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입양인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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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입양인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 정민주 기자
  • 승인 2012.07.1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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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양인센터 뿌리의 집 원장, 김도현 목사

“친부모와 입양인들이 이별로 인해 겪는 고통을 생각한다면, 입양은 답이 아닙니다. ‘친생가족(친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한국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해외입양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이자 시민운동단체인 ‘뿌리의 집’. 그곳에서 9년째 사역을 하고 있는 김도현 목사(뿌리의 집 원장)가 꿈꾸는 사회는 ‘도움 받을 사람이 없는 사회’, ‘더 이상 입양을 안 가도 되는 사회’다.

김 목사가 이런 꿈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입양인들에게 시선을 돌려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 스위스에서 시작된 입양인과의 동거동락
때는 새문안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던 김 목사가 스위스개혁교회연맹의 요청으로 스위스의 한인들을 섬기게 된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한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는 것이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위스의 목회철학은 스위스 전역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 예수를 믿던 믿지 않던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김 목사는 이러한 스위스의 목회철학을 따라 베른과 제네바의 두 교회를 섬기면서도 스위스에 살고 있는 한인, 특히 1천여 명의 한국계 입양인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의 청년으로 깊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김 목사는 입양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의 아픔과 번민을 함께 나눴다. 그는 입양인들과 함께 김치를 만들고,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 여행을 하면서 친생가족을 찾아주는 등 전형적인 입양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운영했다.

“8년 동안 입양인들과 대화하고 마음을 나누면서 깨닫게 된 것은 입양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입양 후의 삶이 행복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친생모와 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입양인들은 자신이 행복 또는 불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친생모와의 결별’이 일생을 좌우하는 삶의 상처로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양인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한국의 친생모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고, 그는 ‘왜 이 사람들은 자기 아이를 키우지 못하고 입양을 보내게 됐을까?’에 대해 골몰하기 시작했다.

김 목사는 △한국 사회가 경제발전을 하고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하위층 여성이 점점 더 가난해지는 것 △가부장제라고 하는 남성우월주의 속에서 남성들이 부패하고 타락한 결과 △서양우월주의에 의한 미국과 유럽에 대한 환상 등이 우리나라 해외입양의 가장 큰 이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여성들은 끊이지 않는 빈곤 속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지 못하고, 가정을 책임지지 않는 남성들에 의해 아이를 포기하기에 이르렀으며, 아이를 입양 보낸 대부분의 여성들은 ‘미국이나 유럽에 가면 아이가 지금보다 행복할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언론에서 입양을 미화하고 입양의 성공사례만 보도하는 태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같이 미화된 입양인의 성공사례는 친생모에게 위로를 주는 일종의 신경안정제”라며 “입양인을 미화하는 언론의 태도는 현실을 알 수 없게 하고 문제를 고민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실제 입양인의 삶은 어떤 것일까? 김 목사는 “입양인의 삶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며 “입양인은 평균적으로 일반인보다 5배 높은 자살률과 마약중독률을 갖고 있으며 5배 낮은 가정형성률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입양을 보내는 친생모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웃으며 자신의 아이를 입양 보내는 사람은 없다는 것.

# 은혜를 나누는 마음, ‘뿌리의 집’ 세우다

이런 입양인들에게 자신이 받은 은혜를 나누는 이는 또 있었다. 자신의 집을 내어 뿌리의 집을 세운 경인여자대학의 명예총장 김길자 권사(새문안교회)가 바로 주인공이다.

김 권사는 새벽기도 중에 ‘내가 지금 잘 사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어떻게 하면 이 은혜를 사회와 더불어 나눌 수 있을까’하는 기도를 하게 됐다. 그러다 마침 한국에 살고 있는 입양인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잘 정리하면 이런 분들이 머물다 갈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김 목사는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열심히 잘 믿겠다고 하면서 경건한 모습으로 교회를 나가지만, 정작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며 “김 권사님은 30억이 넘는 집을 사회와 복음을 위해 나누셨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2003년 7월 문을 열게 된 뿌리의 집에는 해마다 300~400명의 입양인들이 방문한다. 그리고 점심시간이면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러 나라의  입양인들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한다. 직원들이 매일 돌아가면서 준비하는 점심 식사는 입양인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 김 목사가 추진한 일이다. 그는 특히 매년 추수감사절이면 입양들을 대접할 칠면조를 굽기 위해 꼬박 하룻밤을 샌다고 말했다.

김 목사가 추진한 일은 이 뿐만이 아니다. 입양인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는 통로가 되고, 그가 꿈꾸는 ‘도움 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 ‘미혼모가 스스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콘서트나 시 낭송회, 음악회 등을 통해 입양인들의 목소리가 사회를 울리고 입양에 대한 담론이 오가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미혼모 ‘정죄’ 아닌 ‘사랑’으로 돌봐야
뿌리의 집은 지난해부터 5월 11일 입양의 날이면 ‘싱글맘의 날 국제 컨퍼런스’를 진행하고 있다. 입양인의 문제에서 더 나아가 미혼모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이유는 국내외 입양아동의 90%가 미혼모의 아동이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대형 교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입양 사역에 뛰어들고 기독교인들이 입양의 전도사가 된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입양이 필요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친생가족 보호’”라며 “대형 교회들이 안목을 조금만 넓힌다면 싱글맘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한 김 목사는 “성경에 입양을 하라는 이야기는 없다”며 “성경에서 고아와 과부는 하나의 가족 단위이며, 함께 사랑으로 돌봐야 할 존재”라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 목사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인해 2015년이면 입양기관이 운영하는 미혼모의 집 17곳이 문을 닫게 됩니다. 한국 교회가 미혼모의 집을 운영하여, 미혼모를 ‘정죄’가 아닌 ‘사랑’으로 돌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또 “부모가 모두 있는 가정에서 아이를 출산하면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면서, 미혼모가 아이를 출산하면 입양기관에서 찾아와 생모가 아닌 입양기관의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한다”며 “이는 인권유린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병원에서 출생등록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후원 문의: 02-3210-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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