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꽃꽂이는 철저히 성경적이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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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꽃꽂이는 철저히 성경적이어야 해요”
  • 승인 2002.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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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전 11시 신촌 현대백화점 9층 문화교실 제9 강의실. 둘러 앉은 20여 명의 여성 회원들 손에는 빨간 장미, 카네이션, 야리카 야자, 황금색 볼 등이 쥐어져 있었고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거리며 가장 예쁘게 꽂을 곳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선생님, 황금색 볼을 달 위치가 여의치 않네요. 좀 도와주세요.” 한 수강생이 도움을 요청한다. “이번 대림절 꽃꽃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황금색 볼이에요. 바로 왕같은 제사장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여기가 좋겠네요”라며 송재희권사(여의도순복음교회·송플라워디자인 회장)는 한쪽 구석에 예쁘게 매달아준다.

매주 수요일 신촌 현대백화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송권사는 ‘성전꽃꽂이' 분야에서는 솜씨 좋기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녀가 꽃꽂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결혼 전 구국여성봉사단 취미 활동에서다. 당시 사격, 타이핑 등도 함께 배웠으나 송권사의 마음을 뺏은 것은 단연 꽃꽂이.

그러나 이 때는 성전꽃꽂이가 아니라 일반 꽃꽂이를 배웠으며 꽃꽂이 강사 보다는 막 불이 붙기 시작한 신앙생활로 오히려 전도사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따라서 여러 신앙 교육과정과 함께 순복음신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983년에는 평소 존경하던 목사의 강력한 권유로 ‘성전꽃꽂이'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됐다고 한다.

“시작할 때는 고민이 많았어요.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도 성전꽃꽂이라는 분야가 없어 어디서도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죠. 그런데 신학이 제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꽃꽂이와 신학의 접목 즉시 송권사는 ‘꽃꽂이와 신학'을 접목시키는 연구에 돌입했고, 연구와 연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잊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1984년 겨울. 그녀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경기도 파주 소재) 대성전의 꽃꽂이를 담당하고 있었다. 자가용이 없었던 그녀는 남대문에서 꽃을 사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기도원까지 이동해야 했다. 그날은 바람이 스칠 때마다 얼굴에 상처가 나는 듯 느껴질만큼 추운 어느 토요일 저녁이었다. 꽃을 한아름 안고 성전으로 들어가 기도를 하고 꽃이 있는 단상쪽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아시스를 집어 드는 순간 송권사는 눈 앞이 캄캄해졌다. 날씨가 너무 추운 탓에 꽃을 꽂는 오아시스가 꽁꽁 얼어 얼음같이 되버렸기 때문이었다. 망설임도 잠깐. 그녀는 오아시스를 품에 끌어안고 울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오아시스를 녹일만한 좋은 방법이나 도구가 없었어요. 여분의 오아시스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저 체온을 이용해 녹일 수밖에 없었죠.” 송권사는 새벽예배 전까지는 성전꽃꽂이를 완성해 성도들의 은혜 체험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줘야 한다는 일념으로 쉬지 않고 기도했다. 그렇게 오아시스를 안고 눈물로 기도하기를 4시간. 어느새 입고 있던 옷이 모두 젖어 있었다. 오아시스가 녹으면서 흐른 물과 기도하며 흘린 눈물이 뒤섞여 옷을 적신 것이다. “옷 젖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어요. 밤새 기도했지만 힘든 줄도 몰랐고 오직 꽃꽂이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사했어요.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듯이 내가 거룩한 성전에서 두 손과 두 발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었어요.” 때문인지 그녀는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수록 인내하면 큰 축복이 예배돼 있음을 강조했다. 눈물로 녹인 오아시스
또한 송권사는 꽃꽂이는 성전을 아름답게 꾸며 교회에 오는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기도 하지만 전도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성전꽃꽂이 강의를 하다 보면 불신자들이 많이 옵니다. 그런데 강의시간에 찬송과 성경공부를 함께 하기 때문에 처음 한 두번은 거부감을 드러내지만 결국 주일예배·철야 등을 함께 드리는 믿음의 동지로 변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난 1989년에는 8년 만에 무속신앙인 가족 전체가 예수님을 영접한 일도 있었다. “한 수강생의 어머니가 오래된 무속인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집안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자 그녀는 물론 그녀의 어머니까지 굉장히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고 예배를 같이 드릴 것을 권유했죠. 그런데 예배를 통해 그녀가 이전에 몰랐던 평안을 알게 돼 많은 눈물을 흘렸어요.

그리고는 예수님을 영접했답니다.” 그날 이후 그 수강생은 가족 전체를 전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그 결과 집안에 있던 동상은 물론 표식까지 모두 버리고 온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됐다고.

또 1996년에는 다른 종교에서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던 임형자(여·59) 씨가 수강 3개월만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등 성전꽃꽂이 강의를 통한 전도 열매를 수없이 맺었다고 한다. “전도를 할 때 당장 안된다고 포기하면 안됩니다. 끝까지 전해야 돼요. 그리고 ‘예수님을 믿어라’는 직접적 메시지 보다는 전도 대상의 ‘필요’를 채워줘야 해요”라고 말한 그녀는 1992년 여의도순복음교회 전도왕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선교센터 건립이 최종 목표
하지만 송권사는 성전을 꾸미고,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며, 전도에도 효과가 있는 성전꽃꽂이에 대한 자기만의 고집이 있다. 그것은 철저히 ‘성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전꽃꽂이는 말씀이 있어야 해요. 절기를 지켜 꾸미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십니다. 따라서 성경을 알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꽃꽂이를 할 수 있어요.”

특히 그녀는 신학을 공부한 것이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우니나라 최초의 성전꽃꽂이 전문가로서의 자부심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국내는 물론 일본 대만 필리핀 미국 유럽과 캐나다에서 열리는 ‘세계 꽃 클럽’(WFC=World Flower Club) 행사 등에 한국 대표로도 참석해 해외에서도 한국 성전꽃꽂이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같이 그녀가 신앙을 바탕으로 한 실력가로 인정을 받자 이제는 일주일이 부족한 형편이다. 신촌, 구로, 일산, 전주, 압구정 등 서울과 지방 백화점에서 성전꽃꽂이 강의를 하고 있으며 수강생들은 항상 넘친다고 한다.

송권사는 “제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예배하심 때문입니다. 특히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한 도구로 꽃꽂이를 사용한 결과 이같은 은혜를 누리게 됐어요”라며 성공의 원인을 자신있게 밝혔다.

한편 그녀는 성전꽃꽂이를 통한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선교센터’ 건립. 대지 1천2백평, 건평 7천평, 지하 5층, 지상 12층이라는 구체적인 구상을 하고 있다. 이 선교센터는 성경에 나오는 장소, 인물 등을 그대로 축소 재현해 외국으로 성지순례를 가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실제 성지순례와 똑같은 효과를 누리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함께 성전꽃꽂이 대학과 성전 관련 물품 등도 함께 전시할 예정이다.

그녀는 “선교센터 건립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가장 큰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것이므로 꼭 이루어지리라 믿어요. 또한 외국에는 성전꽃꽂이 전문과정이 없으므로 선교센터 내의 성전꽃꽂이 대학이 좋은 예가 되어 이를 통한 성령의 불씨가 외국까지 편만히 전해지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라며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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