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하루…"온정의 손길만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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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한 하루…"온정의 손길만이 희망"
  • 승인 2002.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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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2백명, 피해액 5조5천억원, 도로, 교량 1천4백3십 개소 파괴…. 한반도를 강타했던 ‘루사’의 잔해다. 자연의 도전 앞에 너무도 무기력했던 사람들. 쏟아지는 비에 무너지는 산, 다리, 잠겨버린 집을 지켜보면서도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목숨은 건졌다는 안도감에 가쁜 숨을 고를 뿐이었다. 이기적인 욕망으로 자연을 무자비하게 훼손시킨 인간들에게 주는 경고가 아닐런지…

참혹한 수해현장과 이재민들의 안타깝고 애절한 심정들을 피부로 느끼기 위해 강릉으로 향했다. 시원스럽게 뚫린 영동고속도를 2시간 여 달렸을까. 강릉시민들의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듯 대관령터널 앞에서 갑작스럽게 안개가 심술을 부렸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차들이 기어가듯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난간이 붕괴돼 앙상해진 도로 덕분에 경찰의 수신호를 따라 조심스럽게 강릉시내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휴가철 형형색색의 현수막과 인파로 붐볐던 그 강릉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패인 도로, 희뿌연 황토바람, 땀으로 범벅이 된 자원봉사자들, 하얀 연기를 뿜으며 도심 곳곳을 누비는 소독차… 63년만에 강릉지역을 강타한 수마는 엄청난 아픔을 남기고 말았다.

강릉시내에서 가장 피해가 심했다던 강남동과 노암동일대. 강동면 쓰레기매립지 진입로가 끊어지는 바람에 모여든 쓰레기로 거대한 산을 이루었다. 쾌쾌한 냄새, 두텁게 쌓인 토사, 물에 잠겨 쓸 수 없는 물건들, 도로전체가 쓰레기처리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쓰레기 더미에서 쓸만한 물건들을 고르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수재민의 애절한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강원대학교, 총신대학교 등 대학생과 일반업체에서 자원봉사를 자청한 사람들의 따뜻한 온정이 답지했고 군장병들이 중장비를 동원해 원상복구에 나섰지만 암담한 현실에 복구는 요원한 일이 아닐까라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얼마나 많은 비가 왔을까. 강릉시 노암동 주사랑교회. 부임한 지 2주만에 엄청난 피해를 당한 한용상목사(42)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목사는 200ml 안팍으로 내릴 것이라는 기상대의 예보와는 달리 장대비가 계속 쏟아져 불안한 마음이 들긴했지만 ‘곧 그치겠지’라는 심정으로 새벽예배를 인도했다.

벽을 타고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바닥 타일들이 들썩이며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철 없는 아들 예진이는 물장난을 치며 좋아했지만 한목사 내외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집기를 옮기려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양의 물이 성전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집기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살아야겠다는 심정으로 교회를 빠져 나와야만 했다. 마을은 순식간에 잠겨버렸고 주민들은 언덕 위에서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한목사는 스피커 하나라도 건져보겠다는 안타까운 심정에 헤엄을 치며 교회 주위를 돌아 봤지만 어쩔수 없었다.

며칠을 봉고차안에서 새우잠을 자던 한목사는 물이 빠지고 교회를 다시 찾았다.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집기들, 발목까지 수북히 쌓인 진흙,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쓸어내도 쓸어내도 사라지지 않은 진흙을 맥없이 쳐다보며 한목사 가족은 한없이 울어야만 했다.

광양에서의 안정된 목회생활을 뒤로하고 강릉을 고집했던 것이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자원봉사자와 성도들의 도움으로 약간은 정리됐지만 제 모습을 찾으려면 아직 한 달 이상은 고생을 해야 할 것 같다.

한목사를 따라 임시숙소가 있는 노암초등학교를 찾았다. 마침 저녁식사 시간이라 배식구 앞에 늘어선 수재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밥, 김치, 국, 김 등 1식 3찬의 조촐해 보이는 이 한끼의 식사가 수재민들에게는 생명줄과 다름없었다.

