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에겐 아직 해방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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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에겐 아직 해방이 오지 않았다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1.08.1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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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침묵과 무시 가운데 이제는 70여 명만 남아

▲ 지난 10일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 참여한 노수복(왼쪽), 길원옥(오른쪽) 할머니.
“한국 사람인데 한국말을 못해 가슴이 메입니다. 오늘도 오면서 태극기를 바라봤는데 메인 가슴에 태극기가 와 닿습니다.” 목이 갈라져 메이는 탁한 목소리.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아 말을 못하겠다던 노수복(90세) 할머니는 아주 조금씩 말을 이어 나갔다.

지난 13일 정대협 주최로 개최된 ‘제10회 아시아연대회의’에 참석한 노수복, 송신도 할머니가 다시 조국을 찾은 것은 죽기 전에 할 말은 다하고 죽고 싶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비롯됐다.

21세의 꽃다운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간 노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그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치와 고통을 당하며 우리말도 자신의 생일도 잃어 버렸다. 잊지 않았으면 이미 죽었어야 했던 자신의 운명 때문일까.

묻어버렸던 기억의 흔적을 더듬어 올해로 고국을 세 번째로 방문한 노수복 할머니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 할 만큼 쇄약한 몸을 이끌고 지난 10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열리는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여했다. 이어 11일에는 국회를 방문해 최영희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을 만났다.

노 할머니의 생일은 8월 15일이다. 태평양 전쟁은 끝났지만 일본군 위안부로 버려진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그는 대한민국 독립일을 자신의 생일로 택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 정부에서 지급되는 지원금을 쪼개어 극히 작은 금액만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남은 금액은 모아두었다가 이번에 도호쿠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재일 조선인학교에 5만 바트(한화 180만 원)를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해 수술로 한쪽 폐마저 잘라낸 노 할머니가 적지 않은 금액을 전하는 데는 교육으로 국력을 키워 다시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노 할머니의 집은 태국. “경북 안동에서 1921년에 태어났는데 1942년 부산 영도다리 근처에서 빨래하던 중 21세의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다. 3년 동안 싱가폴, 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지냈다. 1945년 유엔군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탈출해 태국에서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같은 날 아시아연대회의에 참석한 송순도 할머니는 1998년에 조국을 방문한 이후 14년 만에 조국 땅을 다시 밟았다. 송 할머니의 등에는 70여 년 전 일본군 칼에 찔린 상처가 있다. 지난 세월 일본군 위안부로 지낼 때 생겨난 상처다.

“억울한 심정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일본 정부를 깨우치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매일매일 일본국회의 행보를 살피는데 이건 말이 안 됩니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정부든 사람이든 마음과 정이 필요합니다. 전쟁 중이라도 사람을 속이고 차별하고 식은 죽 먹듯 죽였던 당시 일본의 잘못된 행위를 깨우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방문하게 됐습니다.

이런 제 경험과 저의 방문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전에 야당이었던 일본 민주당이 자민당을 대신해 정권을 잡은 지 3년이 흘렀습니다. 지난 야당 시절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그 약속이 반드시 지켜지길 바랍니다.”

이날 노수복 할머니가 전달한 5만 바트의 성금은 일본 북동부 지진 피해를 입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에 전달됐다. 행사에 참여한 몽당연필 권해오 공동대표는 “이 성금은 그냥 돈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며 “돈 이상의 깊은 의미를 지닌 성금을 소중히 받아 전하겠다”고 말하며 노 할머니의 손을 꼭 붙들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자회견 후 정대협 윤미향 상임대표는 “당시 일본군에게 끌려간 위안부들의 평균 나이는 11세에서 21세다. 끌려간 곳에서 위안부로 지낸 기간은 만주전쟁에서부터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적게는 1년에서부터 많게는 15년까지 이어졌다”고 밝혔다.

반세기 가량 그들은 숨을 곳을 찾아 헤맸고 그 이상의 세월을 그냥 침묵으로 흘려보냈다.

잊고 싶은 기억 속에 자신들은 짐승보다 못했던 존재라는 사실은 아직도 상처로 남아 할머니들의 가슴에 아로 새겨져 있다.

윤 대표는 “이제 할머니들께 필요한 것은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죄이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존엄과 인권 회복에 대한 확실한 약속”이라 말하며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 13일 제10차 아시아연대회 기자회견에 참석한 송순도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억울한 심정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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