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담아낸 ‘밥 한 그릇’ 허기진 이웃의 차가운 몸을 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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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담아낸 ‘밥 한 그릇’ 허기진 이웃의 차가운 몸을 녹였다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3.01.30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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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동갑내기, 다일공동체 ‘밥퍼’ 봉사현장을 찾다

1988년. 쓰러져가는 할아버지 한 분에게 설렁탕 한 그릇을 대접했던 일. 사흘을 굶어 지친 이웃을 돌아봤던 한 청년의 선행이 지금의 밥퍼, 다일공동체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설렁탕 한 그릇으로 시작된 ‘밥퍼’가 어려운 이들에게 밥을 나눈지 25년이 됐다. 한 사람을 위해 시작했던 밥퍼의 나눔은 매일 청량리에서만 7백~1천여 명. 필리핀, 캄보디아, 네팔, 베트남 등 세계에 세워진 지사까지 합쳐 매일 4천여 명으로 확대됐다.

이른 아침 청량리역.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주위를 둘러볼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 우리가 사는 일상 속에서 이웃을 돕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주위를 돌보며 이웃을 돕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청량리 한 굴다리 옆 다일공동체의 밥퍼 현장. 그 따뜻한 봉사의 현장에 25살 동갑내기 기독교연합신문 기자들이 함께했다. <편집자주>

추운 겨울, 아침 9시 집합
작은 시곗바늘이 숫자 9를 가리키려는 찰나, 청량리 밥퍼 2층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오늘 하루 나눔을 위해 ‘밥퍼’를 찾은 봉사자들이다. 봉사자들을 환영하기라도 하듯 바깥에는 흰 눈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공부방 선생님을 따라나선 고등학생들, 군대 제대 후 1주일 만에 밥퍼를 찾은 휴학생, 군대 휴가를 나온 오빠의 손에 이끌려 봉사에 나선 여동생과 아버지, 직원들이 의기투합해 정기봉사를 약속한 회사 사람들까지 이른 아침임에도 나눔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자 여러분 앞으로 좀 당겨 앉아주시고요, 지금부터 오늘 무슨 일 하실지 정하도록 할께요.”

어려운 일에 선뜻 손을 들며 자처하는 사람부터 마지막까지 결정하지 못해 남은 일거리를 받아가는 사람까지 봉사에 참여하는 모습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 마음만큼은 모두 따뜻해 보였다.

각자 할 일을 정한 후 밥퍼의 역사를 담은 영상을 관람했다. 25년간 이렇게 이웃을 위해 따뜻한 밥을 나눌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봉사자 여러분 덕이라는 간사의 설명에 부담감과 뿌듯함이 교차한다. 밥퍼의 ‘트레이드마크’ 주황색 앞치마를 받아들고 1층 식당으로 향했다.

벌써 식탁 앞에 앉은 노인부터 바깥에 줄을 선 이들까지. 배식이 시작되는 시간은 11시, 밥도 밥이지만 사람이 고팠던 노인들은 일찍이 집을 나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 아까 잔반정리 맡으신 분들이랑 설거지하기로 하신 분들은 아직 하실 일이 없으니까 이쪽으로 와서 마늘 좀 까주세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마늘 껍질을 벗긴다. 다들 익숙치 않아 마늘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마늘을 너무 많이 잘라내는 실수하기도 하지만 그 표정에선 웃음이 흘러나온다.

“집에서 엄마 일하시는 것도 한 번도 도와드린 적 없는데 진짜 마늘 깔 때 눈물이 나네요? 안 해봐서 몰랐는데…. 이제 여기서 배웠으니까 집에 가서도 좀 도와드려야겠어요.”

배식이 시작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배식을 기다리는 이들의 줄은 길어지고, 동시에 봉사자들의 손놀림은 분주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에요. 맡은 일 열심히 해주시고요, 열심히 봉사하는 여러분 모습 보시면서 어르신들은 힘을 얻으실 것 같아요. 더불어 따뜻한 말 건네주시면 안 그래도 추운 겨울 더욱 힘이 되실 것 같아요.”

▲ 봉사에 나서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쁨으로 섬기는 마음이다.

눈코 뜰 새 없이 이어지는 배식
조리실에서부터 쭉 늘어선 행렬. 손에서 손으로 식판이 옮겨지고, 노인들이 앉은 식탁 앞에 살포시 놓여진다. 식판이 놓여짐과 동시에 당부한 따뜻한 말도 잊지 않는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쉴새없이 전해지는 식판, 조금은 고단해질 만도 한데 기쁨으로 밥상을 맞이하는 어르신들의 표정에서 다시금 힘이 솟아나는 듯하다.

“식판을 받으면 바로바로 놓고 또 놓고 해야 해. 이 분부터 드려. 이분 나이가 올해 아흔넷이셔.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데 이건 따신 밥이잖아. 어른부터 챙겨드려야지.”

처음 보는 봉사자에게 식판 전달하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할아버지. 주변에 함께 앉으신 분들의 소개도 잊지 않으신다.

“이 분은 멀리 의정부에서 오셨어. 그리고 이 할머니는 아주 예뻐. 그게 끝이야. 나는 알꺼 없고. 됐지?”

