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494주년, 종교개혁자들의 ‘주된 관심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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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494주년, 종교개혁자들의 ‘주된 관심사’는?
  • 표성중 기자
  • 승인 2011.10.1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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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절대적 ‘은총’,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통한 인간의 구원에 집중

▲ 종교개혁의 불씨는 새로운 교회 개혁 운동으로 발전돼 영국과 스코틀랜드, 독일, 네덜란드 등지로 확산됐다. 사진은 플랑드르의 판화(1566년)로써 칼빈주의자들이 가톨릭 교회의 상을 부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자세는 완전한 수용ㆍ교회의 사명에 충실해야
신약교회의 순수한 신앙 회복 위해 ‘말씀’의 권위 세우는 노력 필요

오는 30일은 ‘종교개혁주일’이다. 지난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채교회 예배당 문에 95개 조항을 붙이면서 시작된 종교개혁이 올해로 494주년을 맞이했다. 종교개혁자들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절대적 믿음으로 교회 개혁을 주도했다. 오늘날 후대 신학자들이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윤리 등 다양한 각도에서 그들의 삶과 신앙을 조명하고 있지만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이 갖고 있었던 결점과 죄,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오점들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 구원의 중대한 가능성을 명확히 파악했다는 점이다. 특히 그들은 교회, 예배, 목회, 영성생활, 윤리 등에 대한 다양하고 위대한 영적 가르침을 후손들에게 남겨줬다.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많은 지탄을 받으며 ‘개혁’을 요구받고 있는 한국 교회. 종교개혁자들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본다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 <편집자 주>

# 은혜에 대한 갈망 - 마틴 루터(1483~1546)
루터가 삶에서 힘겹게 투쟁했던 부분은 바로 ‘하나님의 의’에 대한 개념이었다. 유년시절 지녔던 경건은 그로 하여금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엄격한 심판을 심각하게 의식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바울 사상을 연구하면서 맞닥뜨린 로마서 1장 17절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의’는 그를 고뇌 속으로 몰아넣었다.

사실 루터는 하나님의 요구란 계명들 속에 계시되어 있는 율법에 외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뛰어넘어 마음의 순수성, 내적 동기와 의도에까지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해 ‘은총’ 그 자체는 하나의 요청이며 가혹한 요구라고 결론짓기도 했다.

특히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기독교인의 순종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자발적인 행동에 의해 복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강요에 의한 복종을 받는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루터는 내적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선물. 즉,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래서 묵상의 글에서 “나는 다시 태어남을 체험하고 활짝 열린 천국문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은총으로서의 구원에 대한 루터의 사상은 프로테스탄트주의의 새로운 신학 체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은총으로서의 구원은 그에게 있어서 복음의 중추였다. 즉, 구원은 기본적으로 은총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개념에서 고려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값없이 용서하시는 자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표명된다는 것이다.

루터는 용서받고 씻음 받은 양심은 평화를 누릴 수 있으며, 죄책의 짐에서 벗어난 영혼은 즐겁고 자발적으로 창조적인 복종의 자세로 하나님께 봉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독교 생활에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자세는 완전한 수용의 자세라고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인간을 사랑하시고 죽음에서까지 지탱해 주시고, 다시 생명으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성격에 대한 그의 영적인 통찰은 삶에서 겪었던 수많은 논쟁의 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 하나님께 영광 - 요한 칼빈(1509~1564)
프랑스인 신학자이며 교회정치가였던 칼빈. 그가 제시한 신학적, 교회적, 정치적 관념들을 비롯해 제네바시에서 창조하고 지도한 모범적인 교회, 그리고 몇몇 나라의 정치적, 지성적 지도자들에게 제공한 조력은 유럽의 많은 지역들과 북아메리카에 있어서 프로테스탄트주의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칼빈의 전 생애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의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사역했으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만을 위해 살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제네바 개혁에 참여한 것은 칼빈에게 있어서 거의 숙명적이었다. 칼빈은 재능을 필요한 곳에 사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재앙을 받을 것이라는 파렐의 간곡한 부탁에 공적인 성서강해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교회 법규를 만들어 교회개혁을 추구했다. 가르치는 박사, 설교하는 목사, 징계하는 장로, 자선의 관리를 맡는 집사 등 목회의 네 직분의 틀을 세웠다. 박사들에게는 성서를 원어로 연구하면서 기독교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참된 뜻을 발견하도록 했다. 목사들은 도시의 교구 교회들의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성례를 집례토록 했다.

