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이신칭의 신학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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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이신칭의 신학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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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8.0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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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하 교수의 풀어쓰는 이야기 교회사 (48)

개혁도상의 발견(루터의 종교개혁 신학발견)

▲ 백석대 역사신학

루터가 많은 자료들을 남겨 놓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의 개혁도상의 신앙과 신학의 변화를 상당히 밀도 있게 정리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한 개인의 신앙의 삶의 변화를 위한 본보기가 될 뿐만 아니라 신학적인 이해를 위하여도 매우 도움이 된다.

루터가 태어날 때 아버지는 농부였다가 광부로 직업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난 한 해 뒤에 아이스레벤에서 만스펠트로 이사하였다. 물론 잘 아는 대로 사회나 가정이 모두 유럽의 그리스도교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

그리고 에르푸르트 대학의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부모를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스톳테른하임 인근에서 낙뇌를 만나면서 루터는 새롭게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게 됐고 두려움과 경외심 중에 하나님의 공의를 발견하게 되었다(1505년 7월 2일). 실제로 루터에게 이 사건은 개혁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수도사로서의 삶은 그를 더욱 두려움에 사로잡혀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루터는 신학의 유일한 학문적 기초가 성서를 정확하게 듣는 것이라고 말하고 그와 더불어 성서는 진리를 위한 확실한 규범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임종을 1년 앞두고 선제후 요한네스 프리드리히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성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요한네스 스타우핏쯔의 덕이라고 밝히면서, 그는 “최초로 이러한 가르침 안에서 나의 아버지가 되었고,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낳은 분이시다”라고 말했다. 루터의 인상적인 전환점들은 자신의 훗날 회상 중에서 분명해졌다.

성서와 함께 성장하는 명확성과 더불어 어렴풋이 알았고 추구하였고 인지하였던 것들을 성서가 증명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루터가 개혁도상의 발견을 1513년부터 1519년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마지막까지 그를 사로잡았던 것은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졌다”(롬 1:17)이다. 이는 1518년과 1519년에도 그에게 아직도 장애요소이었다.

루터가 발견한 새로운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그리스도의 공의와 나눌 수 없게 일치를 이룬다는 것이다. 루터는 “나는 경건하지 못하지만 그리스도는 경건하시다”라고 고백한다. 스타우핏쯔의 영향을 받은 루터는 1510년 수도회 규칙개정에 대한 승인을 위해 로마에 가기 이전에 성서를 결정적 신앙규범으로 주저함이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가 스타우핏쯔로부터 비텐베르크대학의 성서신학교수 직을 물려받아 1513년부터 로마서를 강해하면서 ‘매 시간 말씀을 통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이르는 통로를 얻기 위하여 한 본문 한 본문을 탐구하였다. 성서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긴장된 기대가 성취될 수 있도록 기도와 묵상을 행하였고, 본문에 대한 학문적인 작업에서 해석자의 내적 주의를 기울였음’을 강조한다.

시편과 로마서의 연속 강의에서 발전된 루터의 사상은 1517년 95개 논제 중 첫 두 논제에 요약되어 있다. 루터는 1516년 초 로마서에 대한 두 학기의 강좌(1515.11-1516.9)에서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공적도 세울 수 없고 ‘오직 은총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이 은총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1518년 초에 가서야 루터는 이러한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1519년에 이르러서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이신칭의의 신학이 확립되었다. 루터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더 이상 믿음의 복종이 아니라 오히려 확고한 하나님 사랑의 실현에로의 신뢰이다. 이렇게 이루는 의는 ‘형식적인 혹은 능동적인 의’가 아니라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믿음을 통하여 우리들을 의롭게 만드시는 수동적인 의’이다.

1516년 여름학기 중간 쯤 에라스무스에 의하여 편집되었던 헬라어 신약성서를 입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에게 불가타역 라틴어 성서가 일생동안 성서해석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성서를 이해하기 원할 때 결정적인 장애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내적 저항이라고 보았다. 그는 교회와 성서를 한 덩어리로 보고, 생명의 원천, 하나님의 증서, 모든 가르침의 권위의 척도요 토대라고 주장한다. 교회는 말씀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말씀은 교회의 피조물이 아니다. ‘오직 성서만이’ 이러한 말씀들을 계시하신다.

성서는 하나의 결정적인 진리, “예수 그리스도, 우리들의 하나님 그리고 주가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진리를 포함한다. 성서의 해설자요 성서 원리의 옹호자인 루터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 성서해설의 평가기준이라고 가르치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게 하는 것을 성서의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신학의 중심에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의 원리를 두고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성서해석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개혁의 발견 이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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