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동화] “풍금소리에 맞춰 목청껏 찬양을 부르던 시절이 있었지”
상태바
[신년동화] “풍금소리에 맞춰 목청껏 찬양을 부르던 시절이 있었지”
  • 운영자
  • 승인 2013.01.02 11: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치미 국수 / 박경희

아내의 신경질을 피해 집을 나선다. 플랫 홈 안까지 눈발이 흩날린다. 전철이 오려면 10여 분 남았다. 나는 운길산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봄날 떠밀리듯 회사를 나온 이후, 수시로 중앙선을 탔기에 전철 시간표까지 줄줄 외고 있다. 칼바람에 실려 오는 눈발이 제법 굵다. 나는 털장갑 낀 손을 비비며 선로 위에 쌓이는 눈을 본다.

‘눈 쌓인 겨울 산을 오르는 건 자살 행위 아닐까?’

두렵기도 하고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방 안에 앉아 아내의 눈치를 보느니 차라리 눈 세례를 받으며 걷는 게 낫다. 눈길에 빠져 죽더라도 가자.

거대한 몸집을 이끈 전철이 도둑처럼 조용히 들어오고 있다. 나는 전철을 향해 구십 도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를 한다. 만세 삼 창 부르듯 큰 목소리로 내 마음을 전하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철 안으로 들어서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나를 흘끔거린다. 미친 놈 아닌가? 싶은 얼굴들이지만 상관없다. 고마운 것을 고맙다고 말할 뿐이다. 백수인 내게 중앙선 전철은 피난처나 다름없다. 중앙선만 타면 검단산, 팔봉산, 운길산, 칠읍산, 용문산까지 연결된다.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어디든 오를 수 있는 산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만약 내가 중앙선을 몰랐다면, 명퇴 당한 후 무한대로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나는 휴지통에서 주운 신문을 든 채 두리번거린다. 눈 내리는 날임에도 빈자리가 없다. 한 겨울에도 이토록 사람이 많을 걸 보면, 나처럼 백수가 많은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머리에 살구꽃이 핀 사람이 꽤 눈에 띈다. 왠지 동질감이 느껴진다.

비록 중소기업의 만년 부장이긴 했지만, 나름 만족했다. 나는 일 년 전 만 해도 지금의 삶을 상상조차 못했었다. 실은 몇 년은 더 현직에 있을 줄 알았다. 새파란 후배 놈이 치고 올라오는 바람에 밀려날 줄 알았더라면 지금처럼 암담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내는 나보다 충격이 더 큰 것 같았다. 매달 통장으로 들어오던 월급이 끊긴 탓일까. 조석으로 기분이 바뀌는가 하면 히스테리까지 늘었다. 실직한 나를 위로한답시고 별식을 했다가도 신경질적으로 상을 치웠다. 무엇보다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걸 못 견뎌 했다. 아내가 옅은 한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이 오그라들었다. 그 때마다 나는 슬그머니 집을 나와 무작정 걸었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걸으며 시간을 죽였다. 그 때 내게 오아시스가 되어 준 것은 신문에 난 한 토막의 기사였다.

‘중앙선 전철 개통, 은퇴자들의 천국’ 이라는 문구와 함께 전철 노선이 실렸다. 어느 역이든 산과 연결된 중앙선은 은퇴자들의 전용차나 다름없다는 내용이었다. 비상구를 찾은 느낌이랄까. 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날개를 단 것 같았다. 나는 그 날로 신문을 접어 든 채, 등산용품을 사러 매장을 찾았다.

그런 나를 아내는 또 못마땅해 했다. 아내는 산보다는 일자리를 더 원했다.

“정말 답답하네. 산에 간다고 누가 당신에게 일자리를 준대? 뭔가 새 일을 시작해야 되는 거 아니냐구!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백수로 살 작정 아니면……고흥에 내려 가 농사라도 지으라구. 제발!”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아내가 반말로 다그쳤다. 아내의 말이 비수처럼 내 가슴을 찔렀다. 나의 무능력이 아내를 변하게 만든 것 같아 괴롭다. 다소 까칠하긴 했지만 사람 속을 긁어대는 여자는 아니었다. 거기다 요즘은 이상한 행동마저 한다. 불면증이라고 불을 환히 켜놓은 채, 들락거리는가 하면 온몸에 열이 난다며 웃통까지 벗어 던진다. 어느 때는 3박 4일간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내게 밥 줄 생각조차 않는다.

허기에 지쳐 라면을 끓여 먹긴 하지만 울컥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결혼 한 이래 단 한 번도 쉬어 보지 못한 내가 백수가 되었다고 그토록 괄시를 하다니. 나라고 마냥 놀기만 한 건 아니다. 인터넷 사이트는 물론 정부 기관에서 하는 일자리라도 얻으려 기웃거려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나 같이 완전 노인도, 그렇다고 중년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는 설 자리가 없다. 솔직히 귀농에 대해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대로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들끓는 내 속도 모른 채, 다그치는 아내가 야속하다. 그나마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은 자연 뿐이다. 오죽하면 내가 말 못하는 전철을 향해 절을 하겠는가?

