ꡐ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ꡑ이라는 말 바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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ꡐ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ꡑ이라는 말 바로 써야 한다
  • 승인 2003.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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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일부 목회자들과 일반 성도들이 기도할 때 기도말 중에 ꡒ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ꡓ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하나님 칭호 앞에 그 하나님을 수식하는 관형사구(冠形詞句)를 붙여 쓰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에 합치되지 않는 잘못된 표현이다.

신.구약 성경에는 ꡒ하나님ꡓ 칭호 앞에 붙인 수식언(修飾言)인 ꡒ살아 계신ꡓ이라는 말은 많은 곳에 나타나 있다(마16:16, 딤전3:15, 4:14, 히9:14, 계10:6, 고후3:3, 6:6, 시18:46, 42:2, 삼상25:26 등 그 외의 다수) 그 중 한 가지를 예시하면 ꡒ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ꡓ(마16:16)라는 말씀인데 이 구절 속에 ꡒ살아 계신ꡓ이란 말씀이 그 예이다.

그러나 ꡒ지금도 살아 계신ꡓ이라는 말은 아무리 그 말이 신앙고백적 동기가 있다 하더라도 ꡒ지금도ꡓ라는 말의 삽입어(揷入語)는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말이다.

단순히 ꡒ살아 계신ꡓ 하나님이라고 할 때 이것은 하나님의 영존성(永存性)(시102:26, 사9:6, 히1:11)을 나타냄과 동시에 그 하나님의 시작도 끝도 없으신 영원한 자존성(自存性)과 시간을 초월하신 영원성을 칭송하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구속사를 경륜하심에 있어서 한결 같으심과 영원한 생명의 근원자로 또한 구원섭리의 불변성(약1:17)을 나타 내시고 인간과 생명적 관계를 사실적으로 주장하고 계심에 대한 믿는 자의 신적 지식이며 이해이고 또한 체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말 자체도 성경에서 영원 자존자이심을 계시적으로 표현하였으나 이 말을 사람이 되뇌어 말할 때는 언제나 살아 있지 못할 가능성도 있는데 살아 있어서 다행스럽다든지 또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영원성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ꡒ의지ꡓ로서 생명활동을 멈추지 않으신다는 신적 의지를 나타낸 표현인 양으로 문자계시의 본래의 뜻과 다르게 기도에서 인용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하나님 호칭 앞에 ꡒ살아 계신ꡓ이라는 수식어가 없이도 생명의 본체와 근원자로 하나님은 존재하고 역사하시기에 마치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으므로 역사할 수 있는 것처럼 다행감정을 고백하는 듯한 표현은 삼가야 한다.

그리고 역사하심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살아 있다는 뜻을 함유하고 있는 표현이다. 그래서 ꡒ살아 계신ꡓ이란 말을 써서 영원자존성에 혹 불완전과 불충분성이 있는 듯한 개연성(蓋然性)을 담은 표현은 삼가해야 한다.

그런데 더 황당(荒唐)한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ꡒ지금도ꡓ란 말이다. 하나님 ꡒ살아 계심ꡓ이 어느 과거적 시점에서 현재까지 살아 있으심에 다행스럽다는 인상이 짙은 표현이다. 하나님은 그 영원성에서 시간 개념상의 과거 현재 미래가 구분되어 존재하지 않으신다.

영원전부터 영원토록 영원한 현재가 있을 뿐이다. 지난 날에도 살아 있었으니 ꡒ지금도 살아 계신다ꡓ는 생명력의 시간적 연속성의 뜻을 부여한 듯한 느낌이다. 하나님의 실재를 ꡒ지금ꡓ이라는 시제(時制)를 설정하고 그 시제에 하나님의 존재를 결합하여 표현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하나님의 존재의 본질은 초시간적이어서 시간의 경과개념이 없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가 없이 영원무궁하신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도 그 사용사례가 없는 ꡒ지금ꡓ이라는 말을 ꡒ살아 계신ꡓ 하나님이라는 호칭 앞에 첨가하여 사용하는 것은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의 본질을 신앙고백하는 영성을 훼손할 수 있을 것이므로 ꡒ지금ꡓ이라는 말로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성경적 신적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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