이른 아침 멀리 의정부에서 청량리까지 한 끼 식사를 위해 오셨다는 94세 할아버지. 식판이 앞에 놓이자 눈을 지그시 감고는 기도를 읊조리신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밀려오는 식판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따뜻한 밥을 전한다.

비닐봉투를 꺼내 식판의 밥 일부를 챙기는 할머니 아마도 저녁 식사를 생각하고 밥을 챙기시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뒤따른다. 허겁지겁 입에 밥을 구겨 넣으시는 할아버지... 우리 사회의 노인복지의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날 공부방 선생님을 따라 밥퍼를 찾은 박현민(18) 학생은 “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식사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무척 안타까웠다”며 “부족함 없이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선생님은 어떤 생각으로 아이들과 함께 밥퍼를 찾게 됐을까.

공부방 선생님 이근원(31) 씨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고 있지만 공부를 통해 어떤 꿈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이 주위를 돌아보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바르게 자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들에게 밥 한 끼는 희망
슬슬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시는 노인들. 봉사자들의 손놀림은 다시 한 번 빨라지기 시작했다. 잔반처리와 설거지가 남았기 때문이다.

남은 반찬을 버리고 식판을 모으면서도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 “조심히 살펴가세요.” 인사하는 청년. 정주환(25) 씨는 군대에서 제대한지 일주일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누군가와 함께 온 것이 아니라 홀로 봉사에 나섰다.

“군대가기 전에 친구들이랑 왔었는데, 그땐 너무 장난만 치다 간 것 같아서 다시 오게 됐어요. 봉사 하는 이유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와서 하는 거예요. 누굴 돕고 하는데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일손을 돕는 청년도 있었다.

해병대에서 복무중이라는 전승엽(24) 씨는 휴가를 맞아 밥퍼를 찾았다. 아버지 전병수(53) 씨와 여동생 전은샘(22) 씨의 손을 이끌고 말이다.

“전부터 아버지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거기에 오늘은 여동생까지 함께 하게 됐죠. 제가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께서는 늘 넓은 세상을 보여주시며 우리가 사는 세상 말고도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어요. 더욱 화려한 세상이 있는 반면 더욱 힘든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이 곳을 찾으신 분들과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나누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이날 밥퍼를 찾아 한 끼 식사를 대접받은 사람은 모두 8백여 명. 끝도 없이 밀려드는 식판에 설거지를 맡은 사람들 이마엔 구슬땀이 맺혔다. 모든 사람이 퇴장하고 봉사자들의 식사시간. 넘치는 사랑으로 아낌없이 퍼주다 보니 국이 하나도 남지 않는 바람에 주방장이 즉석으로 끓여준 표고버섯된장국은 잊지 못할 맛으로 다가왔다.

25년간 이어져온 밥퍼, 많은 봉사자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자는 누굴까.

오랜 시간 밥퍼의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는 함태영(50) 씨는 함께 식사를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자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결혼을 앞둔 두 남여가 밥퍼로 전화를 했어요. 결혼 전 뜻 깊은 일을 하고 싶은데, 밥퍼에서 일을 할 수 있느냐며 물었죠. 알고 보니 제주도에서 찾아온 사람들이더라고요. 열흘을 일하고 다시 고향으로 갔는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며칠 후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 다시 찾아왔어요.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 경비를 모두 기부하고, 신혼여행 기간 동안 더 봉사하겠다는 겁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봉사의 기쁨을 깨닫고 일생 한번뿐인 신혼여행까지 밥퍼에 기부한 신혼부부,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밥퍼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식사를 끝내고 마지막 뒷마무리에 청소까지 마쳤다. 그리고 드디어 바깥마당에 봉사자들이 함께 모였다. 모두들 얼굴은 지친 기색이었지만 왠지 모를 미소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입가에 피어올랐다.

▲ 봉사를 모두 마치고 한 자리에 모인 봉사자들.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옛날에 비하면 일도 아니지. 따뜻한 물도 나오고, 이젠 할만 해요.”

작업반장이 말했다. 88년 작은 국밥 한 그릇은 리어커에 실은 컵라면으로 이어졌고, 다시 굴다리 아래 터를 잡아 생명의 밥을 나눴다. 눈이오나 비가 오나 청량리 굴다리 아래에 가면 한 끼 밥을 해결할 수 있었다. 언 손을 ‘호호’불며 배식을 하고 찬물에 설거지를 하던 고된 시간은 지금 추억으로만 남았다.

12년 전부터 실내급식소를 마련해 어르신들도 따뜻한 곳에서 편히 식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던 긴 줄이 사라지고 ‘누가 다 먹을까’ 싶던 커다란 국통이 비워졌다. 안산에서, 인천에서, 의정부에서 전철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찾아오는 노인들. 한 끼의 밥을 절반으로 나눠 비닐봉지에 담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그들에겐 다음 끼니도 걱정이 됐나보다.

급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는 언론을 통해 심심찮게 들려온 지 오래다. 봉사에 인색했던 삶. 바쁘다는 핑계로 이웃을 돌보지 못했던 일상. 하루 시간을 내 찾았던 밥퍼. 봉사를 마치고 나니 온 몸이 쑤시기 시작한다. 기분 좋은 통증이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고통에도 조금의 기쁨은 담겨있지 않았을까?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던 한 분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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