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예술로 가는 두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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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예술로 가는 두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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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8.13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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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그늘에 생명의 빛을, 카이퍼의 개혁주의 미학 (27) - 안용준 목사(목원대 겸임교수)

기독교 예술로 가는 두 길

역사적으로 기독교 예술로 가는 두 길이 있었다. 인간의 노력으로 가는 길과 기독교적인 이상 또는 세계관에 초점을 맞추어 가는 길이다.

먼저 인간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세상 문화와 단절하지 않고 타협하여 적절한 예술의 옷을 입는다. 이런 상황은 영적 공동체에서 매우 우려된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문화적 동화가 심각할 경우 세속화되거나 이교적 성향으로 치닫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곳곳에 기독교의 본질을 저해하는 위험성이 도사리게 되고, 기독교의 핵심 가치에 일대 혼란을 주게 될 것이다.

카이퍼가 보기에 르네상스 시기의 기독교 예술은 많은 부분 이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칼빈주의 예술관의 원리를 도입하여 위 문제를 조목조목 해명하고 있다. 먼저 그는 칼빈주의 예술의 장점들을 설정하기 위하여 이교적 성향의 아름다움의 미학을 예술의 터전으로 재현했던 르네상스를 고찰한다. 그의 판단으로는 당시 교회는 르네상스 예술의 이교적인 성향을 받아들임에 따라 기독교적인 이상이 지향하는 예술적 가치를 온전히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카이퍼는 칼빈주의가 예술이 아니라 종교를 자유롭게 했고, 예술의 자유라는 명예는 전적으로 르네상스의 몫이라고 확언하는 예술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검증한다. 그도 역시 르네상스가 “그리스의 천재들이 발견한 예술의 근본 법칙에 다시 동의함으로써 예술은 독립적 실존을 내세울 수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카이퍼의 판단으로는 이 자체가 예술의 바람직한 자유를 성취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교회는 고전 예술 자체를 결코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교회는 르네상스 예술을 환영했고 기독교 예술은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르네상스 예술이 제공하는 가장 좋은 것으로 자신을 풍요롭게 했다는 것이다. 카이퍼는 16세기 당시 교회와 예술 전반의 긴박했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1485~1486년경 Tempera on canvas

소위 친궤젠토(cinquecento), 즉 르네상스의 브라만테,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는 매우 독특하고 누구도 모방할 수 없을 정도의 예술의 진수를 로마 가톨릭의 대성당에 진열했다. 이에 따라 교회는 예술과의 연합이 가능해졌으며, 지속적으로 후견 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술의 진정한 해방은 좀 더 자유로운 강한 힘이 필요했다. 이제 교회는 자신의 고유한 범주인 영적 영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16세기의 예술가들은 실제적인 기반으로 형성된 자연주의적인 미론의 한계와 그 아래 숨겨져 있는 심연이 있음을 깨닫고 그것을 순수 절대적 세계인 이데아를 목표로 하는 형이상학적인 사변을 통해 창작하려고 했다. 예술은 이제 자연의 충실한 모방 이외의 어떤 것이라는 비자연주의적 태도가 일반화되었다. 이 형이상학적 미론이 절대자인 신에게로 향하는 신비로운 이상과 결합되었는데, 로마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결합에서 나온 예술적 결과물들을 수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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