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과 평화의 한 해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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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과 평화의 한 해 소망
  • 승인 2003.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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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癸未)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본지를 위해 기도와 성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애독자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한국 교회에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새해에는 진리와 진실이 살아 숨쉬는 정의로운 사회, 진정한 화합과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지만 새해를 새롭게 출발하는 우리의 마음이 그다지 밝지 않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 도처에 전쟁의 위기의식이 날이 갈수록 고조되고, ‘불량국가 척결’을 내세운 미국의 서슬 앞에 이라크와 다국적군간의 전쟁은 이제 발등의 불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두개의 전쟁도 동시에 치를 수 있다”는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말이 북한의 벼랑끝 외교를 지켜보는 우리 한국인을 극도로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온 세계가 평화를 위협받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도 혼돈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갖 비리와 부패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각종 범죄는 오히려 그 흉악의 도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지방 자치단체장 선거로 시작해서 대통령 선거로 마감하기까지, 이념적 분열 현상은 새해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최대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네편 내편으로 무리를 지어, 때로는 노골적으로 상대방을 흠집 내고 깎아내리는 데 골몰하는 모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한국사회의 국민적 통합은 요원한 일입니다.

부디 새해에는 지역간에, 계층간에, 세대간에 팽배해 있는 적대감이 해소되고,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지 못하는 인색한 마음이 극복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지역이건, 계층이건, 세대건 간에 ‘갈등’의 코드로 접근하는 한, 화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갈등’을 ‘차이’로 바꾸어 인식하는 것만이 화합을 키울 수 있는 씨앗이요, 평화와 공존에 이를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차이’란 바로 나와 상대방의 다름을 건강하게 인정하는 평화의 키워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땅에 진정한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려면 먼저 화합부터 해야 함을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시대적 요청인 화합의 교량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새해에 교회가 우리 사회에 심어주어야 할 것은 ‘소망’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실직자와 소외된 이웃들이 절망 가운데 한숨짓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교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못 가진 것이 기회가 된다』의 저자 벤 크로치는 맥아더 장군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단순히 오래 산다고 해서 늙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늙어가는 이유는 목적과 이상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이 지게 할 뿐이나, 무관심은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 영혼을 흙으로 되돌리는 것은, 긴 세월이 아니라, 근심, 의심, 자신감 결여, 두려움, 절망 같은 것들이다.

믿는 만큼 젊어지고, 의심하는 것만큼 늙으며, 자신감을 갖는 만큼 젊어지고, 절망하는 만큼 늙는다. 늙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태도에 달려 있다.”

이제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여 새롭게 출발하고 있습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정도를 따라 성실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오직 금메달만을 향한 ‘일등 집착증’은 우리가 가는 길에 별로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은메달을 따고도 ‘억울해서’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현재 가진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새해에는 우리에게 ‘넉넉한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기독교 연합신문은 우리 한국교회의 연합, 사회 갈등의 극복, 그리고 건강한 교회를 지향하며, 소외된 이웃에게 용기를 주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고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끊임없는 기도와 성원을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3년 새해 아침.

장종현(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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