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탄이 만든 흔적에 피어난 새싹, 진정한 평화를 마주하다
상태바
총탄이 만든 흔적에 피어난 새싹, 진정한 평화를 마주하다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3.05.29 1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장르포] 대한민국의 ‘평화’. 그 의미를 찾아 떠난 철원

▲ 6.25 전쟁 당시 철원 노동당사로 날아든 포탄의 흔적. 그곳에도 새싹이 피어났다.
몇 달 전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가 극단으로 치우칠 때 가장 긴장했던 이들은 우리나라에 상주하고 있던 외국인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전쟁을 잠시 쉬고 있는 나라의 갑작스런 긴장은 실질적인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북한의 정전협정 폐기, 개성공단 폐쇄 조치 등 커다란 일들을 겪으면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한반도에서 전쟁의 무서움을 기억하는 이들이 소수라는 증거다.

치열했던 전쟁이 멈춘 지 60년이 지났다. 당시에는 처참한 광경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 당장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했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고 지금 젊은 세대들은 그 때의 악몽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 교단은 정전협정 60주년을 평화협정의 원년으로 삼자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평화’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우리의 마음에 움직임을 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금요일 북한과 맞닿은 곳 강원도 철원을 찾아 ‘평화’의 참 뜻을 되새겨봤다.


군부대를 지나 다시 군부대
금요일 늦은 7시. 여기저기서 모인 젊은이들은 차례로 버스에 올랐다. 강원도 철원으로 향하는 버스였다.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가 주관하는 종교청년평화학교의 학생들이 버스 안을 채웠다. 평화를 알아가기 위한 여정의 시작.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는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각 종단의 청년들 중 몇몇을 선정했다. 소위 ‘피스메이커’를 양성하자는 것이었다. 험하고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 평화를 이해하는 젊은이들이 양성돼 세상이 조금 더 평화로워지길 바라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살아온 환경, 종교까지 다르고 접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청년들이 모여 평화를 배우고, 깨달아가는 여정은 통일을 준비하는 작은 움직임이었다.

철원으로 향하는 길의 처음은 여느 장소와 다를 것이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캄캄한 밤, 자동차 헤드라이트만 밝게 비치고, 옆을 지나는 자동차 소리만 들렸다. 북으로, 북으로 버스가 가면 갈수록 인적은 점차 사라졌고, 그 흔한 가로등마저 없는 시골길이 나타났다.

금세 지나간 군부대 표지판은 얼마 안가 또다시 수도 없이 지나갔다. 평소 하나도 마주치기 힘든 군부대가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밀집돼 있다는 사실이 가슴 한 편을 싸늘하게 했다. 갑작스레 도로 위로 튀어나온 고라니 한 마리. 바로 최북단 철원이었다.


평화로운 땅 속의 ‘지뢰’
아침 식사를 알리는 외침이 들렸다. 지난 밤 어둠 속에서 느꼈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숙소 주위에는 울창한 숲이 펼쳐졌다. 쑥, 달래, 냉이, 민들레 누가 가져다 심은 것도 아닌데 들풀들은 하나 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밤과는 너무 다른 풍경. 그 속에 평화가 깃들어있었다. 다람쥐가 뛰어놀았고, 곤충들이 분주히 날아다녔다.

“숙소 주변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아직 지뢰가 남아있을 수 있는 지뢰지대로 분류돼 있어 위험하니 그냥 숙소 주변에서 머물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선을 넘는다고 북한은 아니지만, 더욱 무서운 지뢰 매설 가능성이 높은 곳. 민통선을 지나 남방한계선, DMZ,북방한계선이 차례로 그어져 있다.
평화롭게만 보였던 숲이 ‘지뢰’라는 말 한 마디로 살벌한 전장이 되어버렸다. 평화로운 땅 속에 전쟁의 잔해를 품고 있는 철원의 땅. 평화로워 보이지만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며 서로를 넘어서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사회 풍조. 철원의 땅은 그야말로 폭력으로 가득한 우리의 사회를 대변하는 모습인 듯 했다. 평화의 절실함이 자연 속에서도 느껴졌다.


