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서(107강) 매우 혼탁한 시기에 봉착했던 유다왕국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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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서(107강) 매우 혼탁한 시기에 봉착했던 유다왕국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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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6.0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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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아하스의폐위

주전 610년 저후 이집트와 바벨론의 경쟁으로 이스라엘은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처하게 됐다.

역대하 35:20~27에 의하면 그는 바로 느고의 입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었다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왜 여호와 앞에 전무후무했던 신실한 요시야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여 죽은 왕으로 해석하였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유다가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사건을 여호와가 이집트의 태양신인 레(Re)와의 싸움에서 진 것이 아니라 요시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아 진 것으로 해석한다. 이럴때 여호와의 전지전능함과 위대함을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열왕기하 23장 31~35절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석 달간 왕으로 유다를 통치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으며, 역대하 36:2~4에도 기록되어 있다.

여호아하스는 23세에 왕이 되어 단 석 달 동안만 유다 왕으로 통치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유다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던 이집트의 바로 느고가 그가 더 이상 유다 왕으로 통치하지 못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33~34절). 이러한 여호아하스의 폐위에 대하여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레미야 22:10~12에서 예언하였다. 예레미야 22장의 살룸은 여호아하스를 의미한다.

33절에 의하면 이집트 왕 바로 느고가 여호아하스를 립나(리블라)에 있는 이집트 군대의 사령부로 소환하여 가두고 벌금으로 은 100 달란트와 은 한 달란트를 내게 하여다.

뿐만 아니라 느고는 여호아하스를 폐위 시키고 그의 형제이며, 요시야의 아들인 엘리아김을 왕으로 삼고 그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개명하였다. 왕에서 폐위된 여호아하스는 이집트로 소환되어 갔다가 거기서 죽었다고 기록하고 이다.

35절에 의하면 여호야김은 느고에게 정기적인 조공을 받쳤음을 알 수 있다. 36절에서는 여호야김의 통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즉, 25세에 왕이 되어 11년동안 통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36절을 통해서 볼 때 여호야김의 전 왕이었던 여호아하스는 여호야김의 동생이었으며, 배다른 형제였음을 알 수 있다.

31절에 의하면 여호아하스의 어머니 이름이 하무달인 반면에 여호야김의 어머니 이름은 스비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통하여 유다 왕국 말기 특히 요시야가 갑짜기 죽은 이후 왕위 계승을 둘러싼 요시야 아들들 사이의 갈등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호야김의 시대는 격동의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의 통치 11년동안의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요시야 왕이 전사한 이후 유다는 다시 이집트의 통치 하에 놓였다. 이집트는 요시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여호아하스(주전 609년)를 폐위 시키고 죽인 후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 엘리야김을 왕으로 세우고 그 이름을 여호야김(주전 608-598년)으로 바꾼다. 이집트가 이렇게 다시 팔레스틴에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전통적으로 이집트의 적대 세력이었던 아시리아 제국이 바벨론과 세력 다툼을 벌이느라 세력이 많이 약화되어 시리아-팔레스틴 지역에 관심을 쏟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전 612년에 아시리아의 니느웨가 바벨론에 의하여 함락되었고, 609년에는 하란까지 함락됨으로써 아시리아는 역사의 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혼란의 틈을 이용하여 이집트는 그 세력을 팔레스틴뿐만 아니라 유프라테스 강 지역까지 진출하여 멸망하는 아시리아를 도왔다.

유다 왕국 말기의 국제정세는 매우 혼탁한 시기였다. 특히 바벨론과 이집트 사이에 있던 이스라엘은 두 세력의 움직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주전 610년 전후에 아직 바벨론 제국의 군대가 이스라엘 지방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이집트와 바벨론의 경쟁으로 이스라엘은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바벨론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주전 610~606년까지 이집트와 바벨론 제국 사이에 물고 물리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주전 610~609년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세자(世子)로서 군대를 이끌고 하란(Harran)으로 진격하여 이집트 군대와 전쟁을 하였다. 주전 606년에는 이집트 군대가 바벨론 군대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혼전의 상황은 주전 605년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의 왕이 되면서 정리되었다. 그는 이집트 군대를 갈그미스에서 격퇴하고, 이후 바벨론 제국은 고대 근동세계를 주도하였다.

예레미야 46:2 이하에서는 주전 605년 이집트가 갈그미스에서 바벨론 제국에게 패배한 것을 반영하고 있으며, 예레미야 25:1-15에서도 같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예레미야 47:2 이하의 "바로가 가자를 치기 전"이란 표현은 주전 605/4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느부갓네살은 주전 604/3년 아스글론을 정벌하고, 여기서 조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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