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예배’(追悼禮拜)는 ‘추모일 예배’(追慕日禮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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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예배’(追悼禮拜)는 ‘추모일 예배’(追慕日禮拜)로
  • 승인 2002.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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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는 먼 옛날부터 조상신을 섬겨온 것과 유교적 풍습에 바탕을 둔 제의 문화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래서 사람이 별세한 상사(喪事)가 발생하면 이에 따른 제례의식과 후손들이 별세한 조상의 혼령을 섬기는 관습이 있다.

이 관습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고인의 기일(忌日)을 ‘추도일’(追悼日)이라 하여 신학적인 검증이 없이 ‘추도예배’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 예배가 신앙정신에 부합한지의 여부는 둘째로 하고 우선 이 용어 자체가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이 ‘추도’라는 말은 “죽은 이를 생각하여 슬퍼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렇다면 교인의 신분으로 별세하여 그의 영혼이 하나님 나라로 간 것인데 “별세한 날”(기일)을 1년 주기로 고인을 생각하여 슬퍼만 해야 하는가? 그것이 초상(初喪)이라면 고인의 생존시에 동고동락하던 골육의 정리로 볼 때 비통하기 그지 없을 것이니 슬퍼하고 애도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성경에도 인간의 죽음 앞에서 애곡과 애도한 사례가 구약에 나타나 있다. “아브넬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그의 무덤에서 왕과 백성들이 슬피 울었고”(삼하3:32) “죽은 사람을 무덤에 안장할 때 슬피 울었으며”(왕상13:29-30, 렘22:18, 34:5) 예레미야는 “요시아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고 남녀들이 슬피 울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초상(初喪)이 아닌 기일(忌日)을 자손들이 ‘제사일’로 기억하면서 ‘추도예배’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인가? 원래 ‘제사’란 “신령에게 음식을 차려놓고 정성을 나타내는 의식을 말하는 것”이기에 기독교는 우상숭배적 제례의식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추도예배’는 냉정하게 보아 기독교적 사상의 근거와 신학적 검증을 받지 못한 교인의 임의(任意)적인 선택의 산물로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 ‘추도’라는 용어의 문제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추도’는 “죽은 이를 슬퍼한다”는 의미로 볼 때 별세의 당시를 지나 세월이 흘러간 즈음에 와서 늘 슬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추도’가 아닌 ‘추모’(追慕)가 되어야 한다. 이 ‘추모’는 “죽은 이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사모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추모일”이 되어야 한다. 둘째, ‘추도예배’라는 말에는 원리적 부적합성이 있다. 모든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이 예배의 주된 주제인데 이 주제를 ‘추도’로 하거나 목적시 되는 용어를 취하는 것은 복음적이지 못하다.

그렇다면 ‘추도예배’는 ‘추모일 예배’(追慕日禮拜)로 바꾸어야 한다. 이는 “추모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며 이 ‘추모일’을 예배의 상황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예배는 예배자체의 온전성을 나타내어야 옳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기독교가 조상의 기일을 이교적인 제사정신의 간접성을 담고 예배의식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옳으냐의 문제이다.

예수 믿고 천국간 사람의 별세한 날을 제도화 하여 그 날을 기념하여 예배하는 행위가 성경적으로 떳떳한 것인지 더 연구할 과제는 남아 있다고 본다. 다만 별세자의 영혼이 천국은 갔지만 이 땅에서 혈연으로 함께 살던 모습을 회상하고 그리워하며 사모할 수 있기 때문에 고인의 기일을 ‘추모일’로 하여 생존시의 남긴 신앙의 자취와 교훈을 되새기며 자손들이 한 혈통의 소속감을 가지고 서로를 위로 격려할 기회로 삼는 것은 윤리적인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조상의 기일’을 ‘제사날’이나 ‘추도일’이 아닌 ‘추모일’로 하고 ‘추모일 예배’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정절도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추도예배’는 ‘추모일 예배’로 바꾸기를 제안한다.

김석한(기독신학 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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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2021-03-27 17:38:31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