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72강) 주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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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72강) 주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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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4.27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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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주님은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올라온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자임을 공포하고자 하셨다

예루살렘 성에 들어섬으로써 주님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역사가 바야흐로 전개되는데, 그 시작부터가 매우 극적이다(막 11:1-11). 먼저 내용을 소개하자면 주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자 두 제자를 맞은 편 마을로 보내어 입성 시 사용할 나귀를 가져오게 한다.

마태는 벳바게만 사용하는데 반해, 마가와 누가는 벳바게와 함께 베다니를 사용하고 있다. 즉 벳바게 다음 마을이 베다니임을 가리킨다. 제자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나귀를 데려온 것을 보면, 주님이 이미 사전에 이것을 준비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즉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행사가 아니라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치밀한 계획 아래 수행된 사건이란 뜻이다. 이것은 또한 주님의 제자 혹은 추종자(sympathizer)들이 그 마을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까닭에 제자들이 아마도 암호(password)로 사용되었을 “주가 쓰시겠다”(직역하면, “주님이 그것들을 필요로 하신다”)란 말을 건네자 지체 없이 나귀를 내어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주님은 “주”라는 단어를 사용하심으로써 자신을 다윗이 약속한 분으로 소개하신다(막 11:3).

많은 현대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사전에 미리 벳바게 마을 안에 살고 있는 지인(知人) 혹은 친구들과 일종의 협의를 한 것으로 이해하는데, 그러나 이곳의 말씀과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하신 말씀(눅 22:7-13)을 고려할 때 그것이 주님의 신적인 예지력의 한 증거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참고, 삼상 10:2-9).

어떤 견해를 취하든지 주님은 여기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매사에 치밀한 준비성이 요청된다는 점이다. 모든 행사에 그러한데 하물며 인류를 구원할 대역사에는 더더욱 그러하지 않았겠는가!

왜 주님은 유월절 기간에 예루살렘에 올라오셨을까?(참고, 마 26:2) 주님 당시 예루살렘은 유월절 기간에는 고대 문헌의 기록에 따르면 약 이백 오십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예루살렘으로부터 20 마일 이내에 사는 성인 남자들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와야 하고, 또한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 민족 최대의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오기에 그처럼 많은 인파가 몰려들게 되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종교적 열심과 대망(大望)을 안고 몰려들기에 주님에게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어떤 일의 성사에 시기를 잘 택하는 것 역시 여기서 우리가 배울 교훈 중 하나일 것이다.

특별히 주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것은 상징적 행동으로서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다(막 11:7). 여기서 인용된 스가랴 9:9에 따르면 선지자는 왕의 입성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주님은 의도적으로 나귀를 타고 입성함을 통하여 자신이 메시야임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한 것이다. 즉 주님은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올라온 온 세상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메시야; 그리스도)임을 공포(公布)하고자 하신 것이다. 주님의 이런 공포를 지지하는 또 다른 표식은 백성들이 나무 가지(종려나무)를 베어 길에 편 행동이다(막 11:8).

이런 행동은 마카비 후서 10:7에 의하면 마카비 일가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이방신전으로 전락시켜 버림으로써 더럽힌 성전을 회복할 때 백성들이 보인 반응과 동일한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민족적 기대를 여실히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백성들이 주님을 부를 때 사용된 호산나란 말은 본래 “이제 구원하소서” 뜻이다(시 118:25). 여기에 마가는 특별히 ‘다윗의 나라’란 말을 추가함으로써(막 11:10) 주님이 바야흐로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실 것이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마가복음에서 주님은 백성들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후 즉시 왕의 행렬이 시작되었던 베다니로 물러가 한 밤을 보내신 것으로 되어 있다(막 11:1-10). 아마도 마가의 심중에는 스가랴의 예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슥 9:9-10), 그것은 언젠가 왕이 나귀를 타고 시온으로 오시며, 그러한 행위는 왕의 권위가 무력이 아니라 평화로운 통치를 시행할 수 있는 능력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일 주님이 구약 예언을 성취하고자 의도하였다고 한다면 그의 목적은 민족적 열정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감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사실 민족적 열정은 메시야가 예루살렘에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는 유월절 절기에 최고조에 달하였다.

주님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지금도 주권적으로 다스리고 있다고 선포하고자 하였지만, 오랫동안 약속된 통치의 성격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의도도 아울러 갖고 있었다. 한 마디로 로마제국의 통치에 무력으로 항거하는 열심당(Zealot)의 행위와 혼동되는 것을 막고자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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