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시우스, 정통 그리스도교 신앙 가질 것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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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시우스, 정통 그리스도교 신앙 가질 것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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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1.30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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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하 교수의 풀어쓰는 이야기 교회사 (26)

                                 감독 암브로시우스와 황제 테오도시우스

▲ 백석대 역사신학
그리스도교의 공인(313) 이후 로마제국과 그리스도교의 관계가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발전하게 되었다. 점차 그리스도인들이 증대하게 되면서 4세기 중엽에는 다수의 원로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 제국의 백성들 역시 그리스도교의 문화, 사회, 종교 등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교화 되어갔다.

나름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그의 아들 콘스탄티우스 2세에게서 전통로마 종교 행위를 강하게 거부한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12년 10월 29일 트리어에서 있었던 제식에서 희생제물을 거부하였다. 이와 더불어 황제의 의도적인 옛 제식은 거부되었다.

그의 아들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는 더욱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로마제국의 교회에 성큼 다가섰다. 콘스탄티우스는 357년 처음으로 도시 로마에 도착하였을 때 백성들의 사랑을 받은 황제로 인정받았고, 그 또한 고대 로마 화덕의 여신 신전에서 신전을 지키는 6명의 여 사제들의 특전과 주어지는 비용을 감소시키거나 제한하지 않았었으나 자신에게 희생제물을 강요하자 승리의 여신 제단을 원로원에서 제거토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나찌안쪼스의 그레고리오스에 의해 ‘배교자’라고 비난받았던 율리아누스는 362년 황제가 되어 승리의 여신제단을 다시 원로원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옛 제식을 다시 재건하고, 닫혔던 신전의 문을 열었다. 신전을 다시 짓고, 몰수 했던 신전의 재산을 다시 돌려주었다. 극단적인 율리우스 황제의 반 그리스도교적인 행동은 383년 페르시아 전선에서 죽음으로 끝나게 되었다.

로마제국과 옛 로마의 종교의식 사이의 마지막 끈을 끊고 그리스도교의 특권을 위해 노력한 황제들은 로마 서쪽지역의 통치자 그라치아누스 황제와 동쪽지역의 통치자 테오도시우스 대제였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380년 2월 27일 모든 백성들이 정통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질 것을 칙령으로 선포했고, 381년 일반적인 희생제물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또 385년 5월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로 복귀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도 공포하였다. 382/3년 겨울 그라치아누스 황제는 원로원에서 승리의 여신의 신상을 항구적으로 제거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신관장의 칭호와 제식복을 거부하였다. 그는 승리의 여신을 ‘진정한 가르침의 보호자’로 허용할 수 없었고 그리스도인 원로원 원로들이 신들의 희생제물을 통하여 더럽혀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에 도시 로마의 행정책임자였던 쉼마쿠스는 황제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원상복구를 요구하였으나 밀라노의 감독이었던 암브로시우스의 도전에 직면하였다. 암브로시우스는 쉼마쿠스의 세 번째 청원서에 대하여 직접 반박하였다. 그는 진정한 구원이 오로지 참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희생제물이 원로원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배반하도록 위협하는 이유로 승리의 여신 제단의 재설치를 반대하였다. 암브로시우스는 “교회는 자신을 위하여 믿음 외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 교회의 소유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비용”이라고 강조한다.

암브로시우스는 황태후 유스티나가 어린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2세를 섭정하며 당시 밀라노에서 소수였던 아레이오스 주의자들의 예배처소로 성벽 옆에 있었던 포르티아나교회를 요구받았던 예배당 양도에 관한 싸움인 385년과 386년 사순절 두 차례에 걸친 박해에 직면했다.

밀라노교회는 군대들에 의하여 둘러싸였고, 여러 날 암브로시우스와 성도들은 기도하며 찬양하고 있었다. 이때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회를 포위했던 병정들이 기도와 찬양의 소리를 듣고 무기를 내려놓고 교회에 합류함으로써 박해는 끝나게 되었다.

암브로시우스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와 가장 큰 긴장관계를 가졌다. 388년 데살로니키의 유대인 회당을 파괴한 일로 그리스도인들을 처벌하도록 칙령을 내렸고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했었다. 이 일로 황제는 390년 암브로시우스 감독의 지침에 따라 교회 앞에 공식적으로 참회하고, 황제의 의복을 벗고 교회 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죄를 고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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