팔당역을 지났는데도 사람들은 일어 설 기미가 없다. 다리가 몹시 뻐근하다. 눈이 피곤해 선반에 신문을 올려놓고 밖을 내다본다. 차창 밖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앙상한 겨울나무에 핀 눈꽃이 환상적이다. 꽁꽁 언 강물을 보니 지칠 줄 모르고 썰매를 탔던 유년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창밖의 자연을 보는 재미에 나는 출근하듯 전철을 타는지도 모른다.

운길산 역에 내렸는데도 여전히 눈이 내린다. 산을 올려다보니 하얀 병풍을 두른 것 같다. 오를 수 있을까. 또 망설여진다. 그래도 되돌아갈 수는 없다. 가야만 한다. 알 수 없는 오기로 주먹을 쥔다.

‘걷다 보면 정상에 다다르겠지. 그러다보면 시간은 갈 테고…….가자. 천천히.’

스스로를 달래며 발길을 재촉한다. 역을 벗어나니 하얀 눈 속에 잠긴 마을이 나타난다. 불현듯 뛰놀던 고향산천이 그립다. 눈 오는 날이면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고요했던 마을. 큰 진돗개가 날 보고 짖지도 않는다. 조금 걷다보니 작은 예배당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종탑 위의 십자가를 올려다본다. 십자가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도시로 나오기 전까지 다니던 오두막 교회가 생각난다.

‘장작불 활활 타오르던 난롯가에서 성경을 외웠었지. 풍금 소리에 맞춰 목청껏 찬양도 부르고…….’ 나도 모르게 콧등이 찡해온다. 주님은 당신을 잊고 살아 온 나를 기억 할까?

갑자기 전화선 너머 어머니의 걸쭉한 사투리가 생각난다.

“난 자네가 반드시 돌아 올 거라 믿제. 그 믿음으로 자네 이름으로 십일조를 드린 것이제. 그란깨 주님 앞으로 어서 돌아와야 혀. 허벌나게 돌아 댕기지 말구 고향으로 내려 오랑게. 남들은 특작물 해서 돈 번다고 난린데, 우린 조상 대대로 내려 온 전답 남 빌려주고 이게 뭐당가.”

외아들인 나를 꼭 ‘자네’ 라고 칭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엔 절절함이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교회 갖다 줄 돈으로 설렁탕 한 그릇이라도 더 사 드시라고 통박을 주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머니가 드린 헌금이 나를 위한 보험처럼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나는 옛 생각을 접고 다시 산을 향해 걸었다. 아이젠도 발에 차고 지팡이도 짚었지만 미끄러웠다. 운길산까지 오르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았다. 나는 수종사까지만 올라 차 한 잔 마시고 내려 올 참이었다. 다행히 내 뒤를 따라오는 연인이 있어 마음이 놓였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온몸에 엔도르핀이 돌고 발에 열이 난다. 내 안에 가득 찬 우울의 껍질이 벗겨지는 것 같다. 이 맛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내가 산을 찾는지도 모른다.

산중턱쯤 오르자 숨이 턱에 차오른다. 잠시 서서 두물머리를 바라본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가 되는 것이 신비롭다던 아내의 말이 생각난다. 젊었을 때는 그토록 감성도 풍부하고 풋풋하던 아내가 어쩌다 지금은 메마른 사막처럼 변한 것인지. 묻고 싶은 심정으로 멀리 강물을 바라본다.

찬바람이 불자 한기가 든다. 나는 얼른 일어나 언덕을 향해 오른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곤두박질을 친 것은 찰나였다. 발을 헛디딘 것 같다. 눈썰매를 타는 것처럼 하염없이 미끄러졌다. 대낮임에도 눈앞이 캄캄했다. 한참을 미끄러진 뒤, 큰 돌멩이에 걸려 고꾸라지고 만다. 엉치뼈가 아파 정신을 차리려 안간힘을 썼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살을 에는 듯 한 통증에 온몸을 뒤튼다. 죽음의 사신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뒤쫓아 오던 연인들이 달려 와 나를 부축하려 애쓰지만 꼼짝 할 수가 없다. 한동안 눈 위에 있었더니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이앙이앙, 신경질적으로 울부짖는 구급차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온몸이 기브스 상태라 로봇이 된 느낌이다. 다리는 물론 팔까지 결박을 당한 듯 부자연스럽다. 의사 말에 의하면 엉치뼈는 물론 양팔과 무릎 관절에 인대까지 심하게 손상을 입었다고 한다. 나는 골절상을 입는 것이 이토록 불편하고 힘든 줄 몰랐다. 혼자서는 밥은 물론 이빨조차 닦을 수 없으니 꼼짝없이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나는 소변이 마려 두리번거린다. 아내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설마 도망간 건 아니겠지.

