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 인물로 본 2011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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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인물로 본 2011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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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12.2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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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부재 가득한 한국교회 , 새 리더십이 필요하다

‘엄이도종(掩耳盜鐘)’.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한국 교회에 일침을 가한다. 어떤 이는 귀를 막고 있고, 어떤 이는 들으라 말한다. 소통의 부재가 안타깝게 다가온다. 잘못을 모르니 치유도 어렵다. 영적 가르침을 주는 존경받는 ‘어른’이 그리운 시대다. 또 목회자의 리더십을 넘어 평신도의 리더십도 절실하다. 리더십 부재의 시대,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1년 이었다. 2011년 한국 교회 안에 이슈가 됐던 인물을 뽑아봤다.<편집자 주>

▲ 손봉호 박사
‘한기총 해체 운동’ 깃발 내건 손봉호 교수
“개신교 역사상 지금의 한국 교회만큼 타락한 교회는 없었다.” 손봉호 명예교수(서울대)의 이 한 마디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가장 혹독하고 냉정하게 평가한 것이었다. 한기총 금권선거 논란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던 지난 2월 손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한기총은 개혁이 불가능하다. 해체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손 교수는 “한국 교회는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다. 돈 잘 버는 사람이 복 받은 사람이 되어버렸다”며 “부정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돈을 버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성경의 가르침과 너무 어긋난다. 예수님은 철저히 가난했고, 사도들도 다 가난했다”고 말했다. 신뢰를 잃은 교회의 모습에 대해 손 교수는 “한국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잘못된 점을 고치지 않는 것은 교회를 미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행동을 촉구하기도 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이끌어오면서 한국 교회의 윤리 문제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의 이 같은 주장은 한기총 해체 네트워크 발족, 서명운동 등으로 이어지며 올 한해 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진 한기총 해체 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이후 교회개혁실천연대, 기윤실 등 10여 개 단체로 구성된 ‘한기총 개혁을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가 발족됐다.

또 한기총 가입 교단과 단체를 대상으로 탈퇴를 촉구하는 행동에 나섰다. 복음주의권에서 이동원 목사가 “팔과 다리를 자르는 심정으로 한기총 해체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밝히고, 온라인 서명자가 한 달여 만에 7천 명을 넘어서는 등 개혁 운동이 확산됐다.

지난 12월 6일 열린 한국 교회 갱신 참회 기도회에서 손봉호 교수는 “한국 교회의 도덕적 민감성이 죽어 버렸다”며 “한기총 사태의 죄는 우리에게도 있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스스로 돌아보고 회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하용조 목사
선교에 목숨을 걸었던 고 하용조 목사
“나는 선교에 목숨을 걸었다”며 선교에 매진했던 고 하용조 목사(전 온누리교회). 65세의 짧은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ACT 29’로 대변될 정도로 선교에 온 삶을 헌신한 인물이었다. 하 목사는 ACT 29의 비전 선포와 이의 완성을 위해 온누리교회를 비롯한 국내 9개 성전과 해외에 설립된 25개 비전교회 모두가 마음을 모으기를 바랐고 스스로 그 전면에서 선교 비전을 이루어가도록 독려했다.

지난 2007년 시작된 ‘러브 소나타’는 ACT 29를 완성시켜 나가는 또 다른 원동력이었는데 ‘문화전도집회’가 대표적인 것이었다. 러브 소나타를 통해 지구촌의 많은 불신자들은 거부감 없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복음의 지경이 하루하루 넓혀지는 기적을 낳았다.

‘일본 개신교 선교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09년 열렸던 일본 러브 소나타는 하 목사의 애정이 가득 담긴 대회였다. 당시 하 목사는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는 상태였지만, 강단에 올라 “역사상 유례없는 대부흥이 일본 땅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복음의 태풍이 일어나 일본을 복음으로 뒤덮을 것을 염원하기도 했다.

특히 하 목사는 평소 선교사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잘 나타내기도 했다. 하 목사는 “특별히 선교사로 헌신해 나가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생활의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선교지로 달려가신 분들에게 목사로서 존경을 표합니다”라며 선교에 대한 열정과 선교사들에 대한 마음을 전달하기도 했다.

