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부르에서 만난 깔뱅, 피난민 돕는‘디아코니아’전개
상태바
스트라스부르에서 만난 깔뱅, 피난민 돕는‘디아코니아’전개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1.10.26 17: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교개혁의 발상지 독일에서 ‘디아코니아’의 길을 찾다 <중>

뷔르템베르크 주교회 봉사국 신학적 기초 담긴 ‘자원봉사훈련’
프랑스 ‘소망협회’ 노숙인 자립 돕는 되살림 작업장 운영 눈길

한국 교회를 하나로 모으는 방법은 이제 ‘섬김’이 유일하다. 한국교회희망봉사단은 11개 교단 및 3개 연합봉사단체를 모아 ‘한국교회사회봉사공동기획단’을 조직하고 독일과 프랑스 지역 ‘디아코니아’ 현장을 탐방하고 돌아왔다. 연합과 자립, 그리고 조건 없는 섬김으로 상징되는 유럽 교회의 디아코니아는 한국 교회에 많은 과제를 던져주었다. 그리고 ‘디아코니아’는 종교개혁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편집자 주>

종교개혁을 실질적으로 확장시킨 주인공 ‘구텐베르크’의 동상이 있는 스트라스부르의 한 공원.
한국교회사회봉사공동기획단이 세 번째로 향한 곳은 옛 독일령이었던 알자스 로렌지역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였다. 지금은 프랑스 땅인 이곳은 종교개혁자 ‘깔뱅’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아침 일찍부터 성 도마교회와 방패교회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작은 프랑스’라 불리는 이곳 스트라스부르는 구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아름다운 거리 풍경도 인상적이었지만 사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깔뱅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었다.

일행이 처음으로 찾은 곳은 ‘부클리에’(방패교회)로 이곳은 프랑스 개혁교회 1호이자, 깔뱅이 목회한 첫 교회이기도 하다. 종교개혁에 나선 깔뱅은 제네바에서 성경교사이자 목회자로 사역을 하던 중 추방령을 받아 프랑스 남부로 피신을 온다. 그를 불러들인 이는 스트라스부르의 종교개혁자 마틴 부처(Martin Bucer). 부클리에 주변에서 마틴 부처의 생가와 깔뱅이 재세례파 미망인과 결혼해 살던 신혼집을 볼 수 있었고, 방패교회에서 깔뱅의 종교개혁 사상을 읽을 수 있었다.

방패교회를 소개한 크리스티앙 크리거 목사(알자스 로렌지역 개혁교회연합 소속)는 “당시 많은 프랑스 개신교도들이 왕의 핍박을 피해 프랑스를 떠났고, 당시 독일령이었던 스트라스부르에 정착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독일에서 프랑스 피난민 교회를 이끌 목회자가 없었던 것. 마틴 부처는 깔뱅에게 프랑스 피난민 교회 목회를 부탁했다. 깔뱅이 이곳에 머물렀던 시기는 1538년부터 1541년까지 3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룬 종교개혁의 역사 중 상당한 결실을 이곳에서 맺게 됐다. 깔뱅은 개신교 신학교에서 요한복음을 강의했고, 시편과 로마서를 번역했으며, 기독교강요를 다시 출판했다. 스트라스부르에서의 3년이 그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전해진다.

# 깔뱅의 디아코니아 사역

깔뱅의 역사가 숨쉬는 방패교회는 알자스 로렌 지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다. 크리거 목사는 “15년 전 900명의 성도였던 교회가 지금은 300명이 더 늘었다”며 “이곳에서는 여성과 어린이를 대접하는 디아코니아를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패교회는 이웃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고, 비기독교인과 문화로 접촉하고 있었다.

일행의 눈에 들어온 방패교회의 모습에서 깔뱅의 종교개혁 정신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말씀에만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성전 앞쪽에 설교단이 세워져 있고, 뒤편에는 파이프 오르간만 달려 있다. 교회에는 어떠한 장식도 없었다.

