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아름다운 은퇴’ 이수중앙교회 박원근 목사
상태바
[특별대담] ‘아름다운 은퇴’ 이수중앙교회 박원근 목사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2.11.15 15: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의 가치가 그리스도의 자리를 점령한 시대… 눈물로 참회합니다”

65세 조기은퇴 자원, 전별금은 장학금으로 내놓고 아내와 시신기증 서약
오랜 목회 사역, 큰 성장은 못했지만 기독교 정체성 올곧게 지켜내 보람

교단 총회장을 지냈으면서도 억대의 전별금 없이 빈손으로 교회를 떠난 목회자가 있다. 지난 10일 방배2동에 위치한 이수중앙교회에서 열린 특별한 은퇴식의 주인공은 바로 박원근 목사였다.
개척 후 38년을 몸담아온 교회를 떠나는 일이 쉽지 않았을 법도 한데, 그는 가져가는 것보다 남기는 것이 더 많았다. 조기은퇴를 결정하면서 5년 이라는 임기를 남겼고 후학들이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며 장학금을 남겼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과 아내의 시신과 각막을 기증하며 죽음 뒤에도 나눔을 이어가도록 배려했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은퇴예배에서 순서자들은 저마다 긴 격려를 전했지만 정작 은퇴하는 박원근 목사의 인사는 짧았다. “오늘날 목회자의 잘못으로 교회가 세상을 구원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걱정을 주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며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목사로 불러주신 하나님 앞에 배교자가 된 심정”이라며 “종교의 거룩한 가치가 비난받는 세상에 맞서 싸우지도 못하고 자원 은퇴하는 자신이 한없이 밉다”고 고개를 숙였다. 혼자만의 잘못도 아닌데, 그는 한국 교회 목회자들을 대신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은퇴로 1기 사역을 마쳤지만 앞으로 농촌 선교사로 2기 사역을 시작하겠다는 박원근 목사. 자신의 뒤를 이어 교단 총회장들이 은퇴와 함께 가진 것을 내려놓고 섬기는 ‘운동(movement)’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은퇴와 함께 남긴 ‘너 자신을 혁명하라’라는 책은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자서전인 동시에 한국 교회의 신앙참회록이자, 미래의 꿈을 담은 청사진이었다. 박원근 목사에게서 은퇴 후 사역과 한국 교회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38년 개척사역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그간의 소회를 말씀해주시지요?

목사로서 살아온 시간이 41년입니다. 군목으로 3년, 이수중앙교회에서 38년이지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많이 받은 것이 확실한데, 그저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이 앞섭니다. ‘너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대로 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하셨는데 그 길도 가지 못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느 것 하나 지키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교훈, 그 분의 영과 생명의 거룩한 가치로 세상을 구원하기는커녕 세상의 속된 가치들이 교회의 거룩한 자리를 점령하고 우상이 되도록 하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를 않습니다. 배교자가 된 심정입니다. 여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목사님께서는 목회자가 기득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늘 주장해오셨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의 모습과 목회자의 모습에서 반드시 고쳐야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목사가 자신의 기득권을 만드는 일에 너무 열심입니다. 만들어 놓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며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집착이 대단합니다. 너무나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워요. 예수님은 물질과 기적, 권력에 의지하고 기대는 일을 사단의 유혹이라고 물리치셨는데, 오늘의 목회자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선교를 하려고 하고, 그것을 축복이라고 즐기려 하기 때문에 교회가 세속화되고 쉽게 사단의 유혹에 빠져들게 됩니다. 오늘의 교회는 주를 위해서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하고, 가난하게 되는 것이 상급이요, 축복이라는 기독교 본래의 자리를 속히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박원근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을 지냈다. 교단 총회장을 맡을 당시 그는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의 급여를 자발적으로 삭감했다. 총회 사역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교회 이름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자신의 급여로 충당하기 위함이었다. 2017년에 만 70세 은퇴가 가능했지만 그는 지난 2010년 당회에 사의를 표했다. 그리고 올 1월부터 후임 박정일 목사에게 목회를 맡겼다. 은퇴금을 전혀 안 받은 것은 아니다. 200만원 씩 38개월 치를 받았다. 그 중 십일조를 뗀 후 일부를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도서구입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장서 중 교재로 사용할만한 500권을 추려 도서관에 기증했다. 총회장은 권력의 자리가 아니라는 그의 평소 생각과 은퇴는 사역을 재물로 남기고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소신을 읽을 수 있는 실천이었다.