장로들에게는 주민들이 복음 선포를 받아들이며, 그것을 신앙과 행동의 지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집사들은 자선을 위해 지정되는 기금들을 모금하고, 보존하며 그것들을 고아와 과부, 노인 및 기타 자활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돌보는데 사용함으로써 교회 공동체의 사회적 의무들을 이행하도록 했다.

칼빈은 자신이 세운 목회의 네 직분 모두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박사로서의 연구와 가르침뿐만 아니라 목사로서 강단에 서서 지속적으로 설교했으며, 죽을 때까지 교구의 과제들을 할당하며 정규적인 업무들을 확정하는 일을 했던 ‘목사회’에서 사회자로 활동했다.

장로들의 활동에도 몸소 참여했다. 당시 장로들은 종교개혁기의 ‘경찰관’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들은 보통 시의회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의회는 칼빈이 속해 있었던 ‘목사회’와 상의하며 장로 후보자 명부를 작성하기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치활동까지 하게 됐다.

또한 제네바에 온 종교적 피난민들 중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도 깊이 참여했다. 집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종합구호소에서 많은 부유한 프랑스인 피난민들과 함께 가난한 동포들을 구제할 기금을 마련하는 일을 도왔는데, 그 기금은 프랑스의 금고라고 불리기도 했다.

# 인간의 전통보다 오직 성경 - 울리히 츠빙글리(1484~1531)
츠빙글리는 성경적인 신학자였다. 인문주의 학교와 대학교들에서 스콜라주의 계통을 따랐던 츠빙글리는 1518년 이후부터 취리히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곳에서 성경을 책별로, 장별로 강해했다. 당시 산상수훈이 담겨 있어 인문학자들이 좋아했던 마태복음을 시작으로, 원시 교회 안에서 교회가 추구해야 할 도식을 찾아볼 수 있는 사도행전을 강해했다.

이후 바울의 가르침을 알기 위해 갈라디아서와 디모데전후서를, 그 다음으로는 베드로와 바울이 어떻게 일치했는지 보기 위해 베드로전후서를 강해했다. 결국 1525년에 이르러서 신약성서 전체를 설교했다.

비록 종교개혁은 오래전부터 시작됐지만 그의 설교는 처음부터 신선했고 새로운 관념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예배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루터가 교회의 교리와 복음 사이의 모순 대립점들을 성경을 통해 종식시키려고 노력한 반면, 츠빙글리는 가능한 힘껏 원시적으로 가장 단순한 기독교 교회의 상태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신학은 체험적이라기보다 성서적이었다.

종교개혁 운동권 내에서 급진주의자들과 대면해야 했던 그는 오직 성서를 굳게 의지했다. 츠빙글리는 신약성서가 말하는 원시적 교회, 순수한 오염되지 않은 교회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의 방향을 바꾸려하기보다는 그것들을 심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성서주의의 영향 때문에 그가 주도했던 종교개혁은 보다 급진적인 것이 되기도 했다. 초기 기독교를 사장시켜버린 교회의 후대 성장 가운데서 츠빙글리가 특히 혐오했던 것은 ‘피조물 숭배’였다. 츠빙글리에게 있어서 종교개혁은 본질적으로 우상숭배로부터 참되신 한 분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의 운동이었다.

특히 미술이나 음악 등 인간의 전통이 담겨 있는 피조물들을 과소평가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피조물들이 창조주에 대한 지성적인 접근을 방해할 때 과감히 ‘파문’에 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와 같이 츠빙글리는 인간의 전통보다는 성경에 집중했다.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강조했다.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조했으며, 마태와 마가, 누가, 요한이 기록한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계시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정의했다.

즉,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이 가시적 교회의 역사적인 한계에 제한되지 않는 것과 똑같이 그 분의 말씀도 기록된 표현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츠빙글리의 이와 같은 생각은 결코 성경의 권위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의 궁극적인 근원이신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를 뒷받침해줬다.

