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내던지고 낯선 열방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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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을 내던지고 낯선 열방을 품다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1.11.15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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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천 작가

광고 디자이너 이준천 씨의 인생을 바꾼 특별한 비전트립

열방을 담다, 열방을 그리다···
믿음의 한 걸음으로 열방을 향한 큰 꿈을 꾸다

내가 가지고 있던 익숙함을 내던지고 전혀 낯선 세계로 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딛는다면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했을 때 실패의 결과가 오더라도 그것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교훈이 될 것이다. 보다 높이 날고 멀리 보기 위해선 힘들더라도 안주하던 곳에서 떠나 높은 산에 오르는 여정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이준천 저, '33나라 지구별 비전트립' 중에서

복음이 전해진 길을 따라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오대양육대주 서른세 나라. 무려 1년 4개월이라는 시간. 그가 복음의 서진을 따라 떠난 비전트립은 선교여행에서만 그친 것이 아닌 ‘비전’을 찾아 떠난 가슴 벅찬 선교여행이었다. 그리고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준천 청년(강동 온누리교회, 38세). 그가 비전트립에서 있었던 하나님과의 만남과 그의 ‘디자인 선교여행’을 들여다보자.

# 당신은 ‘해고’입니다
그는 평범한 광고 디자이너였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대학을 나왔고 졸업 후 디자이너로 개인 사업도 했다. 어느 광고회사에서 괜찮은 조건의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고 그는 흔쾌히 일했다. 하지만 1년 4개월만에 회사 구조조정으로 권고사직을 당했다. 세상에서 알아주는 광고 공모전마다 1등을 휩쓸며 인정받은 그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치셨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해고가 감사하다고 말한다. 패배의 시간과 위기의 시간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이 아프고 쓰린 가운데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디자이너로 하나님께 어떻게 쓰임받을 수 있을까 기도했다.

“어릴 적부터 제가 그린 그림과 디자인을 통해 어떻게 하면 복음 전파를 할 수 있을까 늘 생각했어요. 회사에 다니면서도 내가 하는 디자인이나 사업들이 세상을 위한 일들인데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에 대한 고민도 컸죠.”

때마침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 시간을 갖게 된 그. 우연찮게 ‘어? 성경이 읽어지네(이애실 저)’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은 지리적인 관점, 역사적 관점으로 성경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이야기가 담겨진 책을 보고 이준천 작가는 성경의 배경이 된 고대 근동지역에 대한 영감을 받았고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 이준천 씨의 33개 나라 비전트립 여정

# 복음의 서진을 따라서···
그는 여행지에 특별한 무엇이 있을 것 같았다. 그곳은 복음이 시작된 곳인데 어떻게 변화되었고 그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여행 루트는 복음의 서진(西進)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 성경의 역사가 처음 시작된 지금의 이집트인 출애굽,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예수님께서 사역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땅. 그리고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따라 사도들이 나아갔던 소아시아(시리아, 터키). 그리고 그리스(헬라), 이탈리아(로마), 그리고 동유럽과 서유럽이 복음화되고 영국으로 가는 여정. 그 복음의 서진을 따라 여행을 떠났다.

그는 교회 예배팀 사람들에게 계획한 비전트립 지도를 보여줬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중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냐, 결혼도 안하고 어딜가냐 란다. 하지만 그 중 교회동생 세경과 호직이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형~ 같이 가면 안되나?” 순간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느껴진 두 동생이었다. 카메라를 잘 다루는 정세경 씨와 글재주가 있는 정호직 씨. 철저한 준비가 다 되고 든든한 팀까지 만들어진 이준천 작가는 그렇게 비전트립에 한 발자국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간 곳은 아프리카. 기독교가 많이 알려진 남아프리카와 다르게 북아프리카는 거의 모든 국가가 모슬렘이었다. 아프리카에 가보니 세계적으로 선교화된 중앙, 남아프리카이지만 남진정책을 펼치는 위협적인 모슬렘의 모습이 난무했다. 비단 아프리카 뿐 아니었다. 아시아, 중동 등 모슬렘들이 동진해 영적 충돌이 일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라마단 금식기간에 이집트를 방문하게 되었다. 상당히 민감한 때에 가게 된 이집트. 복음을 원칙적으로 전할 수 없는 상황이라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그와 두 형제들은 알게 모르게 차별과 핍박을 받는 선교사들을 위로하고 중보하며 그들의 사역에 있어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부분에 중점을 두어 선교하며 아프리카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

# 입국 거부, 시리아를 위한 기도
말로만 듣던 사막을 직접 보았을 때 그는 어린왕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는 “사막여우도 보게 되고 ‘삐~’하는 적막 속에서 나오는 신비의 소리도 들려왔어요.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광야에서 연단 받고 풀 한 포기 없는 사막 땅에서 하나님을 의지했던 것을 느꼈죠”라고 말했다. 모세가 오랫동안 머문 사막. 그들이 가졌던 마음을 되새기게 된 계기가 되는 사막이었다.