# 이수중앙교회 목회 사역에서 가장 감사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저 역시 교회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목회자였습니다. 기도하며 좋은 설교를 하려고 애썼고 전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크게 성장하지 못했어요. 장년 출석교인 300명을 턱걸이 하다가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결국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덜 성장한 대신에 기독교의 정체성을 올곧게 지켜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0년 안식년을 맞아 1년 동안 서구교회들을 지켜보면서 교인들이 하나님과의 절대성이 약화되고 교회와 교인 상호간에 애정과 열정이 식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탐욕, 즉 주님과 교인의 상호간 사랑의 결핍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후 은퇴할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목회를 해왔습니다.

# 은퇴 후 어떤 사역을 하시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책에서 밝힌 것처럼 저는 일찍이 농촌을 위해 선교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지난 25년 동안 우리 농촌은 UR, WTO, FTA를 겪으면서 파산, 임종 직전까지 몰려 있습니다. 지금 서울에서 3천원 가까이 가는 최상품 배추 한 포기가 시골에서는 700원 밖에 받지 못합니다. 대형마트의 횡포에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착취당하고 있습니다. 은퇴 후 제가 할 일은 생산자와 소비자 협동조합을 만들어 농촌을 살리고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장 총회와 함께 유기농 시범단지를 만들어 농민들의 권익증진을 위해 일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원근 목사는 은퇴를 앞두고 ‘너 자신을 혁명하라’(대한기독교서회 간)라는 책을 펴냈다. ‘지금까지 내가 혁신되지 못했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박 목사는 “목사는 교인들을 가르치고 설교하지만 자신에게 설교하지 않는다. 나는 문제없고, 잘하고 있고 의롭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정작 말씀과 설교, 회개의 사각지대에 자신을 비롯한 목회자들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40년 목회를 마치면서 기이한 현상도 발견했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변화시켜버렸다는 것. 교회의 거룩한 가치들은 온데간데없고, 세속의 가치들이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박 목사는 ‘혁명’을 화두로 삼았다. ‘너 자신을 혁명하라’는 박 목사의 회고 속에서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삶을 전하고 있다. 은퇴를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는 목사들의 마음, 자신의 혁명의 대상이 아니라는 헛된 오만, 광야의 인생에 대한 권고와 농촌목회의 비전 등이 담겨 있다. 박 목사는 이 책을 통해 젊은 목사들에겐 목회의 본질과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다시금 점검하게 만들고, 은퇴를 앞둔 목회자에겐 도전과 용기를 주고 있다.

# 한국 교회가 신뢰를 잃고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을만큼 변질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셨습니다. 목사님이 남긴 말씀 중 수도원 전통을 교회가 회복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맞습니다. 저는 오늘의 교회가 수도원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믿는 목사입니다. 지금 교회가 당면한 최대 위기는 사람이 많이 모이고, 예산이 많고, 세속적인 영향력을 가진 대교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교회의 타락을 가져온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도원의 영성을 강조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거기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회는 자체 정화능력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교회는 당회장만 되어도 ‘사판(事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에는 수도원의 수사들, 신학교 선생님들이 ‘이판(理判)’ 역할을 해주어 타락한 교회가 정화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신학교 교수나 기도원 어디에 가도 이판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수도원 영성의 회복이 절실히 요구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자신을 비우고 예수의 영성을 채워 그 분의 인격을 닮아가고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기 위함입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 교회 병폐의 대부분이 목사들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성도들을 생각하면 늘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을 드린다면 이 세상 나라의 것을 구하고 그것을 얻으려는 노력에 앞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주신 유일한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는 이 계명을 실천해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지난 10일 만 65세로 조기은퇴한 박원근 목사
● 박원근 목사는…
1947년 전북 익산 출생으로 한국신학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한신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4년 육군 군목 대위로 전역했으며 같은 해 이수중앙교회를 개척했다.

1975년 이화여대 강사로 나섰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실행위원, 한신대 이사 등을 맡으며 에큐메니칼운동에도 참여했다. 2005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제90회 총회장으로 섬겼고, 저서로는 ‘대망의 메시아’, ‘복음과 선교’, ‘목적을 위해 사는 신앙인’ 등 10여 권을 남겼다. 2010년 자원은퇴를 당회에 보고하고, 2012년 11월 10일 만 65세로 조기은퇴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