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내가 쓰임 받는다는 자체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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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내가 쓰임 받는다는 자체가 ‘감사’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3.06.04 2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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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유학생 아내 모임 Women’s Club 섬기는 엄혜경 집사
▲ Women’s Club 섬기는 엄혜경 집사

단일민족이라는 인식이 강한 나라 대한민국. 하지만 이런 생각을 굳게 지키고 있던 우리나라도 세계화에 발맞춰 다문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국내에 찾아오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숫자는 2012년 4월 기준 86,878명이다. 물론 혼자서 국내에 체류하며 공부하는 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가족을 동반하고 입국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은 상황.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의 가족들은 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딘가에 속해있지 못한 실정이라 방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치된 이들은 홀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많고, 그 중에서도 아이를 키우고, 그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경우 학부모들과의 교류를 통해 겨우 세상에 얼굴을 비칠 기회를 얻게 된다. 이런 유학생 아내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취미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있다. 유학생 아내들을 위한 모임 ‘Women’s Club(위민스 클럽)’의 엄혜경 집사(동산교회)를 만났다.

# 나를 붙잡으신 하나님
대학 시절 엄혜경 집사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그 나라가 이 세상에 확장되는 꿈을 꿨다. 교회에서 시작된 해외선교모임, 기도모임에 참여할 정도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기도하던 중 서원한 것은 세상 밖으로 나가 하나님을 전하는 ‘나가는 선교사’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해줄 수 있는 ‘보내는 선교사’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캠퍼스에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바탕으로 성장한 엄 집사는 대학 졸업하고 얼마 안가 캠퍼스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해 행복한 신혼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대학시절 섬기던 선교단체 국제학생회(ISF)에서 걸려온 전화. 선교단체를 섬기던 졸업생들의 모임을 만들어 그 모임을 이끌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캠퍼스 선교단체에서 대학시절을 보낸 이들이 취업을 하게 되면 관계가 소원하게 되는 부분을 회복해보자는 움직임이었다.

이에 대한 엄 집사의 대답은 순종. 그렇게 조직된 졸업생 모임은 많은 이들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꾸준함 속에 계속됐고, 졸업생들의 후원으로 본부의 캠퍼스사역에 힘을 더하기도 했다. 그 후로도 졸업생들 위주의 모임은 계속됐다. 아기를 갖게 된 엄 집사는 출산 후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저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돌파구를 찾던 엄 집사는 당시 ISF 총무 목사님의 성경말씀 지도에서 그 돌파구를 찾았다.

▲ 위민스 클럽에서 만들기를 진행중인 유학생 아내들.

“당시 제가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시며, 총무 목사님께서 매주 한 번 집에 찾아와 성경공부를 지도해주셨어요. 원래 신앙도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열정도 뜨거웠지만, 성경공부로 인해 십자가의 고백이 구체화됐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가족을 독일로 부르셨다.

# 독일에서 느낀 ‘사랑’
남편의 일과 관련해 독일에서 보낸 2년 남짓의 생활은 엄 집사에게 많은 변화를 줬다. 남편과 함께 독일 땅을 밟긴 했지만, 남편은 할 일이 있었고 엄 집사는 그저 집안에서 아이들 돌보는 일 외에 다른 활동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일을 하러 나가면 저는 할 일이 없었어요. 너무 무료한 시간들을 보냈어요. 하지만 늘 하나님의 말씀을 찾던 남편의 모습 덕분에 주변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됐고,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사람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사실 엄 집사의 신앙이 성장하게 된 것은 남편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교회를 찾아보기 힘든 독일에서 교회를 찾고, 새벽예배 기간이면 놓치지 않으려는 열정, 주일 성수를 위한 남편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엄 집사를 도전받게 했고, 더욱 하나님을 갈망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출석하게 된 독일 교회에서 만난 어느 노 부부는 한국에서 온 엄 집사 부부를 늘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리고 어느 날 엄 집사 부부를 집으로 초대했다.

“저희가 그 집에 초대받아 가게 됐는데, 귀빈을 모시는 것처럼 저희를 극진히 대접해주셨어요. 저희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일 뿐인데,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 생각이 들만큼 저희를 챙겨주셨죠. 그렇게 대접을 받았던 일이 나중에 제가 할 수 있는 사역이라는 사실은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죠.”

# 영적 전쟁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이 바로 위민스 클럽이었다. 그리고 그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왜 타지에서 그렇게 외로움을 느끼게 하셨고, 또 낯선 이들에게 대접을 받게 하셨는지 깨달았다.

“제가 외국에서 혼자 지내보니,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유학생들의 아내들도 굉장히 심심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언어는 자유롭지 못해도 그들을 섬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면서 사역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약 9명의 무슬림들에게 퀼트, 비즈, 리본공예 등을 가르쳐주고 있는데, 사소한 봉사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진행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시리라 믿습니다.”

진행되는 사역이 모두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성탄절 때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 계획을 했는데 한 무슬림이 ‘기독교의 전유물’이라며 만들기를 거절했던 것. 엄 집사는 “이런 작은 사역에도 영적 전쟁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역을 진행하면서 가장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들. 가족들이었다. 한 번씩 유학생과 아내들을 초청해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남는 일들을 묵묵히 도와준 남편과 많이 아팠을 때 간사교육 때문에 돌보지 못했던 아이들, 명절이면 방치되는 유학생들과 아내를 섬기기 위해 늘 혼자서 음식을 준비하신 시댁의 시부모님까지.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사역을 이어오는 동안 그 누구 하나도 사역에 대한 불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해 통곡을 하기도 하고, 북한을 섬기는 선교사가 되겠다고 말하기도 한단다.

▲ 외국 체류중 한 가정에게 초대받은 엄 집사의 가정. 자녀들이 플룻과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죠. 저는 잘할 수 있는 것 없는 정말 부족한 자인데, 이런 저를 사용하셔서 다른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게 하심과 또 그 사역을 충실히 할 수 있게 하심.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엄 집사의 친절을 느끼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한 유학생 아내가 건넸던 어설픈 한국말

“선생님,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며 엄혜경 집사는 오늘도 유학생 아내들을 만나러 나선다.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흘러가길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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