성 도마교회 부설 도서관에서 16세기 깔뱅의 원서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도서관에는 총 8만 권에 이르는 개혁교회 서적들이 남아 있다. 프랑스 정부가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기도 하다.
또 오늘날 교회가 엄격한 법적 규칙을 적용하는 것과 달리 깔뱅은 상당한 융통성을 보였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목사, 장로, 교사, 집사 등 4개 직분을 세우고 만인제사장제도를 실천한 깔뱅은 스트라스부르로 온 피난민을 위해 봉사자를 모집해 그들에게 집사직을 주고 디아코니아 책무를 맡겼다. 기독교인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았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 것이 그에게 최우선이었던 것이다.

종교개혁 당시 “개신교도들은 부자가 되고 싶다면 돌아오라”는 교황의 명이 있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가난’을 추구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죽음과 부활을 믿었고, 목숨을 바치는 박해를 각오했다. ‘성장과 번영’을 추구하는 한국 교회가 ‘가난과 경건’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프랑스어 통역을 맡은 김선권 목사(스트라스부르대학 선교신학부 박사과정)는 “깔뱅은 영혼구원의 열망과 함께 개신교도들의 삶이 가정과 직장 등에서 거룩하게 완성되기를 바랐다”며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았던 디아코니아 사명은 깔뱅의 신학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또 “깔뱅은 ‘가난한 자는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말을 했다”며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웃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기획단은 스트라스부르 성 도마교회와 부설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도마교회는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개신교 기숙사에서는 슈바이처의 흔적도 만날 수 있었다. 도마교회는 예배실 의자가 절반으로 나뉘어 있고, 가운데 설교단이 세워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 귀족과 평민이 반씩 나눠 앉아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종교개혁은 받아들여졌지만 그것이 신분철폐를 이끌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수확도 있었다. 성 도마교회 부설 도서관을 찾은 일행에게 깔뱅의 기독교강요와 사도행전 주석 등 당시 원본을 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도서관에서는 마침 카탈로그 작업을 위해 깔뱅의 원서를 꺼내놓고 있었다. 기독교강요 불어판과 로마서 주석, 히브리서 주석 등을 본 일행은 감탄을 멈출 수 않았다. 500년 전 종교개혁 시대의 산물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는 사실은 무척 감격적이었다.

성 도마 부설 도서관은 깔뱅의 원서 30권과 루터의 16세기 원본 100권, 마틴 부처의 책 100권 등 총 8만 권의 개혁교회 관련 서적을 소장한 곳이다. 도서관 자체가 프랑스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 직원의 말에 더욱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 노숙인에게 희망을 ‘에스쁘아’

프랑스령인 스트라스부르 ‘소망협회’의 되살림 작업장과 재활용품 매장. 이곳에서는 연간 100만 유로의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이를 통해 매년 160명 이상의 노숙자가 자립한다
스트라스부르에서 깔뱅과 부처의 종교개혁 역사를 만난 일행은 이어 스트라스부르 외곽에 있는 ‘소망협회(espoir)'로 이동했다. 소망협회는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는 곳이다. 40년 전 창설된 소망협회는 연간 160명 이상의 노숙인을 돕는다.

막연히 일시적 자립을 돕는 것이 아니다. 숙식을 제공하고, 가족들이 있는 노숙인에게는 살 집을 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립의 첫 요소인 ‘일자리’를 제공한다. 스스로 돈을 벌고, 집을 구해나가는데 3개월에서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지금도 80명이 공동 주거단지에 거주하고 있다.

자원봉사자와 함께 둘러본 소망협회는 지역 재활용품을 수거해 되살림 작업을 하는 곳으로 가구, 자전거, 의류, 가전 등을 수리하고 헌 제품을 새 것처럼 만들어 소비자에게 내놓는다. 버려지는 물건은 연간 1천 톤. 금속과 나무, 의류를 분류하고 이 가운데 94%를 되살린다. 이 일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연간 100만 유로. 노숙인들의 자립이 가능한 이유다.

이곳에서 일한 지 2년째라는 다우렘 무수아 씨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노숙자였지만 이 곳에 와서 집도 구하고 가족도 생겼다”며 “소망협회가 자립할 길을 열어주었다”고 말했다.

협회만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는 것은 아니다. 수입의 60%는 스스로 벌고, 나머지 40%는 국가에서 보조한다. 중요한 것은 재단의 설립 목적. 소망협회는 매흐나 호든슈타인 목사가 창시했지만 교회나 국가와 별개로 운영되는 사설재단이다. 따라서 종교적 강요는 절대 없다. 그저 창시자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조건 없이 노숙자들을 섬긴다.