한끼의 식사로 요기를 한 주민들은 흙투성이가 된 가구와 옷가지를 정리하고, 집 주변을 청소하면서 재생의 마음을 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시숙소의 환경은 열악했다. 나무바닥에서는 습기가 올라오고 이불이 없어 새벽녘에는 한기와 싸워야 했으며 물에 잠긴 집과 집기들을 생각하며 주민들은 몇 날 밤을 새우잠을 잤을 것이다. 이제는 물이 빠지고 집 정리에 하루를 보냈는지 주민들은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다음날 아침 7시. 강릉 희망의 집 김상도소장을 따라 남항진다리, 00공군부대앞 등 수마가 지나간 흔적을 되 짚었다.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 강릉비행장 진입로, 이번 홍수로 두동강이 난 남항진다리 앞에 섰다. 옆으로 누워버린 전신주, 처참하게 무너진 둑방.. 폭탄세례를 받은 듯 처참했다. 다리 앞에서 복구를 위해 나온 주민들은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암담한 심정으로 망연자실이었다.

장인저수지의 붕괴로 피해가 심한 박월동 등을 가려면 할 수없이 우회도로를 택해야 했다. 어제 내린 비로 모래바람이 조금은 나아진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도심 전체가 붉은 황토로 옷을 갈아 입은 듯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00공군부대 앞 철길.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싹둑 잘라져 버린 철길이 앙상한 몰골로 서 있었다. 도로는 부서지고, 논둑에 널부러진 자동차, 수확을 앞둔 벼들은 물 속으로 고개를 떨구고 농부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고스란히 토해놓고 있었다. 김상도소장은 “강릉시내에 피해를 당한 이재민들도 문제지만 이렇게 부서지고 무너진 도로와 철길을 보수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라며 “정부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아직까지 사람들의 따뜻한 온정은 식지 않았다. 주말 2만 여명이 이재민을 돕기위해 대관령을 넘었고 지역 사회단체들은 긴급구호품을 조달하며 이재민들의 시름을 덜어주고 있었다. 월드비전 춘천사회복지관 박재호부장은 “우선 1차로 큰 피해를 입은 성덕동, 강남동 등을 중심으로 생필품도구 1천 세트를 긴급 지원했다”고 밝혔다.

박부장은 “수해지역 지원을 위해 이랜드(주), 기윤실, 지교회와 협력했으며 향후 이재민들의 요구를 수용해 담요, 옷가지 등의 2차지원을 계획중”이라고 설명했다.
수해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강릉. 이곳에도 김해지역과 마찬가지로 자원봉사를 나선 기독교인들의 솔선수범이 돋보였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이웃들의 아픔을 싸매려는 기독교인들의 사랑. 그 사랑이 수재민들에게는 더 없는 힘이 되고 있다.

수재민들은 한박스의 라면, 한통의 생수보다는 흙투성이 그릇, 때묻은 옷가지를 씻어주며 함께하기를 더욱 기다린다.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이 한국교회에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강릉=김광오기자(kimko@ucn.co.kr)

"수해로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그 대신 소중한 이웃들을 얻었습니다.”
주사랑교회 한용상목사는 동기목사가 지원해 준 생수와 라면을 들고 인근 주민들을 찾았다. 자신도 큰 피해를 입고 절박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구호품이 부족해 전전긍긍하는 주민들이 더욱 걱정됐기 때문이다.

한목사는 “부임한지 얼마 안돼 서먹서먹하던 이웃이 성도들이 후원한 생수한통으로 녹아내렸다”며 “이번 수해가 이웃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목사는 안정된 목회생활을 뒤로하고 힘든 사역지를 택했을 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내재되었을 것이라며 현 상황을 원망하고 불편한 심기를 비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주사랑교회가 원상태로 복구되기위해서는 1달 이상의 기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기간동안 요긴하게 사용할 물건들이 있다”며 “부서진 부분들을 수리하기 위한 시멘트, 피부병, 소화제 등의 상비약, 이불이나 옷가지, 소금 등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소모품 등 지원품의 확대”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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