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71강) 님과 우리 사이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상태바
마가복음(71강) 님과 우리 사이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 운영자
  • 승인 2012.04.12 1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맹인 바디매오의 기적(2)

주님보다 더 관심과 애착이 가는 것들은 우리에게 우상이 될 수 있다.
참된 제자로서 살기 위해 그것을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

둘째로, 바디매오는 주위 환경에 의해 영향 받지 않았다(48~49절). 바디매오가 주님께 나아가는 데는 많은 방해물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거세게 반대하고 제지하였다. 그들은 바디매오가 주님을 부르자 ‘잠잠하라’고 그를 꾸짖었다.

주위의 군중들은 아마도 여행 행렬이 늦추어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고, 그리하여 소리치는 바디매오를 제지하였을 것이다. 혹은, 바디매오가 주님을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야적 칭호로 부르자, 그들은 아직 주님을 메시야로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제지하였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자신을 꾸짖는 사람들의 제지와 방해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아니하고 더욱 크게 소리침으로써 지나가시던 주님을 불러 세움으로써 이런 방해물을 극복하였다. 주변 사람들이 뭐라 하든,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외쳤다.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누가복음 19장 1~10절에서 우리는 삭개오를 만나게 된다. 그는 키가 작고 사람들이 많아 주님을 볼 수 없게 되자 뽕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의 핸디캡과 타인들의 방해를 슬기롭게 극복하였던 것이다. 이는 삭개오에게 그만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9장 26절 이하를 보면, 사울이 회심한 후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고 그와 교제하는 것조차 꺼려하였다. 그러나 이런 주위 사람들의 반대와 반감에 사울은 결코 굴복하지 않고, 복음 전도함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우리에게도 역시 주위 사람들의 많은 반대와 억제, 심지어는 핍박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주님을 따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욕과 핍박을 받을 수 있다(마 5:10~12). 오늘날도 학교, 혹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설령 육체적 박해는 아닐지라도 주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고 소외를 당하는 일들을 맞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분리의 아픔에 결코 정복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주님께서 지상 사역동안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우리는 이런 분리의 아픔과 고독을 기쁨으로 자랑스럽게 맞아야 할 것이다. 지상의 교회는 완성된 천국이 아니다. 천국이 되어가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여전히 죄인들의 모임일 뿐이다.

그러므로 봉사하면서, 함께 신앙생활하면서, 다른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 있고, 그로인해 신앙생활에 방해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바디매오처럼, 삭개오처럼, 회심 직후의 사울처럼, 슬기롭게 헤쳐 나가며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셋째로, 바디매오는 자신의 소유 전부를 버리고 주님을 좇았다(50절). 주님께서 부르시자 바디매오는 거지인 자신의 재산 전부인 겉옷(낮에는 구걸 수단; 밤에는 이불 代用)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달려 나갔다. 바디매오는 아직 소경인 상태에 있었다. 즉 아직은 눈을 뜬 상태가 아니기에, 구걸 수단으로서 또한 추운 밤을 지새울 이불로서, 겉옷은 여전히 필요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디매오는 주님께서 부르시자 기꺼이 그 겉옷을 믿음으로 내어버렸다. 이는 더 이상 자신의 재산에 의지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각오를 보여주는 행동이다. 곧 더 이상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철저한 태도이다.

종종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소중한 무엇을 포기할 것이 요구된다. 주님보다 더 관심과 애착이 가는 것들은 그 어떤 것이든지 우리에게 우상(偶像)이 될 수 있고, 따라서 참된 제자로서 살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의 포기가 요청된다. 이런 것들을 우리 생활 중 그냥 내버려둘 때, 알지 못하는 동안 점점 자라 주님과 우리 사이에 틈과 간격을 만들 수 있고, 마치 백내장과도 같이 우리가 바라보는 주님의 모습을 흐리게 만들고 말 것이다.

바디매오에게도 전 재산인 겉옷을 내어버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겉옷을 내어버림으로써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결과 기적을 체험하며 제 2의 인생을 살 수가 있게 되었다. 내 생활에 주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으면서, 주님을 온전히 따르기를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남편/아내, 자녀, 애인, 친구, 가족, 명예, 권력, 재물 중 어떤 것일까?

삶은 어차피 선택의 연속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선택의 성격에 따라 그 차이는 엄청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땅엣 것에 대한 애착으로 가장 소중한 위엣 것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도록 경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 3:1~3)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