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관심’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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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관심’이죠”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2.08.20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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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 날씨 속에도 독거노인의 말벗 돼주는 김형숙 집사

연일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으로 사상 최고의 폭염이라는 뉴스가 계속됐던 올 여름.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에 노인들의 손에는 부채가 떠날 줄 모른다. 똑같은 더위지만 노인들에게 여름은 더 견디기 힘든 계절인가보다. 의학적으로 사람은 늙어가면서 땀구멍이 작아져 똑같은 날씨라도 연령대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고 한다. 쉽게 말해 노인들은 젊은이들보다 더위를 많이 타는 것이다. 하지만 노인들이 모여 있는 양로원이나 노인복지센터의 에어컨은 고요하기만 하다.

전력수급난과 비싼 전기세로 에어컨을 켤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 홀로 사는 노인들의 경우 문제는 더 크다. 에어컨이 있는 독거노인 가정은 극소수고 있다한들 비싼 전기세에 켤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보다 더욱 더위에 취약한 노인들. 폭염과 폭우를 마다않고 그들을 찾아다니며 말벗이 되어주는 고마운 사람이 있다.

# “어르신! 또 올게요”
다시 폭염이 찾아왔던 지난 17일 아침 여주군 천서리로 향했다. 시골에서 도시로 변모를 시도하고 있는 여주군. 덕분에 다른 지역보다 독거노인의 수는 월등히 많다. 게다가 드문드문 자리 잡은 곳에는 노인들이 홀로 집을 지키고 있었다.

여주 천서리 농협 앞에서 사회복지사 김형숙 집사를 만났다.

김 집사가 소속된 대신노인복지센터에서 노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는 크게 두 가지. 재가서비스와 재가노인지원서비스다. 재가서비스는 주간보호, 장기보호, 방문요양, 방문목욕 등으로 나뉘며 노인들이 일정액을 부담해야하는 서비스.

재가노인지원서비스는 영양식단(밑반찬 배달), 가사지원서비스, 목욕동행, 병원동행 등으로 나뉘며 기초수급, 차상위 계층, 독거노인일 경우 받아볼 수 있는 무료 서비스다. 그 중 실질적으로 많은 노인들이 혜택을 받고 있는 서비스가 바로 재가노인지원서비스. 대신노인복지센터에서는 약 80여 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봉사하고 있다.

▲ 차에 몸을 싣고 어디로 먼저 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김 집사.
김 집사의 차로 옮겨 타고 곧바로 노인들을 방문하기 위해 나섰다. 차량 뒷좌석에 놓인 밑반찬과 두유, 그리고 라면.

“오늘은 반찬 만드시는 분이 휴가라 라면이에요. 평소에는 반찬 챙겨다 드리는데… 그래도 빈손으로 가기 뭐하잖아요. 라면을 가져다 드려도 웃으시는 어르신들 뵈면 고맙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부지런히 달려 도착한 첫 집은 더운 날씨에도 습기가 가득한 구옥이었다. 라면 여섯 봉지를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김 집사의 뒤를 따랐다. 백발의 노인이 나와 함박웃음을 지으며 김 집사를 맞이한다.

▲ 치매에 걸린 어르신이 못내 걱정되는 김 집사.
“어르신, 몸은 좀 괜찮으셔? 어디 편찮으신 대는 없구? 밥은 드셨어? 오늘은 반찬 못 가져 와서 미안해요. 다음엔 맛있는 반찬 가져다줄게. 지난번 병원 다녀온 건 어떻게 되셨어요? 괜찮대?”

쉴 새 없이 늘어놓는 그녀의 질문이 귀찮을 만도 한데 연신 웃음 지으며 대답하는 노인. 문득 드는 생각은 ‘사람이 많이 그리웠구나’하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는 김 집사를 배웅하는 노인에게 딸을 마중 나온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르신! 또 올게요”

독거노인들의 집을 나설 때면 늘 똑같은 인사를 건네는 김 집사는 “자주 찾아보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인사하면 어르신들이 기뻐하시는 것 같다”며 웃었다.

# 할머니의 함박웃음
김 집사가 집안에 들어섰을 때 유독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기는 할머니.

“팀장! 보고 싶었어. 이 더운데 이렇게 매일 고생해서 어떻게 해.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건지 모르겠네.”

들어가서부터 나올 때까지 손을 꼭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할머니. 장기요양을 받는 덕에 매주 요양보호사가 들르고 있지만 할머니는 김 집사를 특별히 예뻐한다. 옆에 있는 요양보호사가 질투할 만큼.

“할머니 손 닳겠네! 닳겠어! 나도 그렇게 좀 예뻐해 주지!”

