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79강)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인가, 다윗의 주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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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79강)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인가, 다윗의 주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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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6.1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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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의 그릇된 메시야관 시정

예수님의 초자연적 신적 성품과 신비를 간과한 채 인간적
범주에서 이해하려는 자들은 주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주님께서 유대인들과 벌인 다섯 번째 논쟁은 다윗의 자손으로서의 예수님 자신의 신분에 관한 것이다(막 12:35~37). 메시야 칭호로서의 “다윗의 자손”은 유독 유대인들에게 의미가 있는 호칭으로써 특히 마태복음에 모두 10회 등장하고 있다(마 1:1, 20; 9:27; 12:23; 15:22; 20:30, 31; 21:9, 15; 22:42). 한편 마가와 누가는 그 복음서에서 각각 3번씩 사용하고 있다.

이 칭호는 메시야의 신적 측면을 나타내는 주,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및 사람의 아들(단 7:13~14) 등과 같은 다른 메시야 칭호와는 달리 다분히 인간적 측면을 가리키면서, 이스라엘의 정치적 구세주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친히 시편 110편 1절 말씀을 인용하여 이러한 당대 유대인들의 그릇된 메시야관을 시정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세 번의 연속적인 주님의 대적들(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시험과 도전을 멋지게 통과한 후, 이제는 주님이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신다; “…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막 12:35) 앞에서 제기되었던 그 세 번의 질문은 적대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주님의 권위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 후 서기관들에게 던지는 주님의 질문은 메시야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시정하려는 목적과 동시에 주님 자신의 신분과 소명을 깨닫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주님은 그 대적들의 시험을 통과하셨지만, 그들은 주님의 시험에 답변하지 못함으로써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마태복음에서는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했지만(마 22:42),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답변이 제시되지 않았다.

사실 1세기 당시 유대인들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메시야를 정치적, 민족적, 군사적 의미로 이해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모든 원수들을 정복하고 온 세계를 다스리게끔 만들 인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이러한 견해를 시정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씀으로 가장 자주 인용하고 있는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하여 질문을 던지셨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막 12:37)

다시 말하면, 어떻게 다윗이 그 자신의 후손을 주라고 불렀겠느냐는 반문인 것이다. 여기에 인용된 시편 110:1은 본래 제사장이었던 왕에게 적용되었던 것인데, 아마도 주님 시대에 메시야에게 적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다윗은 “내 주”라는 칭호를 붙여 왕을 부르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왕은 자신보다 더 높은 지위의 분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내 우편에 앉았으라”는 표현은(막 12:36)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보호 받음을 가리키는 묘사였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보좌와 주권을 공유하는 뜻으로 풀이된다.

주님의 이 질문의 결과는 메시야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즉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다윗의 주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주님이 다윗의 자손임을 부정하신 것은 아니고, 다윗 그 이상의 존재임을 가리키신 것이다. 물론 이전에 사람들은 주님을 메시야로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다(막 10:47, 48).

그런데 여기서 주님은 메시야를 다윗의 자손으로 부르는 것이 충분치 않다고 지적하신다. 즉 메시야를 다윗의 왕족 후예로서 지상의 정복자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메시야는 또한 다윗의 주님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함을 지적하신 것이다.

주님의 이 선포는 매우 웅변적인 신적 주장으로써, 메시야에 대한 당대 유대인들의 그릇된 사고를 교정하고 있다. 즉 메시야를 더 이상 다윗 왕의 군사적 승리를 반복하는 지상 통치자의 개념으로서 아니라,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받아들일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왜 다윗이 자신의 후손을 “나의 주”라고 칭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며 독생자이신 주님의 신비를 알 길이 없었으므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초자연적인 신적 성품과 신비를 간과한 채 인간적 범주에서 이해하려 하는 자들은 주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만다.

그러므로 복음서의 역사적 진정성을 부정하는 이들이 바로 오늘날의 바리새인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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