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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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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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8.0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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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오전 10시경이면 항상 손님들로 붐비기만 하던 원무과도 직원들뿐이었다. 이익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간호부장이 그에게 와서 말했다.

“원장님, 행정부장님이 집에도 안 계신답니다.”
“어딜 갔는데?”
“며칠째 집에 안 들어왔다고 합니다.”
한 간호사가 원장실에 전화가 왔다고 허륜명에게 말했다.

“여보세요! 거기 남강병원입니까?”
“제가 허륜명 원장입니다.”
“나 박시원이네! 자네 병원에 아무일 없나?”
“오랜만일세! 어떻게 전화를?”
“나 이익치에게 크게 당한 것 같네!”
“뭐라고?”
“지금 내가 자네병원으로 가는 중일세, 조금 있다 만나세!”

허륜명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녀석이 다른 동창들까지 피해를 입혔단 말인가?’

20분이 지나자 박시원이 병원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어서 오게나!”
“지금 이익치는 어디있는가?”
“집에도 없어, 피신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나 3억 원이나 피해를 입었어!”
“어떻게 된거야?”
“그를 믿고서 서류을 맡긴 것이 잘못된 일이었어!”
“무슨 서류말인가?”
“은행 대출서류지 뭔가!”
“나도 맡겼는데!”
“넌 얼마나 당했어?”
“아직 파악이 안됐어!”
“자네 병원에서 무면허자가 맹장수술을 한 적이 있나?”
“나는 잘 모르는 일일세!”
“이 신문을 보라구! HRM의 XXXX이 어느 병원이라고 생각하나?”
“이럴수가! HRM병원이라? 그럼 내 병원이란 말인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자네만 모르고 있는거야!”
“하나님, 맙소사! 내게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합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의 입에서 탄식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허륜명은 하늘을 날던 자기의 날개가 갑자기 부러진 느낌이 들었다. 성공의 가도를 달리던 차가 갑자기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허륜명은 마치 악몽을 깨고 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아직도 악몽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후 2시 S지방검찰청 수사과 제1호 수사관실, 출입구 우측 벽면 중앙에는 태극기 액자가 걸려있었다. 그 좌측에는 법무부장관의 복무방침 ‘정의사회 구현’이 우측에는 검찰총장의 수사지침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고 쓰인 액자가 각각 걸려있었다.

진선린은 그의 책상에 앉아서 소생언에서 꿈꾸던 시절을 생각하고 있었다. 벌써 그때로부터 15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각자 꿈꾸던 일들이 성취되기도 하고 아직도 꿈을 이루지 못하고 꿈만 꾸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

그가 병원에서 돌보던 이지원은 이제 어엿한 재생사업이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또 허륜명은 이름난 의사가 되어 있었다. 선린은 지난 밤 소생언에서 만난 친구들의 일을 생각하다가 잠을 설쳤다.
허륜명이 박시원과 함께 선린을 찾아왔다.

“이게 얼마만인가? 허륜명! ”
선린이 말했다.
“상의를 좀 할 것이 있어서 찾아왔네!”
“무슨 일인가?”
“이 친구는 내 대학 동창이네 인사하게.”

허륜명은 이익치에 대하여 자초지종을 선린에게 설명을 하였다. 그가 처음 병원을 개원하려고 했을 때 그의 부모는 그를 지원해줄 경제적 여력이 없었다. 병원을 개원할 때까지 모든 일은 이익치가 그를 대신하여 처리하여 주었다. 3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일이 없었다. 이익치는 허륜명의 병원일 뿐만 아니라 다른 고등학교 동창 의사들의 일까지도 자기의 일처럼 처리해 주었다. 학교 동창이기 때문에 철석같이 믿었다.
이익치는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공부를 잘하는 편에 속했다. 그가 명문고인 안천고등학교에 시험을 거쳐서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중학교 성적이 상위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안천고등학교에 입학을 한 후부터 기타동아리 활동으로 인하여 학습을 게을리함으로 그의 성적은 항상 최하우권을 맴돌았다. 그런 그가 과락을 면하면서 학교를 졸업할 수가 있었던 것은 그의 옆자리에 있는 허륜명의 도움 때문이었다.

이익치는 ‘힘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기 몸이 가진 힘이나, 머리가 가진 지식의 힘은 없지만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처세방법은 적은 돈을 투자해서 더 큰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가 이런 확신을 갖게 된 이유는 그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는 친구들이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을 열어 자립하려고 해도 자금이 없는 친구들을 자주 만났다. 그는 아버지의 지원을 받아서 친구들이 개원하는데 참여하기로 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고등학교 동창인 의사 3명에게 병원을 차리는 데 적지 않은 자금을 지원하였다.

수년간 호황이던 경기가 침체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듣기에도 낮선 말인 ‘IMF’라는 사태가 우리나라에도 발생한 것이었다. 그의 부친이 경영하는 종합건설업체는 신축 아파트가 미분양이 속출하면서 자금압박에 시달렸다. 그의 부친은 이익치의 친구들 병원에 지원한 자금을 회수하지 않으면 회사의 존폐의 지점에 이르렀다.

이익치는 부친의 회사가 도산하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친구 의사들에게 대여하였던 자금을 회수하기로 작정을 하였다. 그는 아버지만 회생할 수만 있다면 친구들과의 관계도 청산하고 싶었다. 이익치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게 이익치에 대한 설명이네”
허륜명이 말했다.
“내가 물어볼게 있네?”
“말하게.”
“이익치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은행에 가서 서명, 날인을 한 사실이 있는가?”
“그런 일은 없었네.”
“그럼 어떻게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는가?”
“내가 발급해 준 서류들을 가지고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네!”
“대출시 본인확인절차가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
“자기의 사진을 가지고 내 주민등록증을 위조하여 본인행세를 한 것으로 알고 있네.”
“무면허 의료행위는 어떻게 된 일인가?”
“직원에게 물어본 바, 내가 퇴근하고 없는 사이 친구의 맹장수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네.”
“이익치에게 대출에 필요한 서류. 즉, 인감증명서 및 인감도장과 기타 서류를 발급해 준 것이 이익치가 주민등록증까지 위조할 가능성을 제공한 꼴이 되었네.”
“그럼 내가 책임이 있다는 말인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말을 모르는가?”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이라도 자신의 권리를 찾으란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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