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이 있나요? 레몬에이드를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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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이 있나요? 레몬에이드를 만드세요!”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3.11.26 1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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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음대 김치국 교수, 지난 25일 백석예술대에서 강연
▲ 지난 25일 백석예술대에서 특강한 김치국 교수와 그의 아내 티파니. 왼쪽은 김치국 교수의 절친한 동문 길창욱 교수.

4살때 시력 잃었지만 원망 없이 하나님만 의지
고난과 좌절 온다면 '긍정의 힘'으로 버무려라

지난 25일 서울 방배동 백석아트홀, 한 남자가 강단에 올라섰다. 그 옆엔 검은색 강아지 한 마리가 따랐다. 시각장애인, 버클리음대에 최연소로 임용된 김치국 교수였다.

어린 시절 심장병 진단을 받았던 그는 의사의 산소 과다투여로 시력을 상실했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아픔도, 어려움도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으니 전혀 불편함이 없었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저에게 긍정의 마음을 주셨어요. 늘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삶. 그 삶 속에서 빛을 발견했죠.”

강단에 오른 그는 학생들에게 인생의 쓴 맛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해 먼저 말을 꺼냈다.

김 교수는 “미국의 속담 중 ‘삶이 레몬을 주면 레몬에이드를 만들라’는 속담이 있다”며 “레몬을 그냥 먹으면 마냥 신맛이 나지만 거기에 설탕과 시럽을 섞으면 맛있는 레몬에이드가 된다. 힘든 일이 있다면 그 사건을 새콤달콤한 레몬에이드로 만들라”고 조언했다.

또한 그는 “어려운 일을 극복하려면 극복하고자 하는 열정과 결단력, 인내심, 희망, 창의력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현대음악의 중심으로 불리는 버클리음대 교수가 될 수 있었을까.

▲ 김치국 교수와 그의 안내견.

그가 음악을 시작한 것은 4살 남짓. 어린 시절 두 누나들이 치던 피아노를 어깨너머로 배우며 건반에 처음 손을 올렸다. 재미있어하고, 즐거워 하니 어머니는 그를 어린 나이임에도 피아노학원에 보내주었다. 그렇게 즐거웠던 피아노 연주는 시각을 잃으며 자연스레 멀어졌다.

“시각을 잃은 것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은 없었어요. 시각장애인들만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학교에 다녔었는데, 거기서 컴퓨터도 배웠죠. 컴퓨터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는거죠. 잠시 음악을 접고 컴퓨터에 집중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감사하게도 음악과 컴퓨터를 동시에 하고 있죠.”

영어공부를 위해 떠났던 미국. 교육환경을 한국과 너무 달랐다. 일반 학생들과 장애인들은 함께 수업을 받았고, 장애인들을 향한 기회는 더욱 많다고 느껴졌다.

“피아노를 거의 잊고 살 때 쯤 우연한 기회로 피아노를 치게 됐어요. 당시 학교에서 선생님들도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며 음악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어머니께 제안했죠. 그렇게 다시 음악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렇게 다시 시작한 음악.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버클리음대에 진학하게 됐다. 진학도 어려웠는데 학교를 다니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그의 전공은 실용음악작편곡. 거의 모든 작업이 컴퓨터로 진행됐다. 사용법을 물어보다 기기의 설명서를 구해 살피고, 인터넷을 찾아보며 과제를 해 나갔다. 조금 느릴 수밖에 없는 상황, 그는 늘 남들보다 조금 일찍 시작했다.

“수업에서 내주는 과제를 해 가는 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래도 두려움은 없었어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제 주위에 늘 도와줄 사람들을 붙여주셨고, 해낼 수 있었죠.”

그렇게 졸업한 버클리음대. 하지만 학교에서는 그를 붙잡았다. 그와 같은 시각장애인들을 가르쳐달라는 요청이었다.

“처음엔 제가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대학원도 혼자서 힘들게 다녔는데, 가르치는 것을 잘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런데 저와 비슷한 학생들에게 제가 배운 것들을 전수해주는 것은 그들에게 힘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어요.”

그렇게 그는 버클리음대에서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전반적 음악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강의 도중에는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만든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장애인들도 이런 음악을 할 수 있다며 편견을 버려달라는 해설이 뒤따랐다.

“한 학생은 음악을 가르치지 않는 나라에서 왔어요. 그의 꿈이 자신의 나라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이었죠. 그리고 얼마 전 그 나라에서 음악을 가르칠 수 있는 허가를 받아 그는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는 놀라운 일도 있었어요.”

지금 스스로가 존하는데는 가족들의 희생도 컸다고 그는 회상했다.

“아버지, 어머니, 누님들이 늘 저를 중심으로 살았어요. 특히 누님들은 가정이 있음에도 저를 위해 헌신하기도 했죠. 제가 어릴 적 시력을 잃고 심장 수술 후 얼마 못산다고 의사가 진단을 했을 때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기도원으로 향하셨고,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다며 저를 고쳐달라고 눈물로 기도하셨죠. 항상 하나님께 쓰임 받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기도해주신 가족들 덕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학생들에게 기도의 힘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어떻게 슬럼프를 극복하느냐는 학생의 질문에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는 희망을 주신다”며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을 알려주시고, 이겨낼 수 있는 믿음 생겨난다”고 학생들에게 기도로 간구할 것을 권했다.

그가 가진 꿈 또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었다. 음악을 하길 원하는 많은 이들에게 방법을 가르쳐주고, 그들을 위한 교육을 발전시키는 것.

“목표를 세우세요.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스스로 방법을 찾고, 노력하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도하세요. 여러분의 꿈은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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