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르포]눈물의 예배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
상태바
[소록도 르포]눈물의 예배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3.01.30 15: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립 25주년 르포 ‘기도의 섬’ 소록도를 가다 <상>

▲ 오전 소록도로 출발하기 전 녹동항에서 바라본 일출모습. 소록도 교회 관계자는 소록도, 특히 소록대교에서 바로본 일출-일몰 광경은 장관이라고 전했다.

소록도로 출발하기 전 아침 녹동항에서 바라본 일출 모습. 눈앞 바닷길 건너 손에 잡힐듯한 곳에는 아름다운 섬 소록도의 모습이 보인다. 섬 능선을 따라 펼쳐진 소나무 숲과 깨끗한 해변과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섬. 녹동항에서 소록도로 펼쳐진 소록대교를 따라 한국 기독교 역사가 담겨있는 곳을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

소록도 신앙은 성도들이 흘린 눈물의 강,
그 신앙의 강을 따라 섬 내 교인 모두와 함께 건너는 것

소록도 신앙의 맥 신앙유산으로는
섬 내 7개 교회와 김정복 목사 기도굴 있어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5시간여 달려 도착한 전라남도 고흥군 녹동. 녹동항에서 눈을 들면 물길 넘어 600미터 거리에 웅크린 어린 순록 모양의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 이 작은 섬에는 90여 년간 이어 내려온 소록도 성도들의 신앙 이야기가 담겨있다. 눈물과 땀, 때론 아픔과 어려움이 서려 있는 곳을 신앙의 힘으로 바꾸며 걸어온 소록도 성도들의 발걸음을 좇아 동행했다. <편집자 주>

▲ 소록도에는 성도들이 90여 년간 지켜온 ‘순교신앙’과 ‘눈물의 기도’가 신앙 유산으로 남아 전해져 내려온다. 사진은 소록도 중앙교회의 모습. <사진제공:소록도교회>

# 뗏목목회
남도 아침 바닷바람을 뒤로하고 ‘소록도 신앙’을 배우기 위해 찾은 소록도교회 연합사무실. 소록 중앙교회 내 위치한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섬 내 5개 교회를 동시에 섬기고 있는 당회장 김선호 목사를 만날 수 있었다.

새벽 3시 50분에 시작되는 새벽기도. 이날도 새벽기도회 인도를 위해 김형욱 부목사, 천우열 전도사와 함께 각각 섬 내 교회 두 곳씩 방문하고 돌아온 그는 이곳에서의 기도가 다른 곳보다 조금 일찍 시작되는 까닭은 “신앙은 소록도 성도들의 ‘삶의 이유’이기 때문에 단 하루도 빠질 수 없다”는 설명으로 대신했다.

소록도 내에서 기도소리가 멈추지 않는 교회는 그래서 총 5개다. 세 명 사역자의 인도로 중앙, 신성, 동성, 남성, 북성교회에서는 매일 말씀선포와 찬송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 신앙이 갖는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다면 매일 오후 12시가 되면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점. 정오에 섬 내 교회 종이 울리면 성도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한 성도들이 예배 한 시간 전부터 모여 찬양과 기도로 준비하는 한국 기독교가 이어온 전통도 이곳에서는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런 성도들을 향해 김선호 목사는 소중한 신앙유산이 아직 남아 있는 이곳에서의 사역을 ‘뗏목 목회’라고 말한다.

“뗏목 목회는 소록도 성도들이 흘린 눈물의 강, 그 신앙의 강을 섬 내 모든 교인분들과 함께 건너가는 것이죠. 소록도 신앙은 성도 한 분 한 분의 신앙을 모아 주님께서 주시는 물결과 바람에 의지해 인도하시는 데로 흘러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역자들은 그래서 주일마다 6번 드리는 예배와 수요예배, 그리고 매일 2번씩 열리는 새벽기도도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다. 여기에 연간 200회가 넘는 부흥집회 및 외부 방문과 연 60회에 달하는 천국환송예배까지 포함하면 소록도에서는 365일 찬양과 기도의 물결이 마를 날이 없다. 이같이 뜨거운 기도의 물결이 식지 않는 이유에 대해 천우열 전도사는 소록도 신앙의 중심축은 ‘기도’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경 암송하고 기도하는 것이 소록도 교회의 맥입니다. 바라볼 곳도, 의지할 곳도, 부르짖을 곳도 없는 소록도 성도들에게 신앙이 갖는 의미와 깊이는 조금은 다르다고 할 수 있죠. 여기 계신 분들은 신앙 안에서 승리하는 삶으로 천국을 소망하며 매일 기도 드립니다.”