희망, ‘국경선평화학교’
아침식사를 마치고 국경선평화학교 대표를 맡고 있는 정지석 목사의 강의가 이어졌다. 서울의 큰 교회에서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던 정 목사는 자신의 확고해진 꿈을 향해 몸을 던졌다.

‘평화학교’를 세우는 것이 그가 몸을 던진 목적이었다. 통일이 되기 전 진정한 평화봉사 활동가를 배출하는 것은 그의 눈에 시급한 과제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학교를 시작하려면 교실이 필요하고, 강의할 교수들이 필요한데, 교수들은 어떻게 구한다고 쳐도 교실을 구할 일이 막막했죠.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비싼 등록금을 내고 아무런 스펙도 남지 않는 평화학교에 올 학생이 몇이나 될까 의문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 통일 후 미래를 대비한 상징적인 한민족 공동체 번영 공간. 바로 앞에 남방한계선이 맞닿아 있다. 향후 통일시대를 대비해 철원에 조성한 광장이다.
확고한 신념 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정 목사. 하지만 그가 보인 신념은 주위 사람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정말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다른 이들의 생각을 움직인 것이었다. 여기저기 소식이 퍼졌고, 후원하겠다는 이들이 생겼다. 그리고 얼마안가 지자체에서 온 연락 한 통. 민통선 안에 지은 DMZ평화문화광장의 기념관에서 수업을 해줄 수 없겠냐는 부탁이었다. 그렇게 그가 준비한 국경선평화학교는 지난 3월 1일 개교해 통일 후 북한과 남한을 오가며 활동하고 세계에 평화를 제시할 피스메이커를 기르는 중이다.

정 목사는 “나의 신념이 정말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인지 생각했고, 확실한 믿음이 자리 잡았을 때 몸을 던졌다”며 “여러분 또한 평화학교를 통해 작게는 내 맘속의 평화, 크게는 세상에서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피스메이커들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쟁 후 피어난 새싹
이어진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변진흥 사무총장과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사무총장 김성곤 국회의원의 강의가 끝나고 ‘백마고지’로 향했다. 안보견학의 일부였다.

▲ 철원 백마고지를 찾았다. 어린 병사 한 명이 나와 백마고지와 관련된 설명을 늘어놓는다. 전략적인 요충지로 수많은 사람들이 백마고지에서 죽어갔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희생됐던 백마고지. 그 곳에서 죽을힘을 다해 싸웠던 이들은 그 전쟁이 무얼 위한 전쟁인지 알고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혹시 상대가 공격하기 때문에, 그 공격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반격했던 것은 아닐까. 그들에게 평화는 그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멀리 보이는 DMZ 안의 G.P.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들의 평화를 지킨다는 사명아래 고생하는 군 장병들을 보면서 이들에게 있어 평화라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평화’ 정말 소중한 것이지만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것. 그리고 그 것을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찾으려 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는 것.

▲ 8.15해방 후 북한이 공산독재 강화를 위해 지은 건물. 공산치하 5년간 수없는 만행을 저지른 곳. 2002.5.27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2호.
백마고지를 지나 노동당사에 도착했다. 비행기 폭격으로 인해 2층과 3층은 무너져 내렸고, 1층만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건물의 벽에는 총탄이 박혔던 자국들이 무수히 많았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의 기둥에 다람쥐 한 마리가 얼굴을 내민다. 총탄이 빗발치던 그 곳에도 다시 평화는 찾아왔다. 건물의 뒤편의 총탄이 박혔던 구멍 사이로 초록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는 노동당사에서도 새 생명을 돋아났고, 다시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으로 느껴졌다.

▲ 철원 노동당사의 건물 옆을 지나는데 폐허 사이로 다람쥐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지금은 우리에게 없는 평화. 지금은 우리가 느낄 수 없는 평화는 우리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몸을 던질 때. 우리에게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이번 여정의 결론이었다.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은 올해,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그 곳에 지뢰를 품은 철원의 땅을 보며 진정한 평화가 이 땅에 도래하길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