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에서 감독으로, 이름만 바뀔 뿐 목표는 ‘복음 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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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에서 감독으로, 이름만 바뀔 뿐 목표는 ‘복음 전하는 것’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3.01.30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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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청소년 국가대표 후보 선수단 양영자 감독

1988년 2월 꼭 금메달을 따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던 한 여자 탁구선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겠다고 다짐했던 선수. 바로 양영자 감독이다. 그는 결국 서울에서 개최됐던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여자탁구 복식에서 현정화와 함께 금메달을 거머쥔다. 탁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자마자 이룬 쾌거였다. 금메달을 따고 최정상에서 기쁨을 누리던 1988년. 그 이듬해 그는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다음 세대에게 탁구라켓을 넘겨줄 때”라는 이유가 뒤따랐지만, 사실 그는 오랫동안 간염과 팔 통증 등으로 말 못할 아픔을 견뎌왔다.

그 후 1992년, 그는 당시 연합뉴스 국제부 기자였던 남편 이영철 씨와 결혼하고, 한국WEC국제선교회의 허입을 받아 몽골로 떠나 탁구선수 양영자가 아닌 선교사 양영자로 살아가게 된다. 1988년 인터뷰에서 은퇴 후 지도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그는 이제서야 지키고 있다. 하나님이 자신을 고쳐주셨기에 이제 평생 복음을 전파하려는 마음도 가슴에 새겼다. 고국으로 돌아와 차세대 선수들에게 양영자 감독으로 불리는 그를 탁구 국가대표 후보선수 동계합숙훈련이 한창인 충북 단양에서 만났다. <편집자 주>

▲ 이른 오후, 단양에서 만난 양영자 감독.

잘 지내셨습니까?
선수들의 연습을 위해 꾸려진 체육관. 높은 곳에서 선수들의 동작을 유심히 살피는 사람. 한 선수의 뭉친 등 근육을 주물러주며 농담을 던지는 사람. 바로 양영자 감독이었다. 사실 양영자 감독은 1988년 2월 기독교연합신문의 창간호의 간증면을 장식한 인물. 그리고 인터뷰에서 약속한 바와 같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5년만의 만남. 그는 어떻게 지냈을까.

“잘 아시다시피 1988년 금메달을 따고, 이듬해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1991년에 결혼해 남편과 몽골로 선교를 떠났죠. 1990년 몽골이 개방되고 그 빈틈에 하나님의 사랑을 채워주고 싶었어요. 9년간 이어진 몽골 선교에서 남편은 성경 번역을, 저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탁구로 선교에 나섰어요. 그리고 지금은 청소년 국가대표 후보 선수단의 감독을 맡아 탁구계의 차세대 리더를 키워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몽골 선교 중 어려운 점은 없었을까. 양 감독은 몽골에서 스스로를 내려놓는 계기가 찾아왔다고 고백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곳에서 안면마비까지 겪었다. 그는 이 모든 시련이 하나님이 자신을 단련시키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현지 문화가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고, 맘고생도 심했죠. 그들이 생각하기에 저희는 부자니까 부자는 자기들에게 뭔가 베푸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빌린 돈을 떼먹는 것은 예사죠. 더욱이 존칭이 없는 몽골에서 특별히 ‘너’, ‘당신’을 부를 때만 존칭을 사용하는데, 저에게 존칭을 쓰지 않고 함부로 할 때 너무 기분이 나빴어요. 그래서 언성을 높인 일도 있었는데 그 때 깨달았어요. ‘아, 내가 너무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나보다. 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온 선교사인데 존중을 받으려고 했구나.’ 내가 조금 더 낮아져 그 삶속에서 하나님이 드러나게 해야겠다는 사실을 그 때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계기를 통해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게 됐다. 평소 그저 교회를 오가는 형식적인 교인이었던 그. 하나님은 양 감독에게 달란트를 주시고 그 달란트를 활용할 수 있는 여건도 허락하셨다.

“선수 시절 ‘테니스 엘보’라는 증상으로 어려움을 겪었어요. 1983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경기를 치르는데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들더라고요. 팔을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날 정도였어요. 겨우겨우 단식에서 은메달을 땄어요. 팔 통증 때문에 은퇴를 처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주변에서 팔이 나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며 한 기도원을 추천해줬어요. 청평에 있는 ‘하늘산 기도원’이었죠. 며칠 묵으며 안수 기도를 받았는데 팔이 거짓말같이 싹 나았어요. 6년간 진통제를 맞으며 생활했는데, 며칠 만에 다 나았죠. 그 사건이 탁구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된 거죠.”

양영자 선교사? 감독?
포털 사이트에서 ‘양영자’를 검색해보면 그를 부르는 말은 다양하다. 과거에는 ‘선수’, ‘선교사’ 그리고 지금은 ‘감독’이라고 불린다. 그는 어떻게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할까.

