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하나 둘러메고 떠났다가 예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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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하나 둘러메고 떠났다가 예수를 만나다
  • 공종은 기자
  • 승인 2011.08.24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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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영광교회의 특별한 수련회

중고등학생 50여 명 원주에서 서산까지 무전 배낭여행
내년엔 ‘지역 교회와 불신자들이 함께 하는 여행’ 계획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마가복음 6장 8절).

어쩌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무전여행의 달인이었는지도 모른다. 며칠, 아니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를 전도여행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친히 명하셨다. 그야말로 땡전 한 푼 없이 떠나야 하는 무전여행이었다.
 
‘배낭여행’. 그것도 무일푼으로 떠나는 ‘무전(無錢)여행’. 요즘 무전여행의 추억을, 그 힘든 즐거움을 아는 중고생들이 몇이나 있을까. 한번쯤 들어는 봤음 직 한 배낭여행. ‘수십 년 전에 했던 일’로 어른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무전 배낭여행을 안산 영광교회(담임:정덕훈 목사)가 이번 여름 되살려냈다.

#가나안농군학교에서 시작된 기도회

처음, 배낭여행을 계획했을 때 정 목사는 망설였다. ‘요즘같이 아쉬운 것 없는 때에 그리고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들이 과연 참여할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하지만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수 1:6)는 말씀을 붙들었다. 학생들 또한 이 말씀을 의지했고, 기꺼이 자원했다.

그렇다고 무전 배낭여행이 그리 쉬울까. 말 그대로 배낭 하나만 메고 떠난 여행이었다. 출발지도 교회가 있는 안산이 아닌 원주였다. 가나안농군학교. 영광교회는 배낭여행을 떠나기 전 여기서 3일 동안 영성집회를 가졌다. ‘전 교인 수련회’였다. ‘무엇보다 먼저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정 목사의 생각에서다.

월요일부터 사흘 동안 진행된 영성집회는 그야말로 성령의 도가니였다. 학생들과 부모 등 교회 식구 1백여 명 모두가 한마음으로 성령의 임재를 간구했고, 오히려 무전 배낭여행은 뒷전이었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간절한 절박함으로 매달렸다.

사흘 내내 정 목사가 집회를 인도했다. “강하고 담대할 것, 믿고 구할 것, 영성으로 충만할 것”을 당부했다.

사흘 후. 중고생 50여 명으로 구성된 무전 배낭여행팀은 엄마 아빠의 품을 떠났다. 그렇다고 프로그램이 여행으로만 짜여진 것도 아니었다. 좋은 걸 먹고 좋은 데 구경하는 여행이 아니었다. 말이 여행이지 고행이나 다름없는 길이었다. 누구 하나 반겨주는 사람 없는 길. 걸어서만 가야 하는 길, 그 길이 무전 배낭여행이었다. 거기다, 기도하는 여행이었고, 말씀을 묵상하는 여행이었다. 이런 여행을 누가 좋아하랴. 하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엄청났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 굶고 히치하이킹하면서 서산으로

하지만 부모 품에서 자랐던 중고등 학생들에게 돈 없이 떠나는 여행은 한편으로는 두려움. “떨리고도 두근대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때며 가나안농군학교 산길을 내려오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고 1 김재혁 군의 고백이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히치하이킹을 하면 진짜 차가 설까?’ 두려움과 염려가 엄습했다. 김 군은 “산을 내려와 버스 정류장에서 쉴 때부터 지친 내 모습에 막막함이 밀려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것이 아이들이 접한 무전 배낭여행의 시작이었다.

목적지는 서산. 토요일까지 걸어서 서산에 도착해야 했다. 50여 명의 중고등학생들이 배낭 하나 둘러메고 떠났다. 하지만 이들에게 지급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배낭 안에는 갈아입을 옷가지와 세면도구, 성경이 전부였다. 오히려 가지고 있던 휴대폰마저 모두 압수당했다. 비상상황과 연락을 위해 팀장에게만 한 대가 지급됐다. 그야말로 돈 없고 연락할 길 없는 막막한 길을 걸어야 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길이었다.