같은 아픔을 간직해온 천 전도사는 소록도 교회의 특성을 ‘마르지 않는 눈물’로 드리는 ‘부르짖는 기도’라는 말로 대신했다.

▲ 현재 소록도 5개 교회를 섬기고 있는 당회장 김선호 목사(가운데)와 김형욱 부목사(오른쪽), 천우열 전도사(왼쪽).

# 믿음의 유산, 7개 교회
90여 년간 소록도 성도들이 간직해온 믿음의 유산은 무엇일까. 그것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앙일 것이다. 섬 곳곳에는 그렇게 아픈 몸으로 세상을 떠나며 고통으로 말 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멘’이란 말을 입속에 되뇌며 눈을 감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가득했다고 말한다. 김선호 목사는 바로 그런 시간의 흐름이 소록도에는 기독교유산으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그 모습은 마을이 하나하나 생겨날 때마다 성도들의 희생으로 생겨난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5개 교회만이 남아있지만 사실 소록도에는 총 7개의 교회가 세워졌다. 최초에 세워진 교회는 두 개. 1928년 7월 일제시대 구북리에 처음 세워진 북성교회와 같은 해 10월 남생리에 세워진 남성교회를 비롯해 섬 내에는 일찍부터 복음의 산실이 하나 둘 씩 세워졌다.

그리고 오늘날 섬 내 소록도교회 연합회의 중심축을 감당하고 있는 중앙교회와 신성교회, 동성교회, 북성교회 등도 1962년 제6대 당회장 김두영 목사가 함께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된 예배당의 모습을 갖춰갔다. 지금은 장성교회와 서성교회가 인구 감소로 폐쇄됐지만 남은 5개 교회를 중심으로 소록도 신앙은 살아 숨 쉬고 있다.

소록도 교회는 1960년 이전 병원에 소속된 빈 건물이나 창고를 빌려 예배를 드렸다. 그러던 중 1962년 1월 병원원장이 교체되면서 소록도 내 병원에서 빌려 예배당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대부분 반환하고 현재 복지관 건물만 예배당으로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당시 소록도 내 성도는 4천여 명. 육체적 아픔과 가난에 직면해 있던 7개 교회 성도들은 그 가운데서도 함께 힘을 모아 건축기금 7만 원을 마련했다. 특별한 산업이나 공장도 없이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해온 주민들이 헌물 한 기금으로는 그나마도 많은 편이었다.

▲ 북성교회는 1928년 7월 일제시대 소록도 구북리 내에 처음 세워진 교회다. 북성교회를 비롯해 같은 해 10월 남생리는 남성교회가 세워졌다.

1962년 6월 소록도교회연합회 당회장에 부임한 김두영 목사는 부임한 바로 다음 달 성도들의 정성이 담긴 건축헌금을 눈앞에 두고 일곱 교회 예배당 건축을 결의하고 건물 및 부지 지정을 위한 절충에 들어갔다.

작은 섬의 4천6백여 명 성도를 위한 교회건축은 그해 11월 신생리교회 착공을 시작으로 장안리교회와 북성교회를 세우는 일로 연결됐다. 하지만 같은 시기 농토 확보를 위한 오마도 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교회 건축을 위해 필요한 건장한 일꾼들이 그곳으로 몰렸다. 소록도교회 역사에는 교회 건축을 위해 장정들이 떠난 자리에 병약한 노약자들만 남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우열 전도사는 그러한 가운데서도 소록도 주민들은 금식으로 식량을 모아 팔아 건축헌금을 마련했고, 여자 성도들은 삭발을 해 교회 주춧돌을 쌓았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교회에 쌓인 벽돌에는 그렇게 성도들의 눈물과 피가 묻어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묘사했다.

“눈 어둡고 손발이 불편한 성도들도 빠지지 않고 함께 했습니다. 눈이 밝은 성도는 안내를 하고 눈이 어두운 성도는 손수레를 끌었죠. 여 성도는 세숫대야로 자갈을 퍼서 운반하고 몸이 불편해 자갈을 주울 수 없는 성도는 몸에 수저가 붙은 의수를 끼워 자갈을 주워 담았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건축이 계속되는 동안 성도들의 손과 어깨에는 항상 피가 흘렀습니다.”

이 전도사는 당시 만들어진 교회 건축 벽돌은 성도들이 흘린 피로 붉어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형욱 부목사도 “하나의 교회가 건축되면 다음 교회 건축을 위해 성도들은 완공된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던지 새로 지어진 교회당 나무 바닥은 마를 날이 없었다”고 전했다.

특히 암석 위를 예배당 건축 부지로 받은 동성교회의 경우 변변한 건축 도구가 없어 당시 성도들은 의수에 달린 숟가락으로 바위 바닥을 긁어내면서까지 교회를 세워갔다. 소록도 내 7개 교회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하나씩 설립됐다. 자갈 주울 손이 없는 경우에도, 두 발로 걸을 수 없는 경우도 문제 되지 않았다고 소록도 교회 역사는 말한다.

