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순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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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순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느껴요”
  • 승인 2002.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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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혈액병있는 것이나 피부병있는 것을 너희는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단 위에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례 22:22)

수요일 점심시간. 성남 효성고등학교 교정에는 방송을 타고 한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꿈을 가지고 있나요. 그렇다면 그 꿈을 버리지 마세요. 왜냐구요. 하나님이 계시니까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잊지마세요. 여러분께 들려드릴 곡은 러브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노래를 듣고 난 아이들은 식후의 피곤함을 잊는다. 한 시간의 방송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복음’이 주인공이다. 열 마디 말보다 한 곡의 노래가 훨씬 전도효과가 좋다고 자신하는 당찬 방송반 아나운서는 바로 시각장애인 정아영양(기도의교회·효성고 2학년).
생후 5개월 만에 망막에 이상이 생겨 시력을 잃게 된 아영이는 오히려 찬양을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일깨워주는 전도자가 되어 있었다.

1986년 아영이 엄마 남복실씨는 8개월만에 쌍둥이를 출산했다.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들. 인큐베이터에 3주 동안 의지한 뒤 둘째 아영이만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늦게 얻은 딸아이를 금지옥엽 사랑하며 키웠다. 그런데 생후 5개월쯤 아영이가 눈을 비비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병원을 찾았고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아이만 살릴 수 있다면…. 빛을 보게 할 수 있다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절이며 무당이며 용하다는 사람들은 모두 찾아다녔다.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살아갈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의 전도로 교회를 찾았다. 예수님을 믿으면 혹시 아영이가 앞을 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모 기도원에 머물렀다. 그 곳에서 신유의 하나님을 목격했다.

“아~ 정말 그때의 감격은 잊을 수가 없어요. 아영이에게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요. 하나님은 아영이를 살리실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만 있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애원했어요.”

아영이의 아빠 정길순장로(효성고 교장)와 엄마 남복실권사의 신앙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오직 ‘신유의 하나님’만 확신하면서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새벽부터 밤까지 기도했고 봉사하며 하나님께 잘 보이려 애썼다. 남권사는 큰 딸 아영이와 8개월 된 수영이를 데리고 아예 중증 장애인 재활시설로 들어갔다. 아이들을 보듬고 몸이 부서지도록 봉사했다.

“하나님께 잘 보이면 아영이가 눈을 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앉은뱅이도 일으키시고 죽은 자도 살리는 예수님 아닙니까. 아영이 눈뜨는 것쯤이야 하나님껜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조용히 다른 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아영이가 3살이 되던 해, 아이의 입에선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피아노까지 혼자서 치며 노래를 부르는 아영이를 발견했다. 아영이의 눈을 낫게 하기 위해 간증집회와 부흥회를 찾아다녔던 정장로 부부는 아이의 재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 장로님의 권유로 앨범을 취입하게 된 아영이는 어느덧 부흥회에 초청받아 찬양과 간증집회를 이끄는 꼬마 부흥사가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간증집회에 참석한 것만도 1백40여 차례. 처음 아영이를 본 성도들은 ‘저 아이가 무슨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의심하지만 강단에 서서 하나님에 대한 사모함을 이야기하고 피아노 앞에 앉아 간절히 찬양하고 나면 사람들의 눈가엔 눈물이 맺힌다.
맹아학교나 다닐 수밖에 없었던 어쩔 수 없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영이를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우하셨다. 평범한 지방 고등학교 교사였던 정장로를 성남의 사립학교 교장으로 세우신 것. 1년 만에 중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통과한 아영이는 아버지와 같이 등하교하며 정상인들과 같은 교육을 받고있다. 방송반 테스트에 합격하고 뛸듯이 기뻤던 평범한 소녀는 일주일에 단 한번이지만 과감하게 복음방송을 진행한다.

이제 아영이네 가족은 모두 달라졌다. 하나님께 매달리며 아영이의 눈을 뜨게 해 달라는 기적을 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감사하며 기쁨의 예배를 드린다.
“그동안의 기도는 하나님께 떼를쓰는 것과 같았어요. 잘 보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해온거죠. 이젠 달라졌어요. 15년이 지나서야 참된 신앙의 길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고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영이가 눈을 뜨지 못할지라도 더 큰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겠지요.” 엄마남권사의 고백이다.

기자를 위해 노래를 들려준다며 피아노 앞에 앉은 아영이는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노래한 ‘비아돌로로사’를 불렀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조롱하였네… 나를 위해 걸으신 주님 고난의 그 길 … 갈보리 사랑의 길….” 가슴 속에서 우러나는 목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진다.

“이 노래가 갈수록 어렵게 느껴져요. 예수님의 고난을 노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예수님의 고난을 마음 깊이 묵상하고 있어요. 언젠가 예수님의 고난을 이해하는 날이 오겠죠.”
이어 아영이는 송명희시인의 ‘나’를 불러주었다. “많은 장애인들이 이 노래로 공평하신 하나님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눈이 안 보이는거요? 불평한 적 없어요. 하나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감사해요. 정말로….”

간구함으로 살았던 15년. 아영이네 가족은 하나님의 계획에 모든 것을 맡긴 채 주의 품 안에서 기쁨으로 산다. 아영이가 좋은 작곡자를 많나 세계적인 찬양사역자가 되고 외국에서 더 많은 배움을 얻어 심리치료사로 훌륭히 성장하길 기도할 뿐이다. 모든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말이다.
가족이 모두 모인 늦은 밤. 아영이네 가족은 마루에 모여 앉았다. 동생 수영이가 피아노를 치면서 찬양이 시작됐다. 네 식구가 흘리는 눈물엔 슬픔이 없다. 오직 감사함을 깨달은 아영이네 가족의 작은 부흥회에는 ‘기쁨’이 넘쳐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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