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과 사단의 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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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예루살렘과 사단의 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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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8.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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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지지한 영성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15) - 안용준 목사(목원대학교 겸임교수)

새 예루살렘과 사단의 결박 (요한계시록 20:1~22:21)

우리 인생의 목적지는 어디가 되어야 하는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새 예루살렘’이어야 한다. 그곳에선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히 지속된다. 그 성 전체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가 된다. 이 사실은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존귀한 자로 인정하고 계신지를 확인케 한다.

뒤러는 이 그림에서 요한의 환상을 그려냄으로 해답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 천사가 성령으로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 새 예루살렘을 보이는 장면이 화면 위편에 나온다. 요한은 어린양의 신부처럼 단장한 새 예루살렘의 모습에 넋을 잃고 있다. 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영적 신부가 된다.
놀랍게도 뒤러는 요한의 환상을 하늘에서 내려온 지상의 예루살렘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새 예루살렘을 사람이 죽어가게 될 천당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에 완성될 교회의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지막 날에 완성될 주님의 약속이 죽어서 얻어질 뿐만 아니라 살아서도 맛보고 누려야 할 것으로 뒤러는 생각했다. 당시 종교적 지성적 예술적 어둠 속에서 신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이 없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가 얼마나 고대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사실 새 예루살렘은 혈통이나 사회적 지위 뿐만이 아니라 민족적인 환경까지도 초월하여 하나님의 우주적인 백성이라는 온전한 정체성을 갖게 되는 곳이다. 이것은 주님의 섭리 가운데 사람들이 그렇게도 갈망하는 교회가 완성될 것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마치 중세의 도시처럼 교회와 크고 높은 성곽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다. 그곳이 사도들과 지파들의 축복이 완벽하고 안전하게 이루어진 장소임을 나타낸다. 주님께서 교회를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시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시작된 생명수 강은 예루살렘 성으로 흐르고 있다.

그림 아래편에는 전혀 다른 성격의 드라마가 전개되고 있다. 다른 천사가 큰 쇠사슬로 사탄인 용을 붙들어 무저갱에 여유 있게 집어넣고 있다. 무저갱은 악한 영들 가두는 지하 감옥이다. 이전에 하늘에서 떨어진 용은 이제 땅에서 컴컴한 무저갱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것이다. 무저갱 입구에서 안 떨어지려고 발버둥치는 용의 몸동작과 표정은 자신의 완전한 패배를 인정하고 있다. 일천 년 동안 가둘 맨홀 뚜껑처럼 생긴 둥근 쇠 문는 용의 처절한 운명을 대변한다.

천사는 또한 그 무저갱의 열쇠를 쥐고 있다. 쇠사슬과 함께 이 열쇠는 감옥의 기능을 수행하는 무저갱의 의미를 더욱 강화시킨다. 뒤러는 이 그림을 완성한 이후 대표작인 <4명의 사도>(1526)에서는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베드로를 표현하였다. 여기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신 천국열쇠는 천국의 입장을 허용하는 권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천국의 문이 있듯이 천국열쇠가 있는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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