 목사는 한기총 대표회장직을 맡으면서 친정부 행보와 반 WCC 행보에 이어 이번에는 ‘반 합동’ 행보까지 선언했다.

자신이 속한 교단을 탈퇴하면서까지 유지하려는 권력은 한기총 대표회장직. 주무관청인 문화관광부의 정관 불허 통보에도 불구하고 ‘하자 치유’라는 명목을 앞세워 마지막까지 정관 개정을 강행하고 나선 홍 목사는 “내가 대표회장이 되면 한교연과 통합을 추진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자신이 하지 않으면 “한기총의 위상이 떨어진다”는 주변의 간곡한 권고에 정관개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홍 목사는 지난해 “내 임기는 2년 단임제로 2014년 1월까지”라고 못 박았지만 올해 임기 말이 다가오자 ‘2년 연임’으로 횟수 제한 없이 대표회장 임기를 변경하고 나섰다. 12월 목회 일선에서 은퇴한 그에게 한기총은 마지막 남은 ‘현직’이다. 버릴 수 없는 카드라는 뜻이다.

연말 다락방에 이어 박윤식 목사 이단해제 선언으로 구설에 오른 홍 목사는 “내가 하면 불륜이고 남이 하면 로맨스”냐고 반박하며 역대 한기총의 이단 규정과 해제를 조목조목 언급했다.

한기총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계속 만들어내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는 여전한 ‘다크호스’다.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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