▲ 최성희 어르신과 맞잡은 손
요양보호사의 장난 섞인 질투에 할머니는 마냥 웃으셨다. 유독 김 집사를 예뻐하는 이유가 있냐고 묻자 “예뻐. 일도 착실히 잘하고, 싹싹하고. 그러니까 예뻐하지”라며 요양보호사의 눈치를 보신다. 따라들어간 집에는 선풍기 한 대가 가만히 돌아가고 있었다. 기와로 된 지붕은 내리쬐는 태양을 그대로 소화해 집 안은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아쉬워하시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김 집사는 “아무래도 저를 예뻐 해주시는 분에게 더 마음이 간다”며 “요즘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또 “얼마 전에는 혈압이 높아지셔서 119를 불렀었는데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며 할머니가 건강하시길 바랐다.

연세도 많으시고 더러는 병력도 가지고 계신 독거노인들을 돌보다 보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노인들의 임종을 지켜보는 일들도 생긴단다.

“저는 그런 경우는 없었는데, 어떤 선생님은 돌봐드리는 도중에 어르신이 돌아가신 거예요. 놀라기도 놀랐고, 처음이라 경황도 없었죠. 119에 신고부터 하고 보호자에게 연락을 했는데, 아무런 죄도 없는데 보호자에게 그렇게 미안하더라는 거예요. 이게 재가복지하면서 가장 힘든 점 같아요.”

▲ 김 집사를 특별히 예뻐하는 최성희 어르신. 김 집사만 보면 어르신 입가엔 웃음꽃이 핀다.

# 고마운 ‘어르신’
교회봉사에서 시작해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해 일하고 있는 김 집사. 그녀는 봉사의 계기를 부모님의 모습에서 찾는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봉사에 열심이신 부모님을 보면서 자랐어요.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교회에서 늘 헌신적으로 봉사하셨죠. 그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누군가를 돕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봉사요? 즐기는 거죠.”

얼마 전 폭염으로 노인들의 건강이 위험하다는 언론의 보도에 복지센터도 노인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다. 복지센터에 나오시는 노인들에게 단체교육도 하고, 거동이 힘드신 분들은 찾아뵙고 주의사항을 알려드렸다.

“시골에서 사시는 어르신들은 낮에 바깥에 잘 안 나오세요. 농사일도 새벽에 일찍 해두시고 낮에는 보통 낮잠을 주무세요. 제가 반찬을 들고 찾아뵐 때면 거의 주무시고 계세요. 그럼 반찬만 살짝 두고 나오는 거죠.”

적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노인들을 보면 지나치지 않고 오히려 퍼주는 김 집사. 그런 그녀는 노인들을 도우며 언제 가장 보람을 느낄까?

“어르신들이 기뻐하실 때가 가장 보람되죠. 한 번은 주변 식당에서 독거노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겠다는 거예요. 어르신들 모시고 막국수를 먹으러 갔는데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그 모습이 아직도 선해요. 또 편찮으시던 어르신께서 건강해지셨을 때, 그 때가 가장 보람된 것 같아요.”

▲ 더운 날씨에 반찬이 상할까 집을 비운 어르신을 기다리는 김 집사
마음을 쏟다보니 재밌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제가 냄새를 못 맡아요. 원래는 비위가 약했었는데, 냄새를 못 맡다보니까 행동들이 더 스스럼없어지는 거죠. 치매가 있으신 어르신이랑 같이 밥을 먹다가 어르신이 그대로 대변을 보신 거에요. 전 같았으면 못했을 텐데, 빨리 옷 갈아 입혀드리고 다시 같이 밥을 먹었어요. 또 한 번은, 제가 어르신들에게 뽀뽀를 잘 해드리거든요. 저는 사랑의 표현이었는데, 제 입의 세균이 어르신들에게 옮겨갈 수 있다며 센터장님이 ‘뽀뽀 금지령’을 내리시기도 했었어요.”

마지막 집으로 향했다.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컨테이너. 뜨거움을 견디다 못해 집주인 할아버지는 어딜 가셨는지 계시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리다 밑반찬이 상할까봐 냉장고에 넣어두고 나오는 김 집사. 그녀의 이마에 땀방울은 무엇보다 값지게 보였다.

# 주변 독거노인
지난 5월 보건복지부가 발표에 따르면 독거노인은 2000년 54만 명이었던 것이 올해 119만 명으로 2.2배 증가했다. 12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 그 만큼 우리 주위에도 홀로 살아가는 노인들이 많다는 반증이다. 주변에 있는 독거노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저희 집이 얼마 전 이사를 했어요. 집 앞에 노인들이 여러분 모여계시더라고요. 제가 이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하는 일이 그렇다보니 계속 기억에 남더라고요. 저도 그 분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몇 달이 지나고 먼저 가서 저를 소개하고 인사를 드리니까 좋아하시더라고요. 그 분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중이에요. 독거노인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냐고요? 관심이에요. 사소한 관심. 그런 관심들이 어르신들을 활짝 웃게 만들어요.”

누구나 지나가는 어려운 사람을 보면서 주머니 속의 동전을 만지작거렸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작은 액수라 선뜻 도와주지 못했던 기억. 용기가 부족해 사소한 도움도 망설였던 기억 말이다. 김 집사는 이렇게 권면한다.

“오늘은 용기를 내 홀로 앉아계신 어르신에게 먼저 말을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요? 손에 시원한 드링크제를 하나 사들고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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