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말하는 ‘사회정의’는 무엇인가
상태바
기독교가 말하는 ‘사회정의’는 무엇인가
  • 표성중 기자
  • 승인 2011.12.06 15: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복음의 정신으로 공동선 추구하며 ‘하나님 나라’ 구현하는 것

최근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서 진행됐던 한 FTA 반대집회 현장. 경찰이 쏘는 물대포를 맞아가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들이 굳건히 붙잡고 있었던 플래카드에는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물 같이 흐르게 하여라”라는 말씀이 새겨져 있었다(아모스 5:24). 정의와 사랑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 실현될 것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강자들의 이기심 속에서 약자가 소외되고 고통을 받는 한국 사회 안에서 정의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가 갈수록 거세지는 가운데 한국 교회도 이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정의’에 접근하는 방법과 그것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양극화 현상이 심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4대강 사업, 무상급식, 한미 FTA 체결 등과 같은 사안을 두고 사회뿐만 아니라 교계도 진보와 보수로, 찬성과 반대로 나눠져 다양한 논쟁을 지속해오고 있다. 양측의 주장들이 모두 ‘정의’를 표방하면서 어떤 정의가 올바른 정의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사실 사회 속 진보와 보수가 말하는 정의, 시민사회가 말하는 정의는 접근하는 방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교회가 말하는 정의는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통일된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정의는 무엇일까. 사회 속에서 성경적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한국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사회정의를 향한 한국 교회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 한국 교회는 국가가 정의에 대한 책임을 제도와 정책을 통해 올바로 실현할 수 있도록 민주적 시민공동체 안에서 정의사회 구현의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사진은 기독교 시민사회 운동을 펼치고 있는 샬롬나비가 ‘사회정의와 기독교’를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 모습.

불공정한 경쟁 속 패자도 승자의 몫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가 ‘정의사회’
돌봄과 배려의 대상인 위기에 처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고통 분담해야

# 73%, “한국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공정사회’를 국정운영의 지표로 제시한 가운데 정부가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7명 이상이 ‘우리사회는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줬다. 지난 10월 민주당 박기춘 의원은 “특임장관실이 지난해 9월 실시한 공정사회 관련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73% 정도가 우리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고 대답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가장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20~30대는 75%, 40~50대는 73%, 60세 이상 65% 정도가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장하성 박사는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 박사는 “인간의 본성은 이타심과 이기심을 동시에 갖고 있지만 대부분 이기심이 이타심을 앞서기 때문에 남을 이기려고 경쟁한다”며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갈등을 내재하고 있고, 마라톤처럼 모두가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공정하지 않은 속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발선부터 불공정한 경쟁이 승자와 패자를 점점 더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 장 박사는 “출발선이 동일한 경쟁이라도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 또한 패자가 있기에 승자가 있고, 함께 경쟁해 준 경쟁자가 있기에 효율성이 가능한 것처럼 1등만이 모든 과실을 독차지하는 승자독식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불공정 경쟁과 승자독식 구조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따라서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들이 자신에게는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세상은 반칙이 난무하다고,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 패자와 약자의 기회 ‘사랑의 윤리’
그렇다면 기독교적 시각에서 말하는 ‘정의로운 사회’는 무엇일까.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회장:김영한 박사, 이하 샬롬나비)이 지난 3일 ‘사회정의와 기독교’라는 주제로 제3회 학술대회를 개최한 자리에서 김영한 박사(숭실대)는 기조발제를 통해 패자도 승자의 몫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가 정의사회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73%의 국민들의 폭발적인 문제를 당장에 풀 묘안은 기독교가 제시하는 ‘창조적 정의’와 ‘변혁적 정의’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세대가 서로 상대방의 문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갖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른 세대는 젊은 세대가 좌절과 고민을 안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어른들이 겪었던 어려운 과거를 젊은이들에게 그대로 대입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그리스도 산상설교의 가르침이 우리 사회를 향해 하나의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한다”며 긍휼의 정의가 실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기득권 세력이나 부자들은 모두 갖는 것이 아니라 70% 정도만 갖고, 이웃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해 무례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기초적인 삶을 보장할 수 있는 함께 나누는 삶의 태도를 갖는 것으로 롤스가 말한 ‘차등의 원리’가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자가 누리는 특권을 제안함으로써 가난한 자들이 혜택을 받는 정책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신학적 정의는 인간을 새로운 존재로 만듦으로써 차등 원리를 적용하는데 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며 “아가페에서 유래하는 공감성으로 사회적 소외자들과 최소 수혜자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이들의 사회적 신분이 상승하도록 하는 실천의 능력을 부여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사실 ‘정의’는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 이해는 이를 넘어선다. 패자와 약자들에게도 새로운 재기의 길을 열어주고, 이들도 같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본연의 이기심을 넘어서는 ‘사랑의 윤리’가 필요한 대목이다.

# 화해와 평화의 중재자가 돼야
무엇보다 한국 교회가 ‘사회정의’를 말하려면 항상 공동선을 향한 복음의 정신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한다. 정교분리의 원칙만을 내세우며 사회적 참여를 거부하는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곡해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삶을 통해 개인적인 영역에 해당되는 것보다 공동체와 사회를 향한 공적 영역에 대해 더 많은 방향성을 제시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생명과 인권, 평화, 경제, 정치, 생태 등의 영역 속에서 복음의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책임이 있다.