김선호 목사는 소록도 교회의 신앙은 바로 이렇게 세워져 오늘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가난과 질병이 눈앞에 있지만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까지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천국에 소망을 두며 살았다. 그는 소록도를 방문할 때 먼저 7개 교회를 방문해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소록도 신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전했다.

▲ 건축부지로 받은 암석 위에 세워진 동성교회는 소록도 성도들의 눈물과 아픔이 담겨 있다.

# 목회자 김정복과 손양원
소록도가 자랑하는 믿음의 유산은 그 외에도 하나가 더 있다. 김선호 목사가 전한 ‘신앙의 선배’에 관한 것. 김정복 목사와 김두영 목사 두 사람은 소록도 교회 역사를 회고하는데 있어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다.
그 중 6.25 전쟁 당시 소록도 교회를 끝까지 지키다 순교한 김정복 목사의 순교정신은 지금도 소록도 신앙의 한 축을 이루며 이어지고 있다.

신사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른 고흥 길두교회 김정복 목사와 애양원교회 손양원 목사가 소록도 성도를 섬기기 위해 섬에 도착한 것은 1946년 4월 말. 출옥 후 소록도 교회 재건을 위해 10일간 두 사람은 함께 공회당 부흥사경회를 열었다. 공동의회를 통해 6개 교회에서 장로 임직식이 열릴 때 손양원 목사가 안수 기도를 하고 김정복 목사가 피택 장로를 공포했다. 그러던 중 일설에 의하면 소록도 성도들의 투표로 한 표가 더 많이 나온 김정복 목사가 소록도에 남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천우열 전도사는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은 같은 마음으로 한센병의 아픔을 겪는 성도를 섬겼던 만큼이나 서로 닮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제1대 소록도 교회 당회장에 취임한 김정복 목사는 7개 교회를 섬길 사역자를 세우며 소록도 교회의 모습을 회복시켰다.

▲ 김정복 목사가 평소 묵상하고 금식했던 기도굴. 신생리 마을 뒤편에 위치한 이곳은 중앙교회에서 성인걸음으로 30여 분, 차로 10여 분 비포장 길을 달리면 기도굴로 나 있는 소로를 만날 수 있다. 현지인들은 이곳을 굴날뿌리 동굴이라 부른다.
소록도에는 그런 그의 신앙 여정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장소가 하나 있다.

교회 방문과 함께 빼놓지 말고 찾아야 할 곳은 소록도 성도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기도한 김정복 목사의 기도굴이다. 신생리 마을 뒤편에 위치한 이곳은 중앙교회에서 성인걸음으로 30여 분, 차로 10여 분 비포장 길을 달리면 기도굴로 나 있는 소로를 만날 수 있다. 기도굴 위 우측으로 소록대교가 보이는 산 중턱에서 다시 5분정도 도보로 산길을 내려가면 해안가에 자연적으로 발생한 굴을 만날 수 있다.

기도굴까지 안내한 김형욱 목사는 현지인들이 ‘굴날뿌리’로 부르는 이곳에는 6.25 전쟁 시 소록도 성도를 위해 기도하며 끝까지 몸을 피하지 않았던 김정복 목사가 인민군에 의해 고흥 정치 보위부로 끌려간 아픈 역사가 담겨있다고 전했다. 소록도 성도들은 잠시라도 몸을 피하라고 애원했지만 김 목사는 주신 사명을 버리고 떠날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며 몸을 피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목사님의 대답은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연약한 양 떼를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것.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기도굴에서 끌려가면서도 그는 소록도 성도들에게 신앙절개를 굳게 지켜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남겼습니다.”

김형욱 목사는 이념으로 갈라진 섬에서 청년 중 한 사람이 김 목사가 있는 곳을 밀고해 끌려갔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김 목사는 한 마디의 원망 없이 신앙을 지키다가 인민군이 퇴각하던 날 고흥 경찰서 뒷산에서 향년 69세의 나이로 순교했다고 말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김정복 목사의 기도굴은 소록도교회 연합회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설명 팻말과 함께 복원이 추진될 예정이다. 김선호 목사는 소록도 신앙에는 1950년 9월 김정복 목사의 순교정신도 함께 흐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복 목사를 추모하는 순교비는 현재 소록도중앙교회와 고흥읍 남쪽 1km지점에 위치한 김 목사 순교묘역에서 확인할 수 있다.

▲ 1월 중순 아침, 소록도 해변 곳곳에는 떼 지어 날아다니는 철새 무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