“가끔 선수들과 함께 있을 때 저를 마주치는 몇몇 분들은 저를 ‘선교사’라고 불러요. 그러면 선수들은 ‘선교사?’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하죠. 선교지에 있을 때는 선교사로 불리는 것이 맞고 경기장에 있을 때는 감독으로 불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 안에 있는 중심이 변하지 않는데 뭐라고 불리든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몽골에서 선교사로 있을 때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금도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말씀을 증거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제 인생의 목적이고 목표입니다.”

▲ 양 감독에게 가장 힘든 것은 선수들의 부상이다. 이 때문에 더욱 많은 기도를 하게 된다는 그.
후보 선수단을 이끌어가면서 어려운 점은 없을까. 각 학교에서 내로라하는 청소년들이 모여 합숙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요즘 양 감독은 한 가지 고민이 있다.

“저도 감독이기 이전에 두 아이의 엄마예요. 선수들이 다치는 것이 가장 힘들죠. 계속 운동을 해야 하는 아이들인데 부상을 당해 중요한 경기를 치르지 못하거나 하면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 없어요. 저도 테니스 엘보로 인한 팔 통증으로 선수 생활할 때 어려움을 겪어봐서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죠. 그래서 요즘 기도 열심히 해요. 기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하나님이 만들어주시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 간절히 기도해요. 머지않아 청소년 국가대표 선발전이 있는데, 이번 훈련에서 다치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몽골에서도 탁구를 가르쳤다. 재능이 보이는 한 아이를 데려와 귀화시켜 프로 팀에서 뛰게 돕기도 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몽골에서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탁구를 가르쳤어요. 어떻게 보면 연장선상인거죠. 한국에 와서도 청소년들에게 탁구를 가르치는데, 아이들의 성향 말고는 달라진 게 없어서 편안해요. 아무래도 한국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더 편한 것 같아요. 일단 말이 잘 통하잖아요. 하고자 하는 열정도 있고 말이죠. 몽골에는 워낙 탁구 인구가 많아 국가대표가 되기 어려우니 아이들이 사활을 걸고 연습에 임하지 않거든요. 그래도 몽골 아이들만이 가진 순수함은 스마트폰에 매달려 사는 우리 아이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것 같아요.”

경쟁 그리고 미래
거의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탁구 또한 경쟁이 기본이다. 복식 경기의 경우 파트너와 협동을 한다고 해도 경기에서 지는 선수는 결국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협동, 연합을 강조한다. 이 부분에 대해 양 감독의 생각은 어떨까.

“선수 시절 하나님을 만나고 ‘경쟁’이라는 것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어요. 제가 승리할 때 누군가는 실패의 좌절을 맛봐야 한다는 것이 크리스천으로서 어려움으로 다가왔던 거죠. ‘경쟁 또한 하나님이 주신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경쟁이라는 것을 만드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 생각을 한 뒤로 더욱 열심히 연습에 임했고,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양 감독이 몽골 선교활동을 마치고 귀국해 대한민국의 차세대 탁구 리더를 양성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을 때, 많은 언론은 ‘양영자가 돌아왔다’고 반겼다. 탁구계를 등지고 몽골로 떠났던 그가 돌아왔다는 환영의 인사였던 것. 하지만 이 부분에서 양 감독은 의미심장한 말 한 마디를 던졌다.

▲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 탁구 복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양영자, 현정화.
“많은 사람들이 ‘양영자가 돌아왔다’라고 하더군요. 탁구계를 떠났던 양영자가 다시 돌아왔다고 하는 말 같은데, 저에게는 조금 의아하게 느껴지는 말이에요. 저는 몽골에서도 탁구 라켓을 쥐고 있었고, 한 번도 탁구계를 떠난 적이 없거든요. 늘 탁구공, 라켓 그리고 녹색 테이블과 함께 있었어요. 그게 하나님이 주신 제 달란트니까요. 앞으로 한국 탁구의 차세대 리더를 키우는 것이 목표에요. 기도하며 아이들을 지도할 때 제 모습에서 저의 행동에서 탁구뿐만이 아니라 제가 받은 하나님 사랑을 아이들도 느낄 수 있을 꺼라 믿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싸인을 해달라며 수첩을 내밀었다. 수줍은 듯 펜을 든 양영자 감독의 손은 이름 석자와 함께 ‘For Christ’라는 영문을 써내려갔다. ‘하나님을 위하여’. 어느 곳에 있던지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양영자 감독. 삶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그를 향하신 계획을 느낄 수 있었다. <단양=김동근 기자>

▲ 탁구 국가대표 후보 선수, 코치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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