한 기독교 사회운동가는 “사회정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며 “어떤 지엽적인 상황에서도 생명, 평화, 평등 등과 같은 변형 불가한 가치인 공동선을 추구한다면 편협한 종교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진리에 당당히 서서 예언자적 소명을 제대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데 한국 교회의 역할은 매주 중요하다. 이를 위해 신앙에 대한 통찰이 선행돼야 한다. 신앙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고,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지만 동시에 타인의 삶에 위기가 닥쳐왔을 때 위로와 소망의 능력을 공급해 주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즉, 한국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위기에 처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 가운데 계속해서 바른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제시의 도움을 제공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경제정의와 기독교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한 김승진 소장(가치와경영연구소 공동소장)은 “한국 교회는 우선적으로 ‘교회다움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책임적인 삶을 위한 공적인 기준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리스도인은 영원하고 절대적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과 동시에 상대적인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이중도덕의 실존양식을 갖고 있다”며 “이러한 두 가지 실존양식은 신앙공동체와 민주적 시민공동체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즉, 기독교 신앙공동체는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현존하고 있는 인간의 제도적 영역에서도 신앙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김 소장은 “우리나라는 쉴 새 없이 전개된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과정 속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부작용들과 경제적인 위기의 발생이 가져온 사회적 충격으로 인해 ‘분배’와 ‘복지’, ‘사회적 약자’ 들과 관련된 경제 정의적 문제가 가장 중요한 핵심적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우선적으로 화해와 평화의 중재자로서 인간의 편파적 이해관계와 이를 뒷받침하는 편파적인 가치를 넘어서서 더불어 살아가는 연대적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의 갈등과 대립은 이해관계의 편파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이해관계 편파성 뒤에는 언제나 가치의 편파성이 자리를 잡고 있다”며 “나와 우리의 이해관계만을 내세우거나 심지어 절대화함으로 인해 너와 너희의 이해관계를 소홀히 여기거나 심지어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가치의 편파성, 즉 이기주의적인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나님 나라는 모든 인간의 편파적인 이해관계와 편파적인 가치와 이념을 넘어서는 동시에 이것이 지배하는 현실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연대적인 공동체로 나아가도록 하는 에너지의 근원”이라며 “한국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성에 그 근원적 뿌리를 두고 차별 없는 형제애를 지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사회적 약자들과 ‘고통’ 분담해야
여기서 더 나아가 현실 속에서 경제의 구체적인 결과들과 더불어 삶의 처지가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하는 일,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한 우선적인 배려와 지지가 실현되도록 하는 일에도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즉, ‘고통분담의 문제’에 대한 부분이다.

김 소장은 “고통분담은 참여정부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 버렸지만 이것은 기독교윤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사회적 약자들은 단지 현실적인 분배의 정의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강한 연대적 긍휼을 특징으로 한국 교회 입장에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돼야 할 돌봄과 배려의 대상”이라고 피력했다.

이를 위해 교회는 구체적인 분배와 약자에 대한 관심, 그리고 이에 대한 국가의 구체적인 책임수행의 방법에 대해 공적이성에 의한 토론과 합의를 거쳐 사회적인 합의가 도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최근 무상급식 여부를 둘러싸고 전개된 복지논쟁과도 관련이 많다. 우리 사회는 현재 보편적 복지 지지자와 선별적 복지 지지자로 양분돼 있다. 현 정치 상황 하에서 보편적 복지는 여당을 위시한 보수진영에서, 선별적 복지는 야당 및 시민단체를 위시한 진보진영에서 주장됐던 것으로써 이와 관련된 논쟁은 앞으로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서 표면으로 드러나 치열한 공방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엄명용 교수(성균관대)는 “사회복지 제도가 선별적으로 가야 하는지, 보편적으로 가야 하는지, 무상으로 가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쟁은 시작부터 잘못됐다”며 “어떻게 우리나라 실정에 가장 알맞은 복지제도를 창출하느냐가 가장 큰 과제”라고 설명했다.

엄 교수는 “성경에 깃든 기본적 복지 이념은 개인과 이웃이, 그리고 지역 공동체가 곤궁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이었다”며 “국민 전체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 대해서는 보편적 복지를 추구해 가면서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선별적인 복지를 실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성경에 합당한 복지제도일 것”이라고 피력했다.

한국 교회는 정의를 가능하게 하는 연대성의 촉진자가 될 수 있다. 분배의 문제에서도, 복지의 문제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부분에서 정의를 실현할 가장 중요한 책임자는 국가다. 하지만 국가가 정의에 대한 책임을 제도와 정책을 통해 올바로 실현해 갈 수 있도록 교회는 민주적 시민공동체 안에서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해관계의 편파성과 가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 편파성을 넘어 성경적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연대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화해와 평화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김승진 소장은 “이러한 노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화해와 평화를 현실의 치열한 한 복판 속에서 증언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제도적인 현실 속에서 이룩할 기독교의 평화윤리적 사명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