▲ 정삼지 목사
“헌금 투명하게 관리 못한 죄” 정삼지 목사
2011년은 성도들의 헌금이 담임목사의 전유물이 아님이 확인된 중요한 한 해였다. 제자교회 정삼지 목사가 지난 2일 교회 돈 32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되면서 교계에는 헌금 사용에 대한 경종이 일고 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2형사부(재판장 김용관)는 선고공판에서 정삼지 목사에게 징역 4년, 공범으로 기소된 서모 씨와 홍모 씨에 대해서는 각각 징역 2년을 선고하고 홍모 씨에 대해서만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검찰이 기소한 32억6천여 만원 횡령 혐의를 모두 인정한 것이다. 피고인측은 32억여 원을 닛시축구단 등 선교활동에 사용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그가 한 때 교계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던 탓에 한국 교회에 미친 파장은 엄청났다. 특히 개척한 교회 담임목사라 할지라도 교회 헌금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판결이어서 큰 주목을 받았다.
현재 제자교회는 법원의 판결로 인해 정 목사가 구속됐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측과 반대측으로 나뉘어 매 주일마다 파행적인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정삼지 목사는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며 고등법원에 항소해, 재판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 이광선 목사
한기총 파행 불구 원로 추대된 이광선 목사
이광선 목사가 가는 곳에는 항상 분열과 논란이 일었다. 찬송가공회도 그랬고, 한기총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월 정기총회를 정회시키고 나가버린 이광선 목사는 “나도 금권선거를 했다. 하지만 한기총에 만연한 금권선거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며 개혁을 주장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은 금권선거를 했지만 여전히 직전 대표회장의 자격을 유지하고 한기총 명예회장 직분도 고수했다.
 
반면 길자연 목사에게는 “대표회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물러나라”고 강조했다.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찬송가공회 역시 재단법인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통합측에 반해 합동은 너무 많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형평을 주장한 이광선 목사는 공동회장과 이사장을 거쳐 4연임에 성공하며 찬송가공회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연합기관과 대립하면서 일반 출판사의 출판권을 지지했고, 연합사업에 있어 교단 간 연대가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감리교와 기장, 합동 등 판권 교단들이 불만을 제기해도 묵살했다. 또 찬송가 저작권을 일반 대행업체에 양도함으로써 찬송가 상업화 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받는다.

그러나 찬송가는 공교회의 산물. 결코 개인이 사유화할 수 없다는 사실이 법원 판결을 통해 드러났다. 올해 법원 판결을 통해 “찬송가공회의 재산이 제대로 양도됐다고 볼 수 없어 저작권 소유자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해석을 내렸다. 이렇게 2011년 한국 교회 뉴스의 중심에 선 이광선 목사는 지난 18일 원로목사로 추대되면서 무대뒤로 사라졌다.

▲ 양병희 목사
장로교 연합조직 탄탄히 이끈 양병희 목사
상반기 교계의 핫이슈였던 ‘수쿠크법’ 제정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한국장로교총연합회를 연합운동의 전면에 부각시킨 인물. 양병희 목사(영안교회)는 예장 백석총회 소속으로, 오래 전부터 교회연합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면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특히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으로 재직 중이던 올 한 해 동안 수쿠크법 제정 반대를 비롯해 학생인권조례 제정 반대에 이르기까지 교계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는 일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양 목사는 종교전쟁으로 몰아가는 일반 언론들의 불리한 여론 조성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와 관련한 법안의 폐기를 위해 올해 초부터 이 법안의 위험성을 알리는 일을 지속적으로 펼쳤으며, 공개 토론회와 심포지엄 등을 통해 법안 제정의 부당성을 공론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양 목사 또한 그동안 활동이 뜸했던 한국장로교총연합회를 교계 연합운동의 전면에 내세운 인물로도 평가된다. 한장총은 양 목사가 대표회장으로 취임하기 이전까지 상당 기간 동안 활동이 위축된 것이 사실. 하지만 양 목사는 가맹 교단들을 독려해 그 활동력을 되살렸으며, 가맹 교단들이 중심이 돼 개최했던 ‘장로교의 날’ 대회를 그 어느 해보다 활성화시킴으로써 전반적으로 침체기에 빠져있던 한장총과 연합운동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 존 스토트 목사
‘영적 유산’ 남기고 떠난 존 스토트 목사
20세기 최고의 설교가이자 세계 복음주의 거장으로 불렸던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가 지난 7월 27일 향년 90세기의 일기로 소천하면서 전 세계 신학자와 목회자, 성도들이 애도하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목회와 신학이 지난해 실시했던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설교자로 선정된 바 있는 스토트 목사는 1921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캠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하고, 1942년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945년부터 1975년 은퇴할 때까지 런던 올 소울즈 교회에서 교구 목사로 30년 간 목회했다.

