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권칼럼] 회개한 고흐가 작품보다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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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칼럼] 회개한 고흐가 작품보다 더 아름답다.
  • 허진권
  • 승인 2012.07.0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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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의 기독교 미술 간파하기(7)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화가는 단연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일 것이다. 작품세계 보다도 광기어린 생활, 특히 자신의 귀를 자른 일이나 정신 분열증으로 인한 정신 병원 생활과 마침내 권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더 유명하고 최근에는 그의 작품이 국제 미술품 경매에서 최고가 신기록을 수립하여 1천억원이 훨씬 넘는 비싼 화가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네델란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1살에 부모와 떨어져 기숙학교에 다니다가 가난으로 15세에 학교를 그만둔다. 16세부터 화랑에서 판화를 복제하여 판매하는 일을 하는 점원으로 근무하다 20세에 런던 지점에서 근무하며 짝사랑에 실패고 점차 신앙의 세계로 접어들게 되니 화랑에서 해고된다. 그 후 신학대학에 가려고 성경을 탐독하며 설교를 공부하였으나 신학교에 낙방을 하게 된다.

겨우 평신도 자격으로 전도활동만을 허락받고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전도활동에 전념하나 전도자로서의 품위를 상실하고 광적인 집착과 성격이란 이유로 전도사로서의 일도 지속 할 수 없게 된 1880년 27세의 고흐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하기로 작정한다. 그 후 죽을 때까지 고흐의 생활은 크리스챤의 모습보다는 오히려 안티 크리스챤의 모습, 글로 다 기록하기에 민망할 정도의 사생활로 가득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는 고흐가 죽기 1년 쯤 전에 그린 것이다. 이때의 고흐는 이미 고갱과의 관계로 자신의 귀를 자른 후 이며 정신 분열증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며 어쩌면 이해를 해서도 안 될 생활로 일관한 고흐다.


그래서 인지 필자는 이 작품과 1890년 죽기 바로 전쯤에 그린 오르세 교회를 그린 작품을 보면 평생을 신앙과 불신의 경계에서 불안하게 살아온 고흐가 마침내 아버지가 계신 고향집으로 돌아온 탕자처럼 회개하는 영혼을 보게 된다. 이 작품은 화면의 반 이상을 차지한 하늘, 그 우편에 매우 크게 배치된 그믐달과 별빛, 그리고 거대한 회오리 가 힘차게 요동하는 바로 밑에 보일락 말락 배치한 교회의 첨탑, 그 교회가 더 보이지 않도록 매우 어둡고 크게 배치된 삼나무로 구성된 작품이다.

필자는 바로 이 교회에 주목한다. 자세히 관찰을 하지 않으면 찾기 힘든 교회처럼 젊은 고흐는 은총가득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갈망하였으며 그에 도달하기 위하여 신학도의 꿈과 전도사의 길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당시 사회의 가치관과 관습에 쓰러지고 마침내 그림을 통하여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였으나 그 삶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끌었다. 그럼에도 고흐에게 떨어진 복음은 아주 늦게 싹이 났다. 그 복음은 고흐의 회개라는 싹이 되어 이 시대에 기독교 미술을 전공하고자하는 이들에게 간증한다.

최근 어느 신문의 사설에 1960년대 60만 명이던 우리나라의 개신교회 신도수가 1천만 명을 넘기는 데까지 부흥하였다가 최근에는 860만 명으로 줄어들게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그래도 필자는 복음의 씨를 받은 영혼은 언젠가는 돌아올 것임을 믿는다. 아니 꼭 돌아올 뿐만 아니라 먼 후대에게까지 간증할 것을 확신한다. 오늘도 아버지는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그 아들이 아버지 품을 찾은 것을 기뻐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허진권(목원대학교 기독교미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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