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행복별산제(幸福別産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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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행복별산제(幸福別産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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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1.2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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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는 없어요. 안 돼요. 안 돼요. 결코 안 돼요.”

정희선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의 손에는 그의 남편 백진승을 수신인으로 하는 편지를 들고 있었다. 그의 손은 마냥 떨리기만 하였다.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늘 높이 날던 연이 그 줄이 끊어져서 땅으로 추락하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눈물은 눈에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으로부터 솟구쳐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그녀의 온 몸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난날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마음을 담아 이 장미꽃을 드리오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오월의 축제에 메이퀸으로 선발된 후 처음으로 한 청년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그녀가 장미꽃을 받는 순간 마치 백마를 타고 온 기사를 만나듯 황홀했다. 오월의 축제가 없었더라면, 아니 그녀가 메이퀸에만 선출되지 않았더라면, 또한 백진승이 그녀에게 장미꽃만 주지 않았더라면 결코 오늘의 이 순간을 없었을 것이었다.

그의 가슴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이 왔다. 그는 한 때 선택의 기로에서 갈대처럼 흔들린 적이 있었다. 그녀는 오랜 우정과 새로운 미래를 놓고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반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허륜명과 정희선은 같은 마을에 살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동창이었다. 대학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남매처럼 서로 붙어 다녔다. 그들이 남매처럼 붙어 다니게 된 것은 첫 번째 일-그들 사이에-이 있은 후 부터였다. 희선은 전날 술래잡기놀이를 하다가 발목을 접쳤다. 그녀는 발목을 절룩거리면서 학교를 가고 있었다. 그녀가 초등학교를 가기 위해서 작은 개울을 건너야 했다. 개울 앞에서 허륜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개울에 있는 징검다리는 지난 밤 비로 인하여 물이 불어나 물속에 잠겼다. 신을 벗은 채 개울을 건너야 했다.

“발목이 많이 아프니?”
“조금 아파.”
“내 등에 업혀!”

희선은 허륜명의 등에 업혀 개울을 건넜다. 개울을 건넌 후에도 그는 희선을 그의 등에 업고서 학교 가까운 곳까지 와서야 그를 등에서 내려놓았다.

정희선은 어떤 장래에 대하여 어떤 결정을 할 때마다 허륜명에게 묻곤 하였다. 그가 의과대학에 입학한 후 전공을 택한 것도 허륜명의 권고 때문이었다.

“넌 어떤 전공을 할 건데?”
“뭘 정하면 좋을가?”
“여성스러운 것이 어떨까?”
“어떤 전공이 여성스러운 것인데?”
“산부인과.”

희선이 마지막 학기 때 휴학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에게 말했다.

“그럴 수는 없어. 3일만 기다려줘!”

그는 평소와는 달리 자기의 소신을 말했다. 3일 만에 등록금을 준비하고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는 희선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부모님의 허락없이 부모님의 패물을 금은방에 팔았다. 그 일이 발견되자 아버지로부터 야단을 맞은 후 집을 나와 희선의 자취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날 밤 그들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잘 잤어요? 희선씨.”
“여러 가지 꿈만 꾸었어. 자기는?”
“어디 잘 잘 수가 있어야지!”
“허륜명. 너 정말 신사다.”
“신사면 뭘해. 하하하! 아무런 실속도 없는 걸.”

정희선이 의사가 되기로 한 것은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청명한 봄날 정희선과 그의 오빠 정진우가 동네 마을 입구 늪 옆의 둑길을 걷고 있었다. 둑길에는 개나리꽃이 만발하고 있었다. 진우는 동생 머리에 꽂아주기 위해서 개나리꽃을 꺾고 있었다. 희선은 둑길 아래서 늪 속에 있는 물고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험해, 올라와!”

진우가 소리쳤다.

희선은 물속에 노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의 허리를 굽히는 순간 그는 그녀의 발이 미끄러지면서 늪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정진우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늪 속으로 뛰어들었다.

진우는 희선을 늪의 낮은 곳으로 끌어내기기 위해서 사력을 다했다. 그때 둑방길을 지나가던 같은 마을에 사는 아저씨가 그 광경을 목격하였다. 그는 늪에서 부침하고 있는 희선을 먼저 구출하였다. 마을 아저씨가 희선을 구출한 후 늪에서는 진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희선의 어머니는 아연실색하였다. 그러나 희선이 살아 온 것만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면서 오빠를 잃은 슬픔으로 울고 있는 딸을 위해서 말했다.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서 불평해서는 안 돼.”
“왜요?”
“네 오빠가 하늘나라에 간 것도, 네가 살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란다.”
“난 어떻게 하면 되요?”
“너의 생명으로 오빠의 몫까지 살으렴!”
“어떻게 오빠의 몫까지 살 수가 있어요?”
“오빠가 너의 생명을 살리려고 한 것처럼 사람들의 생명을 건지는 일을 하면 되지.”

희선은 선택의 기로에서 한 동안 방황했다. 백진승은 한 번 옳다고 생각된 일은 소신을 갖고 추진하는 강인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허륜명은 어떤 결정 앞에서 항상 희선의 의견을 묻고 자신의 의견을 진술했다. 하룻밤을 함께 보내면서도 남매처럼 아무런 일이 없었다. 그런 모습이 희선의 눈에는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또한 친구가 아닌 이성으로서 장래를 위해서 책임을 질 용기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렇게 나약해서야 어떻게 이렇게 험한 세상을 살아갈까?’

의구심조차 들었다.

삶이란 하나의 선택이었다. 선택의 순간에는 그 선택이 최선같지만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마치 앞날의 운명을 우리가 모르는 것처럼.

결혼 후 계속 살아 온 집을 떠나기 마지막 날 희선은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할 기로에 섰다. 남편은 계속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설희 아버지, 우리가 책임져야 할 채무가 얼마나 됩니까?”
“모르는 게 좋습니다.”
“왜 그래요?”
“부부별산제란 법이 있어요.”
“그게 무슨 법이에요?”
“부부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 특유의 재산으로 한다는 법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 그런 법 같은 것을 따져야만 해요?”
“우리는 법에 의해서 부부가 되었소. 법을 지켜야 해요.”
“그건 결코 안 돼요!”
“왜 안 돼요?”
“내가 잘못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할 짐이요. 그리고 또….”
“그리고 또 뭐가 있어요?”
“나로 인하여 당신과 우리 설희까지 불행해지는 일을 없어야 해요.”
“우리 다시 시작해요!”
“안 돼요! 나의 실패의 짐은 내가 지고 가는 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백진승과 정희선의 결혼은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결혼이었다. 그들이 결혼을 한 후 그들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그들의 재산도 불어났다. 그러나 그들 부부의 행복은 높아진 명성이나 쌓아놓은 재산에 함께 따라오지 못했다. 백진승은 결심한 듯 말했다.

“하늘에 속한 형상과 땅에 속한 형상이 같지 않듯이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이 각각 달라요. 우리의 행복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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