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통합 향한 연합과 일치의 길 제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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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통합 향한 연합과 일치의 길 제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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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1.3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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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생 사무총장 (한국교회희망봉사단)

지난 1988년 2월 1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사시를 내걸고 초교파 정론지로 출발한 본지가 올해로 창간 25주년을 맞이했다. 앞으로도 새로운 시대에 앞서가는 소식지로,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선교지로, 또 언론 문화의 창달을 도모하는 정론지로서의 역할을 감당해나갈 것이다. 또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중심으로 교회 부흥과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다. <편집자 주>

언제부터인가 기독교계의 언론 풍향계로 자리잡은 기독교연합신문에 대한 기대감이 남다른데 마침 창간 25주년을 맞이하면서 지면을 통해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그동안 기독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해 왔지만 주마가편의 심정으로 섬김 사역의 현장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 두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흔히들 종교의 기능으로 사회통합과 치유를 이야기 한다. 양극화의 심화로 몸살을 앓는 한국사회는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과제다. 서로의 다름을 극대화하여 편을 가르는 오늘, 다양성속의 일치라는 통합의 화두를 우리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이리라.

복지사회에 많이 근접해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 보장을 필요로 하며 그들을 대변하고 치유하여 최소한의 기본적인 삶이 가능하도록 더불어 책임지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을 위해 이웃 교회와 경쟁적이었으며, 같은 지역안에 있으면서도 교회간 연합과 일치에 인색해 왔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동역자인데도 함께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스스로 고립과 단절을 선택해 온 것 같다.

기독교 구원이 배타성을 전제하지만 구원의 본질보다도 비본질적인 것들로 사마리아와 이방인에게까지 넓혀 놓으신 주님의 구원사역을 한없이 좁혀 온 것이다. 진정한 구원을 위해 헬라인에게는 헬라인과 같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유연했던 사도바울의 통합윤리가 차라리 그립다고나 할까? 외국이주민이 교회에서 항존 직분자가 될 수 없다는 주요 교단의 총회적 유권해석은 2천 년 전 만도 못한 어처구니 없는 인식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우리 사회는 곳곳에 아픈이들의 신음소리와 상흔들로 충만하다. 이들의 아픔과 상처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교회의 역할이 절실한데 교회는 선교의 목적으로 이들을 대상화하거나 자신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동원 이벤트 정도로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교회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이 될 수 있도록 구조화하는 일들을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굳이 다른 도피성을 찾지 않아도 되도록 교회는 이들과 함께 울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는 것이다.

교회가 이들을 포기할 경우 이들은 자신들을 위로하고 대변할 또 다른 지주목을 찾아 결국은 교회를 등지게 될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따라서 기독언론은 사회통합을 향한 연합과 일치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분열과 반목의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공감과 배려를 기본가치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상처와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을 향해 섬김과 나눔과 돌봄을 수행하되 그들을 활용하는 일회적 프로그램은 단계적으로 지양해야 한다.

지역사회 곳곳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이들의 위로자가 되고 있는 교회를 찾아내되 이제는 지교회 단독으로 잘하는 곳 보다는, 지역 교회가 연합하여 지역사회를 섬기는 사례, 지역의 교회가 지역의 민간단체들과 공공기관이 함께 협력하는 협치의 사례들을 찾아내고 지역사회에서 칭송받는 교회들을 격려해 주어야 한다. 교회 혼자 열심히 하는 사례에서 지역사회와 우리 민족을 넘어서는 협력사역에 주안점을 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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