이스라엘의 여정에서는 다른 나라와 달랐다. 예루살렘의 경우에는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의 3대 종교의 성지인지라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크리스천, 아랍인, 유대인이 모여 사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울부짖는 통곡의 벽에서는 이스라엘의 고난의 역사가 느껴졌고, 여전히 하나님을 찾는 모습들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고 울며 기도한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요르단을 거쳐 시리아로 들어가려는데 뜻밖에 입국 거부를 당했다. 다른 아랍 국가와 적대관계에 있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입국 기록이 있는 경우 요르단과 이집트 외에는 다른 국가는 입국 제한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이스라엘 입국 허가를 받을 때에 특별히 허가도장을 별지에 받아 다녀왔는데 심사관은 입국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 심사관이 여권을 보더니 이스라엘을 다녀왔다고 트집을 잡은 것. 화물 스티커 자국을 보고서 이스라엘을 다녀왔다며 거부하는 것이었다. 다녀오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결국에는 시리아 국방에서 추방당해 다시 요르단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입국을 거절당하자 알 수 없는 절망감이 엄습했다. 선교사님은 우리에게 매일 기도하고 묵상을 나누라고 하셨다. “기도와 말씀은 여정의 바퀴와 같은 것이었어요. 여행하는 동안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그와 두 형제는 손을 맞잡고 기도했고 뜨거운 감동이 마음 깊은 곳까지 전달됐다.

▲ 비전트립 중 만난 사람들과 함께. 두번째가 이준천 씨.

# 여행스케치엽서로 아메리카로
아시아의 시작이며 유럽의 끝인 터키. 복음의 시발점이 되었던 터키를 지나 유럽으로 넘어갔다. 이미 박물관이 되어버린 유럽의 교회들. 교회의 기능을 상실해 레스토랑과 술집으로 변해버린 모습을 보면서 변해가는 유럽교회들을 보면서 그는 마음이 참 아팠다. 복음의 서진으로 찬란한 부흥을 이뤘던 곳들이 변한 모습을 보면서 왜 유럽 교회의 역할이 상실되었는지 묵상했다.

유럽의 교회를 밟을 때마다 그는 땅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부흥이 있었던 곳이었지만 그들이 다음 세대를 기르지 않고, 주변의 나라에게 축복을 나누지 않고 안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유럽은 ‘대한민국의 교회’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서구화되는 한국 교회도 선교하지 않고 다음 세대를 기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준 유럽 기독교의 현실이었다.

실직을 하고 비전트립을 준비하기 전 영국으로 이민 와 디자인 사업을 하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의 실직소식을 접한 친구가 “이 기회에 영국에 와라. 영국도 선교지야”라고 말하더라. 말씀을 묵상하면서 선교에 대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영국에 있는 친구의 말을 들으니 마음에 불을 당겼다. 하지만 한 번에 영국을 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서진 방향으로 영국에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도착한 영국. 그리고 영국에서 헤어지게 된 비전트립 동료들. 때마침 여비도 떨어져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복음의 서진을 따라 영국까지 왔는데 계속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제일 중요한 것이 기도였다. 유럽에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로 넘어간 복음의 여정은 계속 떠나고 싶지만 돈은 다 떨어졌고. 이 때 기막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여행을 통해 그리게 된 여행 스케치들. 여행 스케치한 그림으로 엽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갖고 간 노트북을 이용해 영국에서 엽서를 제작했다. 그리고 한국 인쇄소에 주문해 영국에서 엽서를 받았다. 영국에선 엽서 제작 기간이 3개월이나 걸렸고 비용도 더 비쌌다. 지인들은 영국에서까지 무슨 엽서냐고 했지만 그는 도전했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엽서를 통해서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소중한 작업이었다. 복음의 서진을 향한 사역을 열어준 엽서 판매, 그리고 가는 한인 교회마다 디자인 로고도 제작하게 되어 축복의 통로가 된 엽서였다.

# 열방 네트워크로 하나되는 선교

▲ 그가 33개 나라를 돌며 교회와 선교단체들에게 만들어 준 로고작업들
한 번 나가기도 쉽지 않은 비전트립.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그 곳에 있는 것들을 마음에 담고 또 그려내는 이준천 씨. 자기의 비전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공유하며 열방을 품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이준천 씨.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하나님께 오직 기도하며 구하며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서원했다. 열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나의 그림과 디자인을 어떻게 창조하고 어떻게 전할 것인지 알려달라고 기도했다. 디자이너이기 전에 복음을 전하는 자임을 잊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래서 선교 네트워크(http://alltheheavens.com)도 구축했다. 두루두루 다니며 쌓인 교회들이 자연스레 네트워크가 되었다. 실시간의 기도제목과 상황들을 공유하며 어디에서나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을 이용해 온 세계에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쓰일 수 있는 네트워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예수님의 흔적을 찾아가는 비전트립. 그 일을 찾아가고 실천한 이준천 씨. 세계 곳곳의 선교사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그가 비전트립으로 또 한 가지 얻은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지구별을 너무 사랑하시고 교회를 세우는 원리는 어느 곳이나 다 똑같다는 깨달음. 그리고 오지 산속에서 도시까지 한인 디아스포라의 힘을 발견했다. 무너져가는 서구권의 교회를 일으키고 아무도 없는 안데스 산 위에서 혼자 기도하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한인들이 전세계에서 역동하고 있었다. 이민자가 아닌 우리가 보낸 선교사고 함께해야 할 동역자라는 것을 느꼈다.

지구별 곳곳을 밟으며 열방을 품게 된 이준천 씨.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그의 뜨거운 비전트립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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