“아까, 잠들었을 때 집에 잠깐 다녀온다고 나갔수. 오줌통 비워 드려?”

옆에 누워있는 택시 운전사 마누라가 반말 투로 묻는다. 비위가 상해 일부러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린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녀석도 갓 입사한 직장일이 바쁘다며 코빼기도 안 보인다. 그저 모든 게 섭섭하고 허망할 뿐이다. 그동안 살아 온 내 인생이 고작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가. 이럴 때는 미친 척 자는 게 최고다. 나는 억지로라도 잠들기 위해 최면을 건다.

“참, 팔자 좋은 양반이야. 낮이고 밤이고 잠만 자니……. 일어나 운동을 해야 빨리 회복되지요…….우리 오래 살아야 되잖아요.”

언제 들어왔는지 아내가 내 곁에 앉아 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 쉰다. 아내의 목소리에 이상하게 물기가 묻어있다. 나는 뭔가 잘못 먹은 게 아닌가 싶어 멍하니 아내를 바라본다. 오랜만에 화장한 아내의 얼굴이 화사하다. 아내가 집에서 가져 온 분홍 보자기를 푼다. 그리곤 음식과 그릇을 주섬주섬 내놓는다. 마치 소풍 나온 여자 같다.

“당신이 좋아하는 동치미 국수예요. 맛있게 먹고 어서 일어나요. 그동안 미…….안…….”

“무슨 일 있어? 당신?”

나는 뭔가에 홀린 것 같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토록 동치미 국수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도 들은 척도 않던 사람이 왜 갑자기 돌변한 것일까.

“실은 여보…….”

아내는 옆에 있는 택시 운전수 마누라의 눈치가 보이는지, 조심스럽게 커튼 줄을 잡아당긴다. 어설프긴 하지만 우리만의 작은 공간이 생겨 아늑하다. 아내가 신혼 시절의 풋사과 같은 얼굴로 내게 속삭인다.

“그동안 내가 폐경기우울증이 심했던 것 같아요. 당신 모르죠? 여자들이 폐경일 경우 느끼는 그 복잡 미묘한 감정 말예요. 이제 더는 여자가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스트레스로 먹기만 하니 살은 찌고. 허망했어요. 거기다 당신까지 덜컥 실직을 했으니 내가 살맛이 낫겠어요? 그래도 그동안 내가 너무 못 되게 굴어서 미안해요.”

“그런데 왜 갑자기 변했어? 의사가 나 죽을병이라도 걸렸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며칠 전, 뇌 촬영을 한 것이 잘못 된 건가? 아내는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부지런히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기 시작한다.

“자, 이거나 먹어요. 당신 동치미 국수 먹고 싶다고 노래 불렀잖아. 금방 삶은 국수니까 쫀득할 거예요.” 아내는 맛깔스런 동치미 국수를 건네며 독백처럼 속내를 털어 놓았다.

“당신, 꼼짝 않고 누워 있는 걸 보니 정신이 퍼뜩 나더라고요. 만약 넘어지면서 뇌진탕이라도 일으켰더라면……. 당신 응급차에 실려 오는 걸 보는 순간, 폐경 같은 건 아무 문제도 아니더라고요. 여자라면 누구나 겪는 건데 싶고……. 당신 건강이 최고예요.”

아뿔싸. 나는 아내의 몸에 그토록 큰 변화가 있다는 걸 몰랐다. 나는 괜시리 미안해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아내가 소녀처럼 수줍은 듯 손을 뺀 뒤, 얼음 동동 뜬 동치미 국물에 면을 넣는다. 그리곤 내게 젓가락 위에 듬뿍 올린 국수를 권한다. 제비 새끼마냥 입을 크게 벌려 국수를 먹으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린다. 어머니는 다짜고짜 큰 목소리로 외친다.

“엉치뼈 부러진 건 좀 어떤 겨? 암튼 얼릉 일어나랑깨. 오늘 농협에 가서 특작물 키울 귀농자 명단에 자네 이름 올려났으닝깨. 농사지면서 에미 다니는 교회에 같이 나가면 을마나 좋당가. 이 에미 소원잉게…….”

어머니는 당신 말만 해 놓고 툭, 전화를 끊었다. 아내는 젓가락으로 돌돌 만 국수를 든 채, 얼빠진 듯 서 있는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무래도 고향으로 내려가야 할 것 같아!”

박경희 소설가

극동방송 간판 프로그램의 하나인 <김혜자와 차 한 잔을>의 원고를 18년 동안 썼으며, 2006년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의‘한국방송작가상’을 수상했다.

청소년 소설집 <<김학철통일빵집>>뜨인돌 출판사, 《우리의 소원은 통일》홍성사 출판사,《분홍벽돌집》 다른 출판사, 《엄마는 감자꽃 향기》강같은 평화 출판사,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출판사 <천국을 수놓는 작은 손수건>> 평단 문화사 그 외 다수의 책을 발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