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으로 뒤처진 로마는 헬라문화 유지·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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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으로 뒤처진 로마는 헬라문화 유지·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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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8.1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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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하 교수의 풀어쓰는 이야기 교회사 - (4)

                                         헬라-로마와의 관계

▲ 백석대 역사신학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2~24)는 말씀과 같이 헬라인들은 지혜를 추구하였다. 로마인들은 그것을 답습하였다.

그리스도교가 시작될 때는 헬라제국이 멸망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로마가 안정된 제국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마케도니아에서 일어나 인도지역까지 영토를 넓혔던 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전 356-323)이 죽은 후 헬라제국은 넷으로 분할되어 마케도니아 왕국과 왕조들(셀레우코스, 프톨레마이오스, 아탈리도스)을 형성했었는데, 기원전 146년 고린도가 로마군대에 의하여 점령되고 잔여 왕조들이 멸망하게 되면서 기원전 63년경에는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로마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로마제국을 형성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은 카이사르와 키케로이다. 카이사르는 군인으로써 갈리아까지 로마의 영토를 넓혀 제국을 확장하였고, 키케로는 문화와 사상적으로 뒤져 있던 로마인들에게 중기 플라톤 사상을 소개하여 제국으로서의 로마의 사상을 살찌웠던 중요인물이었다. 예수께서 탄생하여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이룰 때쯤에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기원전 27)를 얻는 옥타비아누스가 국가내란을 평정하고 안정된 로마제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교가 형성되어 선교된 곳이 로마제국 안에 국한되지는 않았지만, 통일된 로마제국 내에서 선교는 매우 효율적이었다. 제국이 문화발전의 통일성을 향하여 나아갔고, 정치, 군사, 로마법 등에 의하여 다양한 종족과 민족들을 포함하고 있던 제국을 통일시키고 있었다. 경제활동과 대도시를 연결해 주는 도로망은 지중해 연안의 평화와 활발한 무역을 가능하게 하였다. 민족과 사회계층간의 차이도 점차 좁힐 수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로마제국의 헬라제국 제압은 로마가 알렉산드로 대왕 이후 근동지역에 확산되었던 헬레니즘문화를 영향 받게 하는 기회이었다. 문화적으로 뒤떨어져 있던 로마는 헬라문화를 유지하고 권장하였다. 헬라어 중에 소아시아와 시리아지역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코이네어가 점차 널리 사용되었는데 로마제국의 서쪽지역까지 깊숙이 들어와 보편화되었다.

훗날 역사가들이 헬라화 영향력의 변화를 교부들의 헬라어 활용능력을 통하여 이야기 할 때 헬라어에 익숙한 암브로시우스, 헬라어를 고민하였던 아우구스티누스, 헬라어 사용능력이 없었던 레오 1세의 관계에서 로마제국이 다시 라틴화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구별할 정도이다. 4세기부터에서야 라틴적인 것이 로마제국에서 단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스도교가 시작할 때에는 매우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하였다. 로마제국으로 통합되면서 다신론과 황홀경, 헬라의 신비주의 등이 확산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나 페르시아로부터의 종교들도 순환되는 로마병사들에 의하여 로마제국 전역에 퍼져나갔다. 3세기에 이르러 시리아의 태양숭배가 로마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황제숭배사상도 발전하여 마지막 그리스도교의 박해인 디오크레치아누스 황제 때에 살아있는 황제를 신으로 섬기도록 강요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거부하자 박해가 절정에 다다르게 되었다. 로마제국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자 혼합종교의 현상들이 강하게 나타났다. 전통적인 목성숭배에서 유래한 주피터 신전이 이제 제우스를 섬기는 것과 동일시되기 시작하였다.

이미 기원전 6세기부터 철학의 비판은 백성들의 종교를 넘어서 지성인들 사이에서 종교적인 기능을 갖기도 하였다. 물론 견유학파는 백성들의 종교성에 비판을 가했고, 스토아주의자들은 범신론적인 성향들을 갖고 있어서 백성들과 거리를 두기도 하였다. 플라톤의 철학은 그리스도교가 시작할 때에 중기 플라톤 사상시기를 맞았고, 실제적으로 초기 그리스도교 사상형성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중기 플라톤 사상과 스토아 사상의 로고스 이해는 그리스도교 삼위일체 신앙고백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도인 이전의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컫는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의 중기 플라톤적인 사상에 영향 받은 구약성경 해석의 원리가 그리스도인들의 구약성경 해석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처음 4세기 동안 이러한 필로의 성경해석이 구약성경 해석의 지침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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