또한 1967년부터 17년간 영국교회복음주의위원회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지난 1974년에는 로잔언약 입안자로 참여해 로잔대회에서 신학과교육위원장을 맡아 복음과 사회적 실천의 관계를 정립하는 등 복음주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이후 2007년 4월 영국에서 열린 케직 사경회에서의 설교를 마지막으로 모든 공적에서 은퇴한 스토트 목사는 ‘기독교의 기본진리’, ‘그리스도의 십자가’, ‘현대사회와 기독교적 답변’, ‘제자도’ 등의 많은 저서를 통해 세계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 성도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며 영향을 끼치는 등 신학자이자 목회자로서의 삶을 추구해왔다.

스토트 목사가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에 남긴 영적유산은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우선 전 세계 목회자들을 향해 목회자는 계속해서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보여줬다. 그는 목회하면서도 수없이 많은 책을 집필한 학자였다. 목회가 아무리 바빠도 오전에는 서재를 지키는데 헌신할 정도로 좋은 설교와 목회는 책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또한 언제나 명확한 복음주의적 입장을 갖고 성경을 중요시했으며, 인권, 환경, 평화, 생명공학, 다문화, 동성애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성경적 가르침에 따라 적용 해석하면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 김용호 변호사
“고름이 살되는 법 없다” 김용호 변호사
지난 3월 31일 법원의 가처분 판결문을 들고 한기총 사무실에 첫 출근한 대표회장 직무대행 김용호 변호사는 “법에 어긋나거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겠다”며 업무를 시작했다. 100일간 일사천리로 한기총 개혁을 진행한 김 직무대행은 “일개 집사”라는 교계의 조롱섞인 비난을 참아가며 “가능한 화해중재로 사태를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팽팽하게 맞서는 한기총 대립을 바라보며, 한국 교회를 위해 한기총을 살려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대대적 수술을 선포한 것이다. “고름이 살 되는 법 없다”고 지적한 김용호 직무대행은 청문절차를 거치고 원로들의 조언을 듣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노력이 길자연-이광선 목사의 화해를 이끈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평신도의 개혁을 우려한 길-이 양측이 ‘화해’라는 제스쳐를 취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다가갔다.

김용호 직무대행은 7.7 특별정관을 통해 한기총 개혁의 단초를 마련했다. 그리고 길자연 목사의 대표회장 인준을 이끌어내고 교계를 떠났다. 그런 그에게 돌아간 것은 ‘사법에 의한 강제적 개혁’이라는 반발이었다. 고름이 가득한 교계를 바라보는 김용호 변호사의 마음은 어떨까. 짧은 시간이지만 부드러우면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한 김용호 변호사는 올해의 인물로 기억되기에 충분하다.

▲ 홍재철 목사
한기총의 막후 실력자 홍재철 목사
한기총의 막후 실력자로 꼽히며 교계 전면에 나선 홍재철 목사. 지난 2009년 12월 선거에서 이광선 목사와 경합 끝에 대표회장에 낙석하자, “반드시 이번에는 합동이 대표회장을 맡아야 한다”며 길자연 목사에게 3선 출마를 제안한 인물이다.

지난 95년 희년성회 당시 한바탕 곤혹을 치룬 홍재철 목사는 2000년 들어 한기총 활동을 시작했고, 올해는 길자연 목사를 앞세워 한기총의 실세로 거듭났다. 지난 7월 길자연 목사와 이광선 목사의 화해 발표가 있은 후 양측을 오가며 조율한 인물도 홍 목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그의 꿈은 어디까지일까. “길자연 목사와 나는 부부와 같다”고 말할 만큼 친밀함을 과시한 홍 목사는 지금 한기총의 실세로 꼽힌다. 심지어 차기 대표회장 출마를 위해 교단 실행위원회 추천을 받았고, 출마가 가능하도록 선거규정과 시행세칙도 개정했다.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한기총 대표회장에 출마한다고 예측하지만 정작 그는 “WCC에 반대하고, 보수신앙을 지키기 위해 나선다”고 말한다. 이유야 어찌됐건 온갖 논란 속에서도 그는 지금 한기총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2011년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인물이 아닐까.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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