자원봉사자 삐에 씨는 “재활이 우리의 목적”이라며 “종교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할 뿐”이라고 전했다.

마치 아름다운 가게를 연상시키는 되살림 매장은 수십 명의 고객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예장 통합 사회봉사부 이승렬 총무는 “유럽은 재활용 문화가 확산되어 있어 소비에도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자녀들과 함께 쇼핑에 나선 아이다 씨는 “규칙적으로 일주일에 한 두번 이용한다”며 물건의 질이나 가격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호든슈타인 목사가 철도역을 돌며 노숙자들과 함께 생활한 지 40년, 그렇게 애달픈 사랑으로 시작한 소망협회는 이제 매년 160명 이상의 노숙인을 사회로 돌려보내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며 스트라스부르를 대표하는 커다란 디아코니아 재단으로 성장해 있었다.

# 자원봉사자 양성은 교회의 몫

독일 교회 안에 3만 개의 디아코니아 시설이 있고, 이곳에서 40만 명이 일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자원봉사자들이 디아코니아신학을 바탕으로 양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이동한 곳은 바델-뷔르템베르크 주였다. 뷔르템베르크 주교회 기독교사회봉사국(Diakonisches Werk)은 하나의 등록된 봉사단체로 자체 직원만 200명이 넘고, 1천 여개의 산하 시설에 4만 명 이상이 일하고 있다. 이 가운데 3만 명은 자원봉사자들이다.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아 디아코니아신학을 바탕으로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뷔르템베르크 주교회 기독교사회봉사국.
규모만큼 사역도 방대했다. 뷔르템베르크 주교회 기독교사회봉사국은 청소년복지,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실직자 및 노숙자, 외국인 망명자들을 돕는 사역 등을 펼치고 있었다. 주교회 봉사국이 일행에게 중점적으로 소개한 것은 ‘자원봉사자 양성’. 자원봉사부서 담당자 홈멜 씨는 “연간 1천여 명 이상의 청소년들이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며 “해외에서도 매년 50명 정도의 자원봉사자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무엇을 배울까. 홈멜 씨는 “최소 6개월에서 18개월까지 머물면서 여러 종류의 사역을 배우게 된다”며 “전문 직업훈련을 받기 전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취업과 진로 결정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뷔르템베르크 주교회의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정부의 공적 기금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참여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있어 고민이다.

홈멜 씨는 “청소년 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자원봉사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며 “청소년들은 그들에게 맞는 자원봉사를, 실업자나 전업주부, 질병을 경험한 사람 등 성인들에게는 그들의 특성에 적합한 사회활동과 봉사를 제공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자원봉사는 한국 교회도 관심을 갖는 부분이다. 최근에는 중고등학생들에게 봉사점수가 가산되면서 교회에 속한 복지시설에서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나 주교회 기독교사회봉사국의 체계화된 자원봉사 훈련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신학적 틀을 갖춘 자원봉사를 가르치고 있나’ 회의가 들었다. 봉사자를 배출하고 사회복지 기관을 세우지만 그것이 ‘디아코니아 신학’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승렬 목사는 “디아코니아신학은 한국에서 아직 확산되지 않았다”며 “신학교와 교회에서 디아코니아신학을 가르치고 배우며, 그에 걸맞는 섬김의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과 프랑스를 오가며 디아코니아 시설을 둘러본 지 엿새 째, 기획단은 독일 교회의 ‘디아코니아’는 연합과 자립에 초점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수혜자’ 중심의 사역은 독일이나 프랑스 모두 동일했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권리’, 그들은 그것을 존중했다. 교회의 연합적 사역과 디아코니아신학을 바탕으로한 체계적인 봉사훈련까지 바델-뷔르템베르크에서 디아코니아는 한국 교회의 사회봉사가 달라져야 한다는 과제를 던졌다.

그러나 이런 충격은 시작에 불과했다. 또 하나의 디아코니아 시설 ‘구스타프 베르너 재단’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혁교회의 ‘디아코니아’가 독일을 복지국가로 끌어 올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기획단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구스타프 베르너 재단의 문을 두드렸다.

<바델-뷔르템베르크=이현주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