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의 족적과 더 큰 방향의 염원
상태바
25년의 족적과 더 큰 방향의 염원
  • 운영자
  • 승인 2013.01.29 23: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영엽 목사 / 기독교정화운동 대표

한 신문이 25년간 한길로 가면서 의의 싸움을 싸웠다고 한다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연합신문은 이 25년간의 빛나는 길을 은연히 유유자적으로 걸어 왔다. 보도에 있어서는 현실과의 타협을 불허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로 왔으며 교계의 여러 방면에 걸쳐 빈틈없이 알릴 것은 알리고 숨길 것은 숨겨 가면서 한길로 달려왔다. 자랑스럽고 고된 일을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문은 여론 조성과 함께 올바른 길을 교계에 제시해 주어야 하는데 편집진의 집요한 집념으로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 할 만큼 고결한 칼럼들을 실어냄으로써 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더 없이 고결하고 고매한 분들의 고견을 피력함으로써 성경적 사상에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금후로도 이 작업은 더 속도를 가할 것으로 믿는다.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지만 얼마나 성경 중심한 의견인지 분별해 가면서 조성 할 때에 한국 교회에 큰 덕을 끼치리라 믿는다.

뿐만 아니라 신문은 의견 조정의 일도 하게 된다. 잘못된 의견을 조성하면 교회가 고난을 받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연합신문은 중립적 입장에서 항상 공정하고 성경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한국 교회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 왔다. 앞으로도 같은 길을 견지하리라 믿는다.

뿐만 아니라 신문은 여러 가지 면에서 교회에 지식도 전달하여야 한다. 새로운 지식, 옛것도 온고이지신의 정신으로 끊임없이 새롭게 전달할 때에 교회는 고마워 할 것이다. 또한 교회는 신문에서 흥미도 바란다. 너무 무미건조한 신문은 외면을 당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연합신문은 새롭고 흥미진진한 사실들을 내 놓음으로써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줄로 알고 있다.

그러나 주마가편의 의미에서 몇 가지 소망하는 바를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목회에 관한 상세한 보도는 한국 교회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한국 교회가 진정 목마르게 기다리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신문은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교회가 바라는 것은 한시도 빠짐없는 교회의 부흥이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부흥하는가의 문제는 평범하면서도 끊임없이 교역자를 괴롭히는 문제이다. 취재기자나 편집부에서 목회의 경험이 없으면 참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교회문제를 개략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심층적인 면에서 부흥의 방도를 진단하고 보도해서 알리면 얼마든지 긴요한 알림거리가 많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심방의 문제만 하더라도 심방의 방법, 때, 적절한 성경구절의 응용, 예배의 환경 등 심방의 일반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심방 할 때에 심방자가 상담까지 할 수만 있다면 더 좋은 부흥의 원인이 어디 있겠는가? 실제로 본 교회에서는 전도사들이 상대방의 깊은 상처나 영적 괴로움을 진단하여 치료하는 것을 일반화 하고 있다. 이런 일은 깊고 인내스런 기도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영성의 문제이다. 영성이란 미묘한 것이어서 영성적 경험이 없는 분들이 더 영성 전문가가 되어서 큰 소리를 치는 것이 현재의 교회의 세태이다. 영성의 문제 특히 기독교의 영성문제를 심도있게 연구하고 검토하고 분별해야 한다. 여기에는 우선 성령신학의 올바른 발전이 필요하고 경험적 정리가 필요하고 성경적 입장의 견지가 필요하다.

금후 영성의 문제는 성경적, 교리적, 신학적, 교회사적, 경험적, 비교종교론적, 오순절적(비교단신학) 검토가 이루어지면서 발전 한다면 거의 하자가 없는 영성의 발전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한국 교회는 이런 영성적 발전이 필요하다.

이제 기독교연합신문이 그 동안 큰 족적을 남기면서 발전을 해 왔지만 더 큰 영적 야망과 뜻을 품어 한국 교회에 큰 부흥을 가져오는 신문이 되기를 바라마지 안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