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뽑기는 '권리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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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뽑기는 '권리남용'
  • 승인 2002.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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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라는 말이 있다. 자기 것을 어떻게 사용하든지 권리자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권리를 행사하여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탓 할 일이 없다. 그러나 자기 권리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든지 다른 사람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게 되면 그것은 권리남용이 된다.
‘이웃집의 일조(日照), 통풍(通風)을 고의로 방해하기 위한 건축은 비록 권리의 행사지만 정당한 권리의 행사가 아니라 권리의 남용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내려졌다. 이것은 비록 권리의 행사라 해도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치는 때는 경우에 따라서 권리남용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그후 독일 민법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위한 의사, 즉 가해 의사를 요건으로 시카네(Schkane)의 금지를 규정하였고, 스위스 민법은 가해 의사가 없어도 외형상 권리의 사회성·공공성에 반하면 권리의 남용을 인정하였다. 우리 민법도 스위스 민법을 따라 제2조 2항에서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회 또는 국무회의, 지방자치단체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입법하였다 해도 정당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한다든지 권리를 남용하는 규칙을 제정하면 권리남용의 위헌성을 이유로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 국가권력이라 하여도 국가안위의 극히 제한된 범위 외에는 국민의 기본권은 제한할 수 없다(헌법 37조, 76조).

예장 합동측의 제비뽑기 총회 가결은 엄격한 의미에서 총회의 권리 남용이며 제비뽑기를 규정한 선거관리조례는 위헌성을 내포한 규칙이다. 교회법의 체계가 위헌을 제소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 같은 기구가 없기에 일단 제정하고 나면 교회 내에서는 이의를 제기할 길이 없다.
그러나 민법 제2조 제2항의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유권자의 투표권을 총회가 침해한 것에 대해 민사소송을 제기한다면 총회가 패소할 것이 분명하다. 제비뽑기는 사회성 공공성에 반하며, 민주방식에 반하기 때문이다.

통합측의 규칙은 민주방식에 의한 의사 진행임을 명백히 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장로회 각 치리회 보통회의 규칙 제9조 ‘회장은 민주방식에 의한 의사 진행을 하여야 하고…’). 민주란 주권이 국민에 있고 국민에게 나오는 것을 의미하고 그 행사는 국민의 의사에 있고 국민의 의사는 궁극적으로 선거의 투표로 나타난다. 자유의사가 없는 제비뽑기는 선거도 투표가 아니다.

선거의 불법은 불법자를 처벌해야지 정당한 유권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권리의 남용이고 천부가 주신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는 더 큰 죄가 된다.

이길원(교법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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