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3.1운동의 출발, 진주교회 ‘종탑’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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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3.1운동의 출발, 진주교회 ‘종탑’복원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2.03.20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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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감사예배 드리고 타종식 거행

▲ 지난 18일 진주교회에서 타종식을 거행하고 있다.
“진주 장날 교회당 종소리가 정오를 기하여 우렁차게 울렸으니 정의와 독립의 소리였다.”

진주지역에서 3.1운동의 시작을 알렸던 진주교회(송영의 목사)의 종과 종각이 복원됐다.
1919년 2월 18일 경상남도 진주에서는 장날을 기점으로 약 2만여 명의 인원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서울 다음으로 많은 인원이 동원됐던 진주의 3.1운동은 약 일주일간 계속됐다.

이때 진주교회의 교인들과 호주 선교사들이 경영하던 광림학교의 교사 학생들은 물론 배돈병원의 의사와 간호사가 적극 참여했다. 심지어 기생 7명과 걸인들까지 동참해 “우리가 걸식함은 일제의 만행 때문”이라고 외치며 3.1운동을 함께 했다고 전해진다.

일부 역사가들은 진주 3.1운동을 시작할 때 비봉산에서 나팔을 불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당시 일제고등경찰이 상부에 보고한 문서 ‘고등경찰관계적록’에 의하면 ‘3월 18일 진주장날에 예수교 예배당에서 울리는 정오의 종을 신호로 일제히 조선독립만세를 외쳐 약 1만여 명이 운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중요한 사건의 시작을 알린 종탑이 약 100년 만에 복원된 것은 향토사학자 추경화 씨의 공이 컸다. 추 씨는 여러 자료에서 진주교회의 종탑과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냈으며, 진주교회에 종의 복원사업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에 진주교회는 ‘종탑복원추진위원회’를 조직했고, 지난해 10월 성금을 모금해 종과 종각 복원을 완성한 것이다.

이날 종탑복원 감사예배에서 말씀을 전한 송영의 목사는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설교를 통해 “목숨을 건 신앙인의 결심으로 나라를 구한 에스더의 마음을 새겨야한다”고 말했다.

예배 후에는 기념 타종을 하며 모인 성도들이 태극기를 한 손에 들고 만세삼창으로 행사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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