“복음중심의 교회개혁은 계속 이어진다”
종교개혁 신학과 신앙의 연속성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이미 지나간 과거다. 그러나 성령운동으로서의 종교개혁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영속적인 의의를 갖는다. 종교개혁자들이 자기 시대의 영적 위기들을 다루기 위해 성경과 초대교회로 되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음을 발견한 것처럼, 오늘날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 시대에 선포하려고 할 때 종교개혁의 위대한 주제들을 중심에 둘 필요가 있다.

# 주권과 기독론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주제는 종교개혁자들의 활동에 철저하게 나타난다. 종교개혁의 주요 교리인 선택 혹은 예정은 인간 구원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명쾌한 증거로써 두각을 나타냈다. 개혁자들은 이 가르침 속에서 자기 의라는 견딜 수 없는 부담으로부터 엄청난 해방을 발견했다.

그들은 인간 존재란 죄에 깊숙이 사로잡혀 있어서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만으로 자유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특히 하나님은 구속에서뿐만 아니라 창조에 있어서도 주권적 주님이 되심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개혁자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우월성과 절대적 권위에 대해 강조했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추상적 혹은 형이상학적으로는 이해하지 않았다. 특히 하나님의 주권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존재에서 한정되고 구체화됐다.

개혁자들 나름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모든 개혁자들은 신학이 그 자체에 진실한 한에서 하나의 진정한 기초인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출발점과 최종목표 모두를 발견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 성경과 교회론
개혁자들은 말씀과 성령의 상호연관을 주장함으로써 개인적 종교 경험을 객관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보다 우위에 두었던 신비주의자들로부터도 이탈했다. 종교개혁적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신실한 자들의 회중이며, 성도들의 교제로써 주님을 향한 순종적 봉사를 통해 세상에서 그 말씀을 증거한다.

종교개혁자들의 취지는 신약성경적 교회 개념으로 되돌아가는 것, 다시 말하면 성경적 표준과 일치시켜 당대의 교회를 정화해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개혁자들은 성경해석의 거장들이었다. 그들의 날카로운 신학적 작품들은 설교와 성경주석에서 발견된다. 기독교 교회의 선언은 철학이나 다른 세계관에서 끌어낼 수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성서 해석에 힘을 쏟았다. 성경을 하나님에 관한 생각을 단순히 기록한 것으로써가 아니라 인간에 관한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에 대한 요구와 약속을 담아놓은 그릇으로 보았다.

# 예배와 영성
교회사에 걸쳐서 기독교 교리의 발전과 기독교 예배의 관행 사이에는 강력한 상호작용이 있었다. 16세기에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에 대한 새로운 강조는 중세 예전의 개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개혁자들의 의도는 예배를 통속화하기보다 일상생활을 거룩케 하는 것이었다. 기독교인은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감사로 채워야하기 때문이다. 세례와 성만찬에 대한 개혁자들의 해석은 비록 달랐고 종교개혁에 있어서 많은 논쟁을 낳았지만 배울 점을 많이 남겨주기도 했다.

특히 오늘날 임재의 신학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성만찬의 시행은 자리에 없는 주님을 추모해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엄숙한 의식을 압도한다. 성찬을 받을 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와 그의 죽음의 은택들을 영적으로 받아먹을 수 있다. 따라서 보다 빈번하게 성만찬을 시행했던 관행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또한 기독교 예배에서 말씀과 성례전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 윤리적인 삶
종교개혁 신앙의 관심은 종교적 혹은 영적인 분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 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주권적 하나님께서 인간의 전인격적 존재 즉, 몸과 영과 마음, 그리고 본능과 사회 및 정치 관계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루터에 따르면 참된 믿음은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살아 활동하는 것이다. 이웃에게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주어야 할 기독교인의 책임을 결코 망각하지 않은 것이다.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무대’가 되는 세상에서 세속의 신성함을 추구하며 기독교 사회윤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츠빙글리와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무대인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 개혁하려고 했다.

신약과 교부 시대의 원시교회로의 회귀를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은 본질적으로 전방주시적 운동이었다. 교회는 거룩한 사회, 곧 구원받은 죄인들의 공동체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총의 복음 위에 세워졌고,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세상에 보내져서 그리스도의 절대명령을 갖고 증거하고 봉사함으로써 세상과 대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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