이들이 무전 배낭여행을 떠난 것은 폭우가 한창 한반도를 휩쓸던 때. 가야할 길이 순탄치 않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첫 목적지는 여주 도자기박물관이었다. 억수 같은 폭우가 쏟아졌다. 우산으로는 어림없었다. 그래서 우비를 입었다. 세차게 길을 막아서는 폭우를 뚫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전투를 치르듯이 걸어서 걸어서 서산으로 향했다. 먹는 문제는 기도로 해결했다. 기도하다 먹을 것을 주시면 먹었고, 주지 않으면 굶었다. 굶기를 한 끼 두 끼... 평소엔 관심도 없던 길거리 음식들이 눈앞에서 맴돌았고 신기한 장난감에 정신 팔린 어린아이마냥 음식점 앞에 멍하니 서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평생 한번 타보기 힘들다던 벤츠도 타보았다. 에쿠스의 안락함에 몸을 묻기도 했다. 냇가를 끼고 있는 다리는 무전 배낭여행자들에게 훌륭한 안식처가 됐다. 비를 피하는 것은 물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시원한 공간과 물까지 제공하는 곳이었다. 이천에서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도 이 다리 밑에서 피했다.

첫째 날 잠자리는 근처 은혜로교회. 교회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묵묵부답. 굳게 잠긴 교회문은 열리지 않았다. 지친 걸음을 돌려 다른 교회를 찾았지만 허사였다. ‘오늘은 거기서 자야 한다’는 결심으로 다시 은혜로교회의 문을 두드렸다.

얼마나 더 두드렸을까. 기적같이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눈물같은 라면과 건빵이 선물처럼 주어졌다.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미션게임에서 상금으로 받은 2만 원을 모아 헌금을 했더니 오히려 목사님이 용돈으로 3만 원을 주셨어요.” 한순간 한순간이 하나님의 돌보심과 은혜로 이어졌다. 이렇게 이천에서의 하루가 저물었다.

#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 감격

도움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다가왔다. 둘째 날, 죽산터미널. “친구 영재랑 전도사님이 음식을 사러 가고 우리는 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음식을 사러 간 두 사람의 손에 들린 음식을 보고 우리는 너무 놀랐어요. 그 양이 엄청 많았기 때문이에요.” 김지원 양(고 1)의 이야기다.
 

두 사람이 들고 온 음식은 모두 공짜로 얻은 것. 닭고기가 먹고 싶어 기도했더니 닭고기를 얻었고, 흰쌀밥에 김치, 고추까지 덤으로 따라왔다. 그런데 진수성찬에 비해 먹을 곳은 형편없었다. 길거리 식사를 해야 했다. 사방이 훤하게 뚫린 다방 앞 길거리에서 식사 준비를 할 때쯤 구세주가 나타났다. “여기서 먹지 말고 다방에 올라가 먹으라”는 사장님의 말이었다. 마치 천사의 음성 같았다. 무더위와 창피함을 피했다는 것만도 고마운데 시원한 미숫가루까지 배부르게 마셨다.

이런 일들을 통해 학생들은 세심하게 살피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직접 경험했다. 그렇다고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무전 배낭여행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일들도 허다했다.

“히치하이킹을 위해 아무리 기도하고 춤을 추면서 걸어도 서는 차들은 없었어요. 다른 조들은 두 번 세 번씩 잘도 차를 잡는데 우리는 한번도 못 잡았어요. 겨우 차를 잡아도 목적지가 달라 금방 내려야했고, 우리는 계속 걸어야 했어요.”

교회라고 이들에게 모두 문을 열어준 것은 아니다. 아무리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고, 아쉬움에 발길을 돌려야했다. 더위에 지쳐서 겨우 먹은 음식마저 토하기도 했고, 몸살에 시달리며 내리쬐는 뙤약볕과 강한 빗줄기를 맞아야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치지 않았다. 실망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무릎을 꿇었다. 성경을 펴고 말씀을 묵상했다. 거기가 어디든 일이 풀리지 않으면 주저앉아 기도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됐고 조력자가 나타났다.

이런 은혜를 체험하며 50여 명은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서산에 도착했다. 모두 의기양양했다. ‘나를 이겼다’는 자신감이 넘쳤고, 무엇보다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는 감격이 온 몸을 감쌌다.

무전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아이들의 기도가 변했다. 김재혁 군(고 1)은 “‘이거 주세요. 뭐 해주세요’라고 했던 기도가 이제 ‘감사하고 감사합니다’로 바뀌었고, ‘나와 함께 해주세요’로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김지원 양 또한 “나를 이렇게 변하게 해주고 17년 만에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등 돌렸던 세월을 다 갚고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영광교회는 내년에도 무전 배낭여행을 할 계획이다. 그런데 판은 더 키울 생각이다. 인근의 교회들이 함께 동참하는, 그리고 믿지 않는 아이들까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모두가 함께